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층107호발표, 가을)
연명지
살피꽃밭으로 해바라기 꽃들이 날아드는 계절
그리움을 쥐고 자라던 살피꽃밭 키 큰 해바라기는 서쪽으로 가고, 밀어 두었던 골목의 꽃밭은 스스로 잘 크고 있어요
그리움이 묻히던 골목도 서쪽으로 기울었어요
서로를 들여다보는 여름이면 유독 기대고픈 어깨가 간절하게 생각나요
우리는 원주 허름한 중국집에서 소주를 마시며 가까워졌어요
키가 크다고 기댈 만 하지는 않아요
어떤 꽃들은 제 무게에 넘어지곤 해요
산에서 옮겨온 더덕향과 친밀했던 살피꽃밭 주인은
빗물이 스며들지 않는 골목을 염려하곤 했어요
해바라기꽃과 나는 한 편이 되어 향기 진한 꽃들의 소란을 무시했어요
오랜 기침을 다스리지 못하고 살피꽃밭과 이별한 새벽에는 첫눈이 살짝 미끄러웠지요 살얼음이 위험하니 천천히 오라던 가족의 말은 섬이 되었고
내 속을 뒤집던 혈육을 야단치던 유일한 사람, 내 안의 어른을 보내던 날은
바람이 많아 바람 속에서 어른을 보냈어요
나는 나를 잘 기르고 있는 걸까요
보고 싶다는 말을 팽팽하게 견디며 한 사람이 키우던 꽃밭에 쪼그려 앉아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