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새 May 30. 2022

가야산 소리길

합천 가야산 소리길

 보통 6월부터 8월까지를 여름이라고 한다. 여름에는 걷기 좋은 길이 줄어든다. 더운 여름 날씨에는 계곡을 끼고 걷는 것이 좀 더 쾌적하게 걸을 수 있다. 가야산 소리길은 해인사로 유명한 가야산국립공원에 있는 길이다. 소리길의 원래 이름이 홍류동계곡인데, '가을 단풍으로 계곡물을 붉게 물들인다.'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합천 해인사가 있는 가야산이 단풍 명산으로 유명하지만 이 홍류동 계곡도 가을 단풍 명소로 알려져 있다.

 소리길 안내판에 적힌 글을 옮겨 본다.

 생명의 소리를 듣고,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숲길. 계곡 소리, 새 소리, 바람 소리 등 우주 만물이 소통하고 자연이 교감하는 생명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아 '소리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가야산소리길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숲길과 자동차 도로가 해인사 일주문까지 나란히 가고 있는 길이라 걷는 내내 계곡의 물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다. 계곡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덕분에 걷기도 수월하다.

 원래 대장경 테마파크에서 치인마을까지 총 7km에 달하는 거리라고 하는데, 우리는 황산마을에서 해인사 가야산 휴게소까지 5km 정도만 걸었.

 황산마을 도자기 전시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청량사 가는 길로 내려갔다. 버스를 타고 되돌아올 생각이라 버스정류장 가까이에 주차를 한 것이다.

 황산마을에는 무료주차장과 깨끗한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어서 편의시설이 잘 되어있는 편이다. 주차장도 꽤 넓다.

 주차장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표지판이 있다. 그곳에서 청량사는 왼쪽 길, 해인사로 가는 소리길은 오른쪽 길로 간다. 우리는 오른쪽 길이다.

 소리길 출발점은 가야산소리길 탐방지원센터다. 

 소리길 입구를 들어서면, 보기만 해도 시원한 숲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숲에 잘 왔다.

 숲길이다. 녹색 아름다움이 눈과 온몸을 자극한다. 크게 숨을 들이쉬면 피톤치드가 폐 속까지 청량하게 만드는 듯하다.

  소리길에 있는 아름다운 경치를 가야19명소라고 칭해 놓았다. 그중 하나인 칠성대를 제일 먼저 만난다.

 다리 하나를 건너며 계곡에 눈을 준다. 물과 바위와 숲이 풍경을 만들고 있다.

 바위 안에 부처님이 누워있다. '바위에 갇힌 부처를 보다.'라는 제목의 2013년도 작품이다. 작가는 걷다가 힘이 들면 기도를 하고, 쉼터가 되어주는 부처님을 바위에 새기고 싶었단다.

 소리길에 있는 소생태계는 습지가 있어서 작은 생물이나 곤충들이 다양하게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이다.

 나무 주변에는 물고기 모양의 데크를 만들어 놓았는데, 안내판에 목어나 목탁의 근원이 되는 스토리텔링을 써 놓았다.  커다란 나무가 등에 난 물고기(방탕한 제자)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스승에게 도움을 구한 뒤, 그 나무로 물고기 형상(목어)을 만들어 부처님 앞에 매달아 놓고 쳐 주기를 원했다고. 그 뒤로 쓰기 편리한 목탁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물고기 모양의 데크를 왜 만들어 두었는지 알고 걸으면 더 재미있는 길이 된다.

 생태원의 단골인 곤충호텔. 그대로 조형 미술이 된다. 이 아름다운 호텔에 손님이 많이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계곡이 함께 하는 소리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다. 흐르는 폭포가 크지 않아도 소는 꽤 깊어 보인다. 옛 전설에 나오는 선녀들이 목욕하던 선녀탕인 듯하다.

 숲 속에서 쉼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경험해 본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앉을 수 있는 바위만 만나도 반가운데, 나무 테이블이 곳곳에 설치되어 산객들의 쉼을 도와준다.

 오래된 소나무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수종의 나무들로 이루어진 숲길이 아름답다. 서어나무, 대팻집나무, 노각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 단풍나무 등 많은 나무들이 서로 사이좋게 어깨동무하며 숲의 풍경을 만들고 있다.

  이것도 곤충 호텔일까. 아니면 작은 동물들의 놀이터? 토끼나 다람쥐는 충분히 들락거릴 수 있을 것 같다.

 이쪽저쪽을 이어주는 다리가 있어서 양쪽은 서로 소통한다.

