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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새 Feb 07. 2024

돌아서는 아쉬움

예전 집과의 이별

 제주에 간 딸한테서 카톡이 왔다. 과일 택배가 온다는데. 신림동 갈 일 있냐고.

 예전에 같은 아파트 살 때는 서로 현관 밖에 도착한 택배 챙겨주기를 자주 했다. 아이 돌보기는 물론 일이 있을 때마다 쉽게 방문할 수가 있어서 좋았다.

 걸어서 5분 거리의 편리함을 버리고 1시간이 넘는 양평으로 이사를 왔으니.

 딸이 망설이듯 보낸 카톡에 남편의 의향을 묻는다. 물론 당연히 ok다.

 원래 오늘 신림동을 가기로 한 날이다. 집을 산 사람이 인테리어를 한다고 미리 관리비 정산을 하기로 한 날이기 때문이다.

 집은 벌써 계약했지만 그쪽의 전세가 빨리 나가지 않아 이사 날짜를 늦게 잡은 탓에 그동안 꼬박꼬박 아파트 관리비를 내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모든 것이 인터넷으로 다 처리되어서 신림동으로 갈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오후에 딸에게 연락을 받고 집안일을 끝낸 다음(설날에 쓰려고 백김치를 담는 중이었다.) 5시쯤에 서울로 향했다.

 눈발이 날리는 날씨라 차가 밀렸다. 도중에 사고 차량이 있어서 생각보다 더 늦어졌다.

 먼저 살던 아파트를 찾았다.

 매매 계약 후 몇 번 갔었지만 가재도구를 모두 꺼낸 빈 집이 내 집 같지 않아 잘 안 올라가는데, 오늘은 같이 올라갔다.

 관리비 정산은 오늘 했는데, 벌써 일이 진척되어 있었다. 몰딩을 흰색으로 바꾸는 작업이 진행되고, 방문은 물론 붙박이장도 문짝을 교체하려는지 모두 뜯겨져 있었다. 이곳저곳에 시트지와 벽지 등을 뜯어 종량제 봉투에 넣어둔 것도 여러 개 눈에 띄었다.

 이제 우리 집이 아니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잔금을 안 받아 등기는 우리 앞으로 되어있으니 아직은 우리 집인데, 인테리어 공사를 시작한 집안을 보니 우리 집이 아닌 느낌이 확실해진 것이다.

 신림동 아파트에 입주해서 지금까지 17년을 살았으니, 아파트 단지 구석구석, 동네 여기저기, 관악산 둘레길도 모르는 곳이 없이 속속들이 다 아는데.

 이곳을 떠나 양평에서 생활한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떠난다는 실감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돌아서는 마음이 예사롭지 않았다. 남편도 못내 섭섭한 모양이다. 잘 보이지도 않는 풍경을 자꾸 폰에 담는다.

 "괜히 팔았어? 후회돼?"

 그건 아니란다. 그냥 오래 정들었던 곳이라 정말로 돌아서려니 서운하단다.

 사실 나보다 남편이 더 정이 많은 편이다. 집안 내력이라고 할까. 친정 식구들은 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편이고, 시어른이나 남편은 다정다감하다.

 나는 떠나는 일이나 포기하는 일이 별로 어렵지가 않았다. 고향을 떠나고 부모님을 떠나는 일도 매우 쉽게 했다. 딸이 미국에 포닥으로 유학을 갈 때도 편하게 보낼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대학 진학을 위해 고향을 떠나기까지 얼마나 이사를 자주 했는지 기억을 더듬어 세어보니 12번이 넘었다. 성격 탓이겠지만, 이사를 자주 한 것도 이별을 쉽게 하는 요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편의점에서 사 온 도시락으로 딸네 집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아파트를 나서는데 눈이 제법 쌓였다. 산기슭동네라 아랫동네에는 비가 와도 이곳은 눈으로 내릴 때도 있는데,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눈이 쌓인 정도가 달라서 웃었다.

 8시가 넘었으니 이미 캄캄해졌다. 다시 한 시간이 넘게 달려 양평으로 돌아왔다.

 고속도로, 국도, 지방 도로를 차례로 지나오면서 드디어 신림동과의 이별이 실감 난다.

 이별이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다시 찾아갈 수 없는 집이 되어버린 인테리어 공사 중인 아파트의 실내 모습이 자꾸 눈에 밟힌다.

 후회하는 건 아니다. 다시 그곳으로 되돌아가서 살고 싶은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오래 살아 익숙했던 내 보금자리, 내 터전이 이제 내 것이 아니라는 느낌 때문에 섭섭한 것이다.

 너무 오래 그곳에서 잘 살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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