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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새 Nov 18. 2023

사람을 만나는 일

 나는 사람을 만나는 일에 좀 까탈스러운 편이다.  누구에게나 하하 호호 하지만 좀 더 가까이 다가오면 철벽을 쳐버린단다. 예전에 아는 지인이 나를 평한 말이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다가가기엔 너무 어려운 당신이었을 게다.

 직업의 특성상 해마다 새로운 구성원으로 팀을 짜는데,  미우나 고우나 마음 맞춰가며 1년을 잘 보내야 한다. 마음에 맞는 이들은 그렇게 1년을 보낸 후 모임을 만들어, 팀이 바뀌고 나서도 정기적으로 만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나는 몇십 년이 지나도록 그런 모임을 갖지 못했다. 그런 사람들이 다른 구성원과는 잘도 모임을 하는 걸 보면 문제는 내게 있었으리라.

 어린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주변에 항상 친구들이 모였다. 인기가 있는 편이었다. 단짝 친구도 늘 있어서 외로운 줄 몰랐다. 하지만 1년 후 반이 바뀌면 더 이상 찾지 않았다. 그 친구들이 날 어떻게 여겼을지 지금 생각해도 정말 미안하다.

 사람 사귀는 데 서툰 이유를 굳이 말하라면, 당시 선생님이셨던 아버지의 특권 (그때는 그런 일이 가능했다.)으로 친구들보다 1살 어린 나이의 입학이었다. 못 따라가기는커녕 앞서갔던 공부는 걱정이 없었지만, 항상 친구들보다 한 살 어리다는 핸디캡이 작용했다. 친구들은 언니고, 나는 동생이고, 그런 생각이 동등한 친구관계의 성립을 방해한 것 같다.

 그리고 좀 별난 편이었다. 잘 어울리다가도 혼자 만의 세계에 빠지면 아무도 필요가 없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별로 말이 없었던 것은 이야기 나눌 상대가 필요 없었기 때문이었다. 혼자서 잘 놀았다. 그리고 그것을 즐긴 것 같다.

 사회생활은 그런 나를 적절히 녹여주었다. 연륜이 쌓일수록 주변 사람들과 잘 섞이게 되었지만 정말로 무장해제를 당한 건 50대가 되고서였다. 그 이후에 만난 지인들은 사실 나의 그런 유별난 행보를 잘 모른다. 당연히 모임도 여럿 생겼다.

 비대면 만남이 있다. 만날 필요가 없이 소속 카페에서 사람들을 알게 되는 일. 하는 거라고는 댓글 주고받기다. 얼굴도, 본명도, 목소리도 모르는 채로 사람을 알게 된다. 닉네임으로 통하고, 주고받는 댓글 횟수와 내용이 서로를 묘하게 묶어준다.

 그 비대면 모임에서 한 사람을 만났다. 그이로 인해 카페에 재미를 붙이고, 소통하기 위해 블로그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 내게 참 도움이 되는 사람이다.

 주택 단지로 이사 가면 좀 다를 것 같다. 아파트와 달리 이웃이 필요한 동네니까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의 인생에 도움을 주는 소중한 사람을 또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2021.12.28)

*    *    *    *

 블로그 시작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쓴 글이다.

 비대면 만남에서 내게 참 도움이 되었던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소통하지 않는 타인이 된 지 오래다.

 블로그 초기에 만났던 이웃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 나만 그럴까. 그렇다면 나는 예전의 그 철벽을  다시 이웃들과의 사이에 우뚝 세워 막아버린 건 아닐까 반성해 본다. 그게 아니기를 바란다.


 앞집과의 사이에 합성목(서로 보이지 않는다.) 울타리를 치고 나서, 앞집 사람과 얼굴 보는 일이 없어져 버렸다.

 편하고 아늑한 느낌은 좋은데, 뭔가 사라진 느낌이었다.

