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거꾸로 쇠기

팔 다친 후 맞은 설 명절

by 세온

왼손잡이가 왼팔을 다쳤으니 음식을 할 수가 없다.

아예 이번 설날에는 명절 음식을 못하겠노라고 선언을 했다. 해마다 부치던 전도 가까이 하나로 마트에서 사버렸다. 양이 얼마 안 되는 두 팩에 30,000 원 수준이니 비싸다. 남편이 내가 한 것보다 별로 맛이 없단다.

어느 해부터인가 명절이면 손이 많이 가는 전 종류를 집에서 모두 만들어서 가지고 갔다. 시어머니 모시고 사는 막내 동서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고, 가서 하자니 내가 쓰던 부엌이 아니라 음식하기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자 셋이 같이 일하기는 복잡해서 차라리 내 부엌에서 나 혼자 만들어 가는 게 더 나았다. 물론 명절 전날 네 시간 이상 다리 아프게 일을 해야 하지만, 만들어 간 음식을 온 식구가 맛있게 먹어주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은행에서 지점장까지 오른 동서는 명절 연휴에는 늘 쉬고 싶어 했다. 은행 업무가 명절 전에는 더 바쁜 것 같았다. 그 피곤함을 알기에 동서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될 정도로 챙겨서 갔다.

시어머니가 거동을 못할 정도로 불편해지고 나서부터는 나물과 탕국까지 집에서 준비해서 갔다.

작년 2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첫 추석은 똑같이 준비해서 안동에 사시는 형님네 식구들과 대전 현충원에서 만나 함께 음식을 나눠 먹으며 뜻깊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올 설날에는 가까이 사는 시동생네를 우리 집으로 불러, 내가 준비한 음식으로 같이 설을 쇠기로 했었다. 형님네는 너무 멀어서 부모님 제사는 단독으로 지내고, 만나는 건 추석 때 현충원에서 보기로 정했다.

폭설이 내려 딸 식구도 이틀 후에 오기로 하고, 설날 아침에는 사가지고 온 전과, 남편이 도와주어서 만든 버섯 튀김과 감자 부침으로 상을 차렸다. 명절이면 늘 해 먹던 나물비빔밥(안동 헛제삿밥 같은 것이다.)을 올해는 못 먹겠구나 하면서.

설 다음날은 남편 생일이다. 만삭의 몸으로 시댁에 내려가 설 음식 하느라 힘드셨을까, 초이튿날 몸을 푸셨다. 한 겨울 추위에 몸조리도 제대로 못 하고 사흘 만에 부엌에 나가 일했다는 시어머니 시절의 시집살이가 겨울 추위만큼 힘들었지만, 그때는 다 그렇게 살아야 하는 줄 아셨단다.

남편 생일에는 미역국만 더 준비해도 설음식 때문에 늘 푸짐한 생일상이었다.

부엌일에 취미가 없어 밥은 받아먹는 줄만 알던 남편이 밥 하는 것도 배우고 서투른 칼질도 하며 음식도 조금 해보고 하는 중이라, 둘이 미역국을 끓여보기로 했는데.

시동생네가 폭설과 한파주의보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을 방문하겠단다. 올 필요 없다고 하는데도, 설 명절 다음날 생일 못 차려먹을 거라고 미역국 준비해 온다고 하더니 점심시간 맞추어 바리바리 싸가지고 왔다.

음식 할 줄 모르던 동서가 나물도 몇 가지 직접 해오고 미역국도 끓여 왔다. 전은 사 온다더니 몇 가지는 만들어 왔다. 생선구이, LA갈비 등 준비해 온 음식으로 한 상 차리니 식탁이 꽉 찬다.

줄기 미역을 튀기고. 김가루도 넣고, 올 설날에는 먹기 힘들겠다는 나물비빔밥을 해 먹었다. 탕국 대신 미역국도 맛있게 먹었다.

늘 내가 준비했던 설음식을 이번에는 동서가 다 준비해 왔다. 설 거꾸로 잘 쇠었다. 남편 생일상이 평소 내가 차린 것보다 더 푸짐하다.

내년 설이면 철심도 제거하고 팔이 다 낫겠지. 그때는 제대로 명절 음식을 준비해서 시동생네 불러 잘 대접해야겠다.

어제 드디어 딸네 식구가 왔다.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저희들끼리 장을 봐온 것을 한 상 차려서 맛있게 먹고, 생일케이크 촛불 끄기도 했다.

팔은 불편하지만 즐거운 설 명절을 잘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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