신흥주차장 - 치악산 구룡사 - 세렴폭포 - 사다리병창 - 비로봉 - 계곡길 - 세렴폭포 - 구룡사 - 신흥주차장. 이번 산행 코스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래전 40대 시절의 일이다. 지금보다야 펄쩍펄쩍 뛰어다닐 힘이 있는 나이처럼 여겨지지만, 운동이라고는 탁구만 조금 하던 시절에 산행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가, 산행이라는 것을 시작한 때가 2002년이었다. 산을 익숙하게 탈 리가 없었다.
세렴폭포까지는 완만한 산책로이지만, 그곳을 지나서부터는 경사가 급하고 험한 산길이었던 기억이 난다.
드디어 사다리 병창. 당시에는 아무리 용을 써도 내 두 다리로 올라갈 수가 없자 급기야 울상이 되었다.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의 표정이 되어 사다리병창을 올라간 방법은 앞서가던 한 사람이 내 손을 잡아주고, 남편은 뒤에서 엉덩이를 밀어 올려 겨우 그곳을 오를 수 있었다.
그 사다리병창이 잘 있는지 확인하러 가야 하는데...
이번 산행은 치악산 구룡사 숲길이다. 일명 황장목숲길이라고도 한다. 황장목이란 속이 누런빛을 띠는 질 좋은 소나무로, 궁궐을 지을 때나 임금의 관을 짤 때 쓰이는 나무를 말한다. 조선시대 조정에서 당연히 이 나무를 함부로 베지 못하도록 보호해야 하니, 전국 각지 황장목 산지 입구에 금표비를 세운다. 황장금표라고 하는 돌로 만든 작은 비석이 이 치악산 숲길에 두 개나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이름이 황장목숲길이 되었으리라.
신흥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조금 걷다 보면 구룡사가 나온다. 내려올 때 가려고 하다가 사람이 많아질 것 같아서 구룡사를 먼저 보고 걷기로 하였다.
황장목 숲길은 무장애 탐방로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휠체어도 다닐 수 있게 데크로 만든 길은 정말 걷기 편하다.
계곡 주변에는 이미 잎이 다 떨어지고, 을씨년스러운 초겨울 날씨를 연상하게 한다.
단풍색도 많이 흐려졌다.
구룡사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인 의상이 창건한 사찰이라고 한다.
지금의 절터에 커다란 소가 있었는데, 아홉 마리의 용이 살고 있었다. 의상이 절을 지으려 하자 용들이 비를 내려 산을 물로 채우며 방해를 했단다. 의상이 부적 한 장을 그려 연못에 넣자 갑자기 연못물이 말라버렸다. 아홉 마리의 용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중 한 마리는 눈이 멀고, 나머지 여덟 마리는 구룡사 앞산을 여덟 조각으로 갈라놓고 도망을 쳤다고 한다. 구룡사에 전해 내려 오는 전설이다.
다시 숲길로 향했다.
가을이 깊어간다. 단풍도 좋지만, 바닥을 가득 채운 낙엽도 가을의 정취를 충분히 느끼게 해 준다.
단풍을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대곡야영장에 단풍나무는 아직 멋진 색감을 유지하고 있어서 반가웠다.
단풍 감상은 이쯤 해두고 11월의 숲속으로 다시 들어가 본다.
세렴폭포가 가까워진 모양이다.
황장금표
치악산 국립공원 등산 코스는 모두 5군데다. 황골지구, 금대지구, 성남지구, 부곡지구, 구룡지구 모두 한 번 이상은 가 보았다. 이제는 그저 추억의 한 자락이다. 비로봉을 다시 갈 수 있을까? 가장 오래 걸은 기억은 부곡지구에서 곧은치 - 쥐넘이고개 - 비로봉 - 원점회귀였는데, 19km를 8시간 동안 걸은 적이 있다.
치악산은 이제 곧은치까지 걷거나, 이번처럼 세렴 폭포까지 걷고, 국형사에서 시작하는 치악산 둘레길을 걷기도 한다. 능력껏 치악산을 즐기는 것이다.
다리를 건너면 사다리병창을 지나 비로봉까지 가는 등산로가 연결되는 곳이다. 마음은 이미 그곳을 오르고 있으나, 몸이 감당을 못할 듯하다.
세렴폭포는 수량이 적어서 그런지 세가 약하다. 기억 속의 세렴폭포와 다른 느낌이다.
떨어진 단풍잎이 소에 한가득이다.
가까이 보이는 나무는 이미 시들었지만, 멀리 보이는 낙엽송은 멋진 단풍빛으로 서운함을 위로하는 것 같다.
되돌아오는 길에 다시 한번 예쁜 단풍을 담아보았다.
그새 관광객들이 많이 올라와, 단풍나무 앞에서 가을을 담고 있다. 나이와 상관없이 까르르 터지는 웃음이 반갑다. 오랜만의 나들이에서 예쁜 가을을 만나곤 너도나도 소녀가 된 기분이리라.
돌은 저 혼자 구르고 있을 때는 돌의 의미 밖에 없지만, 함께 맞대어 모양을 만들면 그때부터는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돌이 많은 곳마다 그냥 지나치지 않고 작품을 만들어놓고 지나가는 그들은 진정한 길 위의 예술가가 아닐까?
전망대같이 생긴 카페가 있었다. 전망이 멋있을 것 같은데, 올라가 보지 않아서 살짝 후회가 된다.
걸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은 참 안심이 된다. 길이 없다면 얼마나 막막할까? 인생에도 먼저 간 선배들이 만들어놓은 길이 있기에, 우리는 안심하고 그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간혹 막다른 골목처럼 길이 없어 보여서 실망도 되고 힘들 때도 있지만, 길은 반드시 있는 법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니까, 인내심을 가지고 잘 찾아보면 틀림없이 그 길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