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너무 많은 하고 싶은 일들

순간의 아름다움을 절망적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안된다. - Dec 2025

by Song Gidae

크리스마스 이브,


나는 지금 혜진이와 퍼스에서 5시간 정도 거리가 떨어진 곳에 캠핑을 와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41도에 육박하는 더위와 싸우며 에어컨 바람에 의지하면서 달려왔는데 남쪽이라 그런지 점점 구름이 끼더니 어제 저녁에는 심지어 으슬으슬 추워지기까지 했다.


루프탑 텐트에서 자면서 바람소리에 몇번이나 깨면서 뒤척이다가 의지와 상관없이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제제 산책을 다녀오고 가만히 앉아서 선선하다고만 하기에는 조금 쌀쌀한 감이 있는 공기에 몸을 움추리며 방충망을 넘어 부슬부슬 내리는 비와 바람 소리와 함께 휘날리는 텐트 안에 앉아 혜진이와 책을 읽고 있다.


장 그르니에 작가의 섬이라는 책을 읽기 시작하는 앞부분에 “겉에 보이는 세상의 모습은 아름답지만 그것은 허물어지게 마련이니 그 아름다움을 절망적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그 모방 불가능한 언어로 말해 줄 필요가 있었다.” 라는 구절을 읽으며 멍하니 문장을 곱씹어본다. 다시금 살아가는 순간의 소중함에, 그 말에 담겨있는 과격한 표현에 감동을 받는다. 그리곤 뜬금없게도 혜진이한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여행지에서 그것도 엄청 유명한 여행지에서 살아보고 싶어, 그리스 산토리니와 같은 곳 말이야. 그 감동과 벅참이 무감각해지는 걸 느껴보고싶거든. 예전 이집트 다합에서 해봤는데 더 이상 여행자가 아닌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의 관광지의 경험도 좋은 것 같아”


무감각이라는 말을 할 때 혜진이는 약간 갸우뚱을 하긴 했지만 공감을 해줬다.


원래는 올해였지만 내년에는 정말 애기 계획을 갖고 있다. 아마도 꽤 오래 전부터 계획이 아니라 ”미루어“왔다는 표현이 좀 더 맞을 것 같다. 둘이 하고싶은 게 아직까지 너무 많다. 물론 살아가다보니 계획했던 것들이 다 이루어지지는 않고 또 변하기도 하지만 지금도 아, 아직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캠핑도 조금 더 많이 가고 싶고, 여행도 조금 더 많이 다니고 싶다. 라며 아쉬운 마음도 있다.


늘 생각하면서 살아가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에 경계하며 살아가려고 하면서도 어느새 또 다시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아마도 반복되는 삶이고 그게 원래 그런거라고 받아들이는 게 마음이 편할 것도 같다.


말이 나온김에 내가 하고싶은 일들을 적어본다.


1. 서핑보드 만들기 & 팔기

2. 제주도에서 게스트 하우스 하면서 젊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살아가기

3. 혜진이와 함께 유럽 배낭여행을 하기

4. 일본 로드트림 & 맛있는 거 많이 먹기

5. 국내 로드트립 & 맛있는 거 많이 먹기

6. 철인3종경기 완주

7. 스페인 순례자의 길 걷기

8. PCT Trail 완주


이렇게 큰 카테고리로 잡아서 하고 싶은 일들이 있기 때문에 사실 아이를 갖는다는 게 조금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다. 잘은 모르지만, 또 한다면 할 수 있겠지만, 아이와 함께 위에 언급한 내용들을 한다는 건 사실 너무 어려울 것 같다. 그리고 그 때가 된다면 내 우선순위가 앞에 말한 것들이 아니게 되겠지?


2025년 새해가 밝고 일을 시작하게 되면 다시 열심히 일을 할 것이고 그 와중에 아마 운동을 하는 게 가장 낫지 않을까



/



June 25


어느덧 올해도 정말 순식간에 반이 지나가고 있다. 예상을 크게 벗어나는 사건들이 몇개 있었지만 다시 부드러운 바람을 받으며 순조롭게 항해를 하고 있다. 그래도 5번에서 말한 국내 로드트림 & 맛있는 거 많이 먹기는 조금 해 보았다.


얼마전에 한국에 다녀왔는데 정말 열심히 먹고 차를 가지고 전주, 군산을 다녀오기도 했다.짧은 로드트립이었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여행을 한다는 게 또 이런 재미구나 싶었다. 예전에 2012년에 자전거를 타고 45일동안 반시계방향으로 돌았던 적이 있는데 그때보다 나이가 조금 더 들어서 그런지 고생이 아닌 맛있는 거 먹고 편하게 다니는 것도 꽤 좋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겨울에는 귤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