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걷는 선운산길
이번 가을은 산행할 시간이 많이 없기도 했지만, 단풍이 작년보다 약한 편이라서 신나게 다니지 못한 것 같다. 11월 초가 되면 남쪽 지방에 단풍이 한창일 때라 휴양림 숙박이 불가피한데, 올해 가을에는 몇 번이나 예약을 잡았다가 취소하고 다시 잡는 등 스케줄에도 변수가 많았다.
드디어 가게 된 선운산. 계곡 따라 멋진 단풍으로 우리를 감탄시키던 그 모습이 올해는 아니었다. 장마가 길고, 더위도 심했던 지난 여름.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비켜갈 수는 없었는지, 단풍이 제대로 드는 것도 자연의 큰 선물이었다 싶다.
화려한 단풍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단풍이 들어주어서 고맙고, 빨강과 초록의 조화가 멋진 색다른 단풍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하늘은 맑고, 그 하늘이 비친 연못 또한 맑다.
7월의 그 뜨거웠던 꽃무릇의 행렬은 초록 잎사귀들로 변신하여 가슴속까지 후비는 듯한 그리움으로 아파하는 듯하다. 나무 그림자가 그 통증을 표현한 듯 어지럽다.
잔디 광장을 지나 선운산 들머리를 찾아가는 길.
일주문은 늘 그 자리에서 우리를 반겨준다.
동백꽃! 겨울과 봄 사이에 피는 꽃이 아니던가? 이번에는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꽃이 되고 싶었나 보다.
도솔천 주변의 단풍이 예년 같지 않다. 지난주 오려고 하다가 아직 푸른색이 많다고 해서 일주일을 미루었는데, 여전히 녹색이 강세다.
자세히 보니 잎이 풍성하지 않다. 단풍이 들기도 전에 낙엽이 되어버린 현상을 여러 나무에서 볼 수 있었다. 아예 잎이 다 떨어져 버린 나무도 보였다.
약하지만 붉은 단풍을 볼 수 있었던 녹차밭 주변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을의 정취를 담으려는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이 여럿 보여서 반가웠다.
빨강과 초록의 조화가 아름다운 단풍이다.
너 참 붉구나! 반가워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베짱이 신사가 연미복을 입고 바이올린을 찾으러 가는 중. 누구의 센스인지 대단하다.
미륵바우의 눈과 코, 입 확인.
계단길을 치고 올라가서 바로 천마봉을 만나고, 용문굴로 내려올 생각이다.
빨강 청미래덩굴 열매가 예쁘다.
천마봉 높이는 284m 밖에 안 되지만, 계단이 많고 오르막이 급하여 그리 쉬운 편은 아니다.
도솔암이 발아래다. 탁 트인 조망에 상쾌하다.
멀리 서해 바다가 보인다.
배맨바위는 딱 한 번 가 보았다. 천마봉은 자주 왔지만 그냥 눈으로만 보고 지나가는 곳이 되어버렸다.
낙조대에서는 일몰 때 찍어야 하는데, 늘 오전에 지나간다.
용문굴의 특이한 모습은 볼 때마다 신기하다.
단풍이 아쉽다. 그래도 멋진 모습이다.
도솔암으로 되돌아 내려왔다.
꽃무릇 꽃 대신 빨간 단풍잎이 초록 잎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절대로 만나지 못하는 꽃과 잎. 그 그리움을 편지로 써서 날려 보낸 것은 아닐까?
그래도 가을임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올해 유달리 긴 장마와 유례없는 폭염은 나무들에게 좋은 환경이 아니다. 광합성 작용을 멈추고, 엽록소가 파괴되고, 안토시아닌이 생성되면서 생기는 색의 변화가 단풍이라는데. 그 어려운 상황을 겪으면서도 붉게 물든 사랑의 표현을 절절히 해 내려는 가을의 몸짓이 안쓰러우면서도 그래서 더 귀해 보이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래, 이만하면 되었다. 애썼다.
우리도 노력할 테니, 너희도 사람들에게 힐링이 되는 아름다운 풍경을 내년에는 좀 더 풍부한 색감으로 채워주렴. 사. 랑. 한. 다.
도솔천은 물빛이 유난히 검다. 도솔천 주변에 자생하고 있는 상수리, 떡갈나무 등 참나무들의 열매와 잎에 많이 포함되어 있는 타닌 성분이 바닥에 침착되어 생기는 현상이라는데, 이렇게 검은색을 띠는 것은 도솔천 말고는 본 적이 없다.
오래된 고목의 특이한 모습을 찍어보았다. 눈과 코와 입이 있는, 뭔가 말하고 싶은 것이 많아 보이는 인상이다.
전통 돌담의 모습이 정겹다. 담장 기와에 얹힌 덩굴 식물은 담쟁이일까? 참 잘 어울린다.
까치밥이 많이도 달렸다. 절의 스님들이 까치 먹으라고 일부러 따지 않은 것 같다.
방문객이 적은 편이라 우리도 절마당에 들어가 본다. 오래된 키가 큰 감나무가 인상적이다.
오래된 나무가 또 있다. 여름을 붉게(검색해 보니 붉은색이 맞다.) 태웠을 배롱나무가 지금은 꽃도 잎도 모두 떨어뜨리고 서있다. 사심 없음이 스님들 마음 같다.
돌 쌓은 것을 카메라에 담는데 진심인 남편. 이번에도 찍는다.
극락교 위에서 기다리고 섰다가, 물속의 그림이 예뻐서 남편에게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물속에 비치는 반영에 진심이다.
은행나무와 단풍나무는 원래 같은 시기에 물들지 않는 것 같다. 선운사를 올 때마다 은행나무는 이미 잎을 거의 떨구고 있는 시기였다. 암그루가 많은지 특유의 냄새와 함께 떨어져 뒹구는 열매가 많이 보였다. 나중에 나가면서 보니까 도로변에 늘어서 있는 포장마차 가게에서 구운 은행을 많이 팔고 있었다.
붉게 타오른다. 사랑하는 마음이다. 사랑하는 몸짓이다.
나무도 사랑을 표현할 줄 아는 것 같다.
넝쿨 식물의 살아가는 법? 예술 하는 법! 설치 미술이라고 해 두자.
올해가 고창 방문의 해란다. 입장료가 없는 이유를 이제 알았다.
너는 지금이 봄인 줄 아냐? 철없는 것.
고창 삼인리 송악은 천연기념물 제367호로 보호를 받고 있다. 높이가 15m, 줄기의 둘레가 0.8m가 된다고 한다. 수령이 몇 년일까 궁금했는데,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고, 수백 년 이상의 나이로 계산된단다. 덩굴 식물인데도 마치 독립적인 나무처럼 보인다.
늘 좋을 수만은 없는데, 그때마다 자연이 허락한 만큼 즐긴다는 생각이다. 예년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제법 예쁜 단풍과 어우러진 멋진 풍경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올가을은 전국적으로 단풍이 잘 들지 않았다고 한다. 주왕산을 비롯하여 선운산, 다음날 갔다 온 내장산 단풍도 예전 같지 않았다. 그래도 오대산 선재길, 설악산 흘림골의 단풍을 제대로 만나서 다행이다.(2023.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