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아이들

심심한 천국 싱까왕

by 오후세시

진정한 워라밸이 가능한 곳?


내가 파견 후 소속되어 있는 기관은 싱까왕 교육부이다.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의 교육전반을 맡고 있다. 출근은 보통 8시까지 한다. 12시엔 다들 점심을 먹으러 흩어진다. 대게는 집이 가까우므로 집에 가서 먹는다. 점심식사 후 1시 반쯤이면 돌아와 3시에 퇴근한다(물론 교육부의 자세한 사정은 모른다. 내가 출근해 지켜본 봐로는 그렇다)


텔레비전은 항시 켜놓고 이야기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물론 5일제다. 초등학교는 7시에 수업이 시작된다. 11시 40분에 수업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집으로 향한다. 집에 가면 목욕하고 밥 먹고 놀다가 잔다. 여름방학은 7월 초에 대게 2주 정도로 길지 않지만 인도네시아엔 휴일이 많다. 방학이라고 달라질 건 없다. 노는 시간만 더 늘어나는 것 같다. 이곳 아이들이 공부는 언제 하나 걱정되면서도 부러워하지 않을 수가 없다.


SNV12881.JPG '빼꼼' 친구야 언제 나올 거니


나는 기관보다는 컴퓨터수업이 있는 초등학교로 보통 출퇴근을 했으므로 아이들이 하교하는 12시경에는 땀으로 범벅된 채 돌아와 샤워를 하고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거나 에어컨이 나오는 곳을 찾아간다. 그것이 이 뜨거운 오후를 보내는 방법 중 하나였다. 4시쯤 모든 것을 태워버리기라도 할 듯 이글거리던 해가 슬슬 돌아갈 채비를 하면 다시 자전거를 타고서 동네를 한 바퀴 돈다. 그러면 사람들이 ‘산책 가니?’하며 인사를 건넨다.


SNV17522.JPG 매일매일 싱까왕의 하늘을 장식하던 노을


자전거로 한가한 도로를 달릴 때면 어김없이 보이는 풍경이 있다. 땅이 반이요 하늘이 반인 싱까왕 시그니처 풍경. 구름과 바람을 마주하고 가다 보면 하늘을 달리는 기분이 란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때때로 여기가 바로 천국이구나 하는 마음에 나의 신분을 망각하기도 한다. 인도네시아는 우리나라가 해외무상원조대상으로 지정해 코이카 단원을 파견할 만큼 부유한 나라는 아니다. 전체인구 약 3억, 국민의 40% 이상이 극빈층인 나라.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우리나라 돈으로 20만 원 정도를 월급으로 받는다. 맞벌이를 하면 사정은 좀 나을 것이다.


내가 파견된 싱까왕의 초등학교는 한 반의 학생수가 30여 명이었는데 컴퓨터 수업시간에 사용되는 컴퓨터는 모두 10대뿐이었다(2007년 당시) 학생수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컴퓨터. 그래서 한 컴퓨터를 3,4명의 아이들이 사용한다. 물론 모든 아이들에게 실습의 기회도 갈 수 없다. 그러나 컴퓨터가 모자란다고 불평하는 아이도 없었다. (이방인인 내게 미소 외에 다른 속내를 보여줄 기회가 없기도 했겠지만)


SNV12516.JPG 컴퓨터 실습실. 부족한 컴퓨터 탓에 컴퓨터 수업의 대부분이 이론수업이었다.


서울에서의 직장생활만 떠올려 보더라도 이곳은 내가 보기에 천국임은 틀림없었다. 다만 조금 심심한 천국이랄까. 내가 이 천국의 아이들을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는 어렵지 않았다. 아주 명확한 일이었다. 다음 해부터는 코이카 현장지원사업을 진행해 컴퓨터실을 보다 컴퓨터실답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코이카 현장지원사업은 협력방식으로 진행된다. 코이카가 계획한 예산을 지원하면 지원처도 3분의 1 정도의 예산으로 사업을 돕는다. 코이카와 지원처가 사업을 함께 진행해 가는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다. 그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인도네시아 전역으로 파견된 우리 코이카 단원이다. 이런 막중한 사명을 띠고 나는 천국에 와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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