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하고 싶은 일

필사와 캘리그라피

by 세온

블로그 이웃이 매일 필사를 하면서 글을 계속 올려서 나도 필사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좋은 글을 토씨 하나 안 빼고 그대로 옮겨 적는 활동을 하다 보면 얻는 게 많다고 한다.

필사의 장점을 5가지로 제시한 글이 있어 요약하여 옮겨 본다.


1. 모방을 통해 잠재력을 깨워 창조성을 이끌어 낸다.

2. 조용히 자신의 내면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

3. 책의 내용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

4. 어휘력이 매우 많이 는다.

5. 집중력이 높아진다.

(고전 읽기 독서법, 임성훈)

고교 시절에 악필은 아니었지만 글씨에 맵시가 없어서 어디 선뜻 내놓기 어려운 편이었다. 당시 교육대학은 1학년 과정에 글씨 쓰기가 있었다. 경필 쓰기 교본 한 권을 쓰는 동안 어느 정도 글씨체가 나아졌다. 그때만 해도 통지표와 생활기록부 등 각종 서류를 컴퓨터가 아닌 손글씨로 작성하였기 때문에 교사에게는 단정한 글씨가 필수였다.

아이들에게도 글씨 쓰기가 강조되었다. 국어 교과서 옮겨 쓰기는 교육과정에서 제외된 이후인 80년대까지도 1학년 교사들이 현장에서 계속 붙들고 있었다. 경필 쓰기 대회도 해마다 개최하여 궁체를 예쁘게 쓰는 아이들을 칭찬하였다.

딸이 직장을 다녀, 코로나 때문에 손녀가 온라인 수업을 하게 되자 가정학습을 내가 담당하게 되었다. 손녀가 1, 2학년 때는 받아쓰기가 있어서 글씨 연습을 시킬 수 있었다. 잘 쓰면 칭찬을 쏟아부어 가면서 그럭저럭 예쁜 글씨가 유지되었다.

아이들이 3학년이 되면 글씨가 급격하게 변해버린다. 쓸 내용은 많아지고 시간은 부족하니까 저학년 때 잘 잡혀있던 글씨가 순식간에 악필로 돌아서기 쉬운 것이다. 손녀의 글씨가 지금 딱 그 시기를 맞아 흔들리기 시작했다.

전직 교사인 할머니의 잔소리가 시작된다.

"글씨 좀 잘 써라."

"글씨는 마음의 거울이야. 마음이 비뚤어진 것 같잖아."

요즘은 아이들이 글씨 쓸 일은 거의 알림장 밖에 없다. 알림장 내용이 길어졌지만 쓰는 시간은 많이 줄 수가 없으니 자연 글씨가 많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알긴 하지만 영 눈에 거슬려서 잔소리가 내 입에서 튀어나오는 것이다. 라떼는 세대가 맞다.

옛날에야 글씨만 잘 써도 면서기에 취직할 수 있는 시절이 있기도 했다더라만, 어린 시절부터 글씨 쓰기 연습에 공들이기보다는 컴퓨터로 작업해 버리는 일이 많은 요즘 세대 친구들에게 먹힐 소리가 아닌 줄은 안다.

뜻밖에 소설이나 수필집을 필사하면서 문학 공부를 한다는 글을 접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러고 보니 성경을 필사한다던가, 불경을 필사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하루에 양을 정해놓고, 글을 옮겨 쓰면서 위에 제시한 5가지의 장점을 고스란히 자기 것으로 흡수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꾸준히 필사를 하다 보면 필력도 느는 모양이다.

어떤 내용을 기억할 때, 듣는 것보다 읽는 것이 낫고, 읽는 것보다는 쓰는 것이 낫다고 늘 아이들에게 강조했었다. 문제를 풀고 나서 틀린 것은 꼭 오답노트를 작성하는 숙제를 내 주기도 했다. 나 자신도 학생 시절 늘 수업 중에 필기를 하면서 듣고, 그 필기한 내용을 다시 옮겨 적으면서 공부를 했다.

캘리그라피를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관심이 생겨서 밀리의 서재에서 캘리그라피 책을 한 권 담아 글씨 연습을 시작했다. 붓펜 외에도 여러 가지 펜을 이용해서 글씨를 쓰는 것인데, 요즘 서예 글씨보다 더 인기를 얻고 있는 듯하다. 아예 캘리그라피 워크북을 한 권 주문하여 연습을 해 보았다.

서예는 겨우 한 달 기초만 배우다 말았다. 4학년 교육과정에 나오는 서예지도는 할 정도의 수준에서 끝이 났다. 시간도 없었고, 취미로 연결되지 못했다. 상장에 붓글씨로 이름을 쓰던 시절, 서예를 오랫동안 꾸준히 해온 교사들이 실력을 발휘하는 동안 나는 그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뒷심부름이나 하곤 했다.
선운사를 방문했을 때 기왓장에 쓰인 글씨를 따라 써 보고 싶어서 카메라에 담아왔다. 글 내용도 좋지만, 그림을 그리듯이 멋스럽게 쓰인 글씨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좋은 글을 찾아 읽는 것도 좋지만, 그 글을 필사하면서 얻는 것이 더 많을 듯하다. 이왕이면 캘리그라피 연습을 하면서 좋은 글을 옮겨 써 볼까 궁리 중이다. 올해 새로운 계획 하나를 나의 재킷 리스트(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의 리스트)에 끼워 넣는다.
어제 문제집을 푸는데 손녀 글씨가 예뻐졌다. 나름 노력하려는 마음을 가진 모양이다. 글씨는 마음의 거울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예쁜 글씨가 호감을 갖게 해 주는 건 맞다. 손녀도 노력하여 단정한 글씨를 쓰는 습관이 붙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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