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지
가평 허수아비 마을에는 오물거리는 비밀들이 숲속을 떠다닌다
영혼이 실린 나비가 마을을 지나가면 오래된 나뭇가지들 조용히 팔을 내린다
잠깐씩 다녀가는 물방울들의 입술에 나팔꽃들 물려있고 저물도록 돌아오지 않는 소리를 염려한다
순한 눈매의 모자를 쓴 시인의 얕은 어깨 위로
푸른 나비 앉아서 날개를 팔랑이며 바람을 모아준다
한 뼘 길이도 되지 않은 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가져가고 있다
나비의 시간은 오래도록 신기하고 다정해서
우리는 꽃을 좋아하던 할매의 안부라고 했다
나비의 안색을 살피던 시인이
할매야,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나비로 온 거야
활짝 핀 눈들이 쿡쿡 웃는다
그렁그렁한 손가락이 나비를 향해 다가가고
할매처럼 오물거리는 나비의 입에서 가래 끓는 소리가 튀어나온다
아가, 철들지 말그라
입안이 자주 헐던 할매의 보라색 입술이 나비의 등에 얹혀있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동안 아른아른 번지는 그리움을 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