 옆집도 문 닫고 들어가면 그만인 아파트 이웃과 다를 바 없는 관계가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택의 이웃은 다를 줄 알았는데, 그 소통의 장을 우리가 막아버린 것은 아닐지.

 겨울이 가까워지니까 화단의 월동 준비가 걱정이 되는데, 집에 있는지 없는지 알 수도 없으니 불쑥 찾아가서 물어보기가 어려웠다.

 용기를 내어 전에 주고받은 전화번호로 카톡을 보내고, 우리는 다시 만나 앞집 꽃밭을 함께 둘러보았다.

 꼼꼼히 살펴보고 질문하고, 앞집 사람도 예전처럼 경험으로 얻은 노하우를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잠시 차 한 잔의 자리도 가졌다.

 울타리 이후의 느낌을 공유하고, 앞으로 자주 만나기로 했다.

 외로울 뻔한 -이 동네에 아직 집에 놀러 갈 만큼 친한 집은 앞집 뿐이었다.- 주택살이가 될 것 같았는데, 바로잡아 다행이었다.

 블로그 이웃이나 카페 회원들 사이에 댓글을 주고받다 보면, 잘 아는 사이처럼 느껴지고, 정이 오가게 된다.  

 나는 그 사람과 무척 가깝다고 여겨지는데, 남편은 착각하지 말라고 자주 충고한다.

 블로그 초기에 블로그 이웃인 부동산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남편의 말을 실감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그녀를 잘 알지만, 이웃이 많은 블로그였기 때문에 그녀는 나를 전혀 몰랐다.

 직장에서 퇴직하고 나이가 드니, 알던 사람들도 자꾸 못 만나게 되고, 그 인연이 끊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나이에 새로 사람을 새로 만나는 일이 쉽지 않다.

 그런데 인터넷상으로 마음을 주고받다 보면 그 사람을 만나고 싶어진다.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실체의 인물임을 확인하고 싶은 걸까. 어쨌든 글로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눈을 마주 보며 말로 대화하고 싶은 것이리라.

 그래서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고 다니는 건지 모르겠다. 방문기 쓰는 재미로 만나는 게 아니란 말이다.

  어떤 사람은 한 번 만남으로 끝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여러 번 만나게 되기도 한다. 만나면 만날수록 정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다.

  카톡이 또 왔다. 그녀와 일상에서 쉽게 카톡을 주고받는 사이가 된 지 얼마 안 되었다. 오늘은 밥상에 올라온 배추적을 찍어 보냈다. 첫 배추 농사지은 것을 카페에 올렸더니, 배추적 해 먹으라고 사진을 보낸 것이다. 배추적을 주제로 한참 카톡이 왔다 갔다 했다. 지난번에는 새로 얻은 도자기로 된 예쁜 장미 항아리 조형물 사진을 보냈다. 내게 자랑하고 싶은 게다.

 내가 사람이 고픈 것처럼 그녀도 사람이 고팠나 보다. 내가 그녀를 생각하는 것만큼 그녀도 나를 생각해 주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마음이 포근해졌다.

 그녀와 나는 인터넷 댓글로 친한 사이였지만 벌써 네 번이나 만났다. 내년 봄에는 두물머리에 연칼국수를 같이 먹으러 가기로 했다. 그녀가 나의 인생에 도움을 주는 소중한 사람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참 어려웠던 나도 이제 어떻게 해야 정을 주고받고 오래 인연을 이어갈 수 있는지 안다.

  예전 지인들도 보고 싶다. 이번에 만나기로 한 팀(소규모 인원이다.)이 두 사람이나 그날 사정이 생겨서 임이 취소되었다. 한 팀은 현직에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다들 바쁜지 연락이 없다. 이러다가 모임이 끊어질까 봐 걱정이 된다.

 내년에는 이곳 문화센터 강좌를 듣고 싶은데, 경쟁률이 세다니 걱정이다. 원하는 강좌에 꼭 등록되어 공부도 하고 사람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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