 일주문같이 생긴 매표소다. 입장료는 1인당 일반 3,000원. 경로우대는 70세 이상이었다. 주차료는 승용차 4,000원이다. 짧게 걷는 사람들은 매표소를 통과하지 않고 여기서 되돌아가기도 한다.

 매표소 가까이에 홍류문 쉼터가 있다. 나무 테이블은 쉼터마다 기본적으로 마련되어 있다.

 드디어 가야19명소 중 가장 아름답다는 홍류동을 만났다. 단풍이 아름다워 이름 붙여졌다는 홍류동 계곡에 가을에도 또 한 번 와보고 싶다.

 옛 조상들은 바위에 이름 새기기를 좋아했나 보다. 물론 본인이 한 게 아니라 석수장이를  시키지 않았을까 싶다. 글씨는  사대부 솜씨인지 명필이다.

  농산정이라는 정자에 성지 순례를 하는 사람들이 산책을 나왔다. 복장을 갖추기만 해도 힐링이 될 듯한 느낌이 든다. 좋은 말씀 듣고, 좋은 생각 하고, 좋은 시간을 가지는 동안, 가지고 있던 복잡한 고민이나 스트레스를 말끔히 씻고 갔으면 좋겠다.

  바위틈에 나뭇가지를 끼워놓은 것을 가끔 만난다. 착시 현상이랄까. 정말 나뭇가지들 덕분에 바위가 쓰러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산객들의 유머스러움은 곧바로 전염이 된다. 누군가 먼저 하나를 끼워놓으면 너도 나도 하나씩 더 끼워 넣어 저런 모양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계곡 옆 데크길을 정말 좋아한다. 푸른 잎의 나무들은 손에 닿을 듯 가깝고, 발은 편하고, 시원한 물소리, 계곡 옆이라 바람도 불고. 그리고 그늘이다. 더 바랄 게 없는 걷는 길이 아닌가.

 계곡 건너편 도로에 차가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도로와 걷기길이 나란히 가는 곳이 많다.

 쉼터에 친구 사이로 보이는 분들이 쉬고 있었다. 우리 한번 가 볼래? 그래 좋겠다. 의기투합 계획을 세우고, 각자 가족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휴가를 받아 이곳으로 여행 왔으리라. 좋은 사람들끼리 함께 걸으면서 좋은 추억을 쌓고 있겠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가서는, 두고두고 참 잘한 여행이었다고 이야기 나누지 않을까.

길상암이다. 적멸보궁이란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셔둔 곳이라고 한다. 길상암은 계단을 한참 올라가 높은 곳에 있었다.

 하심(下心)이라는 글씨가 눈에 띈다. 자기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으로 지나가란다. 자신을 낮추지 않으면 나뭇가지에 머리를 부딪칠 것이다.

 나무만 있어도 좋은데, 계곡물까지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그리고 멋진 바위도 계곡에 꼭 같이 있다. 정말 매력이 넘치는 길이다.

 낙화담은 '꽃이 떨어지는 소'라는 뜻이다. 봄에는 철쭉꽃이 떨어져 아름답겠지만, 벼랑에 아슬아슬하게 자라고 있는 단풍나무가 많아, 가을에도 멋진 경치를 보여줄 것 같다.

  참 아름다운 홍류동 계곡 소리길을 오늘 걸었다.

 1950년대에 있었던 계곡물을 이용한 소수력 발전소라고 한다. 전기가 들어오고 난 다음에는 사용되지 않아서 방치되었다가 최근에 복원한 것이라는데, 물레방아를 이용해서 발전을 했던 모양이다.

 계곡 저편으로 바라만 보던  자동차 도로와 드디어 만났다.

 농어촌 버스가 경기 버스랑 색깔이 비슷해서 반가웠다. 버스가 해인사 방향으로 지나가는 걸 보고 600m 더 걷다가 버스를 놓칠까 봐, 한 정거장 전인 가야산 휴게소 삼거리에서 버스를 타기로 한다. 하루에 4번 다니는데, 그 버스를 놓치면 곤란할 것 같기 때문이다. 합천읍이나 대구 쪽으로 가는 승객은 미리 표를 사라고 한다.  우리는 카드로 찍으면 된다기에 그냥 기다렸다. 10분 정도 기다려 버스를 타고 청량사 정류장까지 되돌아왔다. 버스비는 1인당 900원이었다.

 총 걸은 거리는 5.1km, 시간은 2시간 40분이었다. 5월인데도 대낮에 31도를 웃도는 여름 날씨였지만, 계곡에서 잠시 멀어질 때 잠깐잠깐을 제외하고는 시원한 계곡과 바람이 함께 한  쾌적한 걷기길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천년의 숲 상림을 걷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