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25
요즘은 날씨가 한층 더 쌀쌀해졌다. 한동안은 매일매일 비가 오더니 이제 날이 개고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라서 그런건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나오면 차가운 공기가 콧속을 여지없이 파고 들어온다. 제제 산책을 나가거나 뛰고 집에 와서 제일 먼저 방 히터를 틀어놓고 털이 복실복실한 겨울 가운을 걸치고는 자리에 앉아서 명상을 시작한다.
최근에는 다시 가이드명상을 이용하고 있는데 어떤 외국인 영상을 듣고 있다. 부드러운 목소리의 가이드를 따라서 눈을 감고 가만히 숨을 쉬다가 매번 그렇듯이(같은 영상이기 때문에)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라고 하는데 언제나 나에게 행복과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연결되는 기억은 스물 한 살 교환학생으로 난생 처음 갔던 일본에서의 시간이다. 다른과 친구들과 처음으로 공항에서 만나서 이사를 하고 어색하게 단체 사진을 찍었던 기억부터 밤에 다같이 모여 술을 마시던 기억들까지 수 많은 기억들이 엄청나게 미화가 되어 그 때로부터 이미 18년이란 시간의 세월을 살아온 나에게 절대로 되돌릴 수 없는 꿈만 같은 시간이 되었다.
학교는 원래 여자학교였기 때문에 같이 갔던 다른 친구들 4명은 여자 기숙사에 들어갔지만 나와 지호는 학교에서 얻어준 아파트에서 살기 시작했다. 방 2개 화장실 1개의 다다미로 된 2층짜리 아파트에서 나는 당시에 담배를 피웠기 때문에 작지만 발코니가 있는 방을 썼고 우리는 학교에 가서 인상 좋은 할아버지같은 교장선생님과 학생회에서 일하는 것 같은 친구들에게 소개를 받은 후 각자 자전거 하나씩을 받았다. 일본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자전거를 타고 등교를 하는 그런 느낌의 오래되고 빨리 달릴 수도 없지만 딱 내가 원하던 느낌이었다.
다음날 첫 수업을 하러 가서 6명이서 전학생이 된 것처럼 구석에 어색하게 어떤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두려움에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얼굴에서 엄청난 장난기가 느껴지는 요시다와의 대화를 시작으로 우리는 조금씩 친해지기 시작했다. 몸으로 하는게 가장 쉽게 친해지는 방법이고 또 나도 농구에는 꽤나 진심이었던지라 수업이 끝나면 같이 바닥에 털썩 앉아 담배를 피우고, 농구를 하면서 다른 친구들과 급속도로 친해지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학교가 끝나면 운동을 하고, 어둑어둑해져서 운동이 끝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남아서 더 놀 사람들끼리 마루나카라는 큰 슈퍼마켓에 가서 음료를 사거나 술을 사서 어디로 갈지 정하는 식의 하루하루들이었다. 짧은 3개월 반정도의 시간동안 늘 걱정없이 하루하루를 살았고 어떤 친구들은 일본 친구와 사귀기도 하고 고백을 받기도 하는 하루들이 이어졌다. 나도 마찬가지로 그 때 좋아하게 된 친구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참 순수했던 시절의 나였다.
조각조각 기억들 중 한번은 빨리 나가지도 않는 자전거를 타고 내가 갈 수 있는 한 최대한 멀리 가봤던 기억도 있다. 당시에는 엄청나게 먼 길을 간 것 같았지만 아마도 20키로도 못 갔던 것 같다.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에히메라는 이름이 예쁜 동네에 놀러갔던 기억이 있는 데, 비가 엄청 많이 내리는 날이었는데 긴 터널을 지나고 에히메 현으로 들어왔을 떄 거짓말처럼 맑았던 하늘도 기억이 난다.
당시 나는 갖고갔던 MP3에 올블랙의 꿈이라는 노래를 반복해서 듣고 있었고, 친구들과 가라오케에 가면 케츠메이시의 토모다치라는 한국으로 치면 MC스나이퍼의 BK Love 나 안재욱의 친구정도로 볼 수 있는 랩을 부르곤 했다.
사누끼 우동이 유명해서 우동에대한 영화가 만들어졌던 정도로 우동이 유명해서 어딜 가도 우동은 늘 맛있었지만 가장 맛있었던 건 학식으로 먹었던 카레우동이었다. 교내식당에 엄청나게 친절한 미소를 가지신 이모님(?)이 면위에 듬뿍 부어주던 카레우동은 당시 150엔으로 당시 환율로 $1,200원 정도되는 한끼 식사였는데 어떤 우동보다도 맛있게 먹었기 때문에 지금도 일본 식당에 가서 밥을 먹을라고 하면 늘 카레우동이 내 우선순위에 있다.
양식이 먹고싶으면 Joyful이라는 조이후르라고 발음했던 함바그집에 가서 세트메뉴를 시키곤 음료를 무제한으로 마시기도 했고, 학교 앞 당시 푸드트럭같은 곳에서 타마고동같은 음식을 사먹기도 했다.
추억에 대해 나열하자면 너무 길어지고 공감할 수 없을테지만 어쨋든 그 시절의 스무살의 나는 행복했었다. 그 전에 행복했던 순간순간들의 기억들은 있겠지만 몇개월을 꿈꾸듯 떠다닌 적은 그 전까지 없었기 때문에 가장 행복했던 첫 기억은 늘 스무살의 일본으로 이어진다.
이 글을 쓰다가 멈추고 한참을 추억하고 또 쓰기를 반복하면서 쓴다.
그 뒤로 수많은 과거에 행복했던 시간들이 겹쳐지고 쌓아올려져서 내 안에 가득히 담겨져 있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을테니 나는 여전히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미래에서 뒤돌아 볼 추억을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다시 오지 않을 흘러가는 이 일분 일초가 모두 기억되지 않겠지만 그 순간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하루하루가, 또 그 하루하루가 모여 만들어지는 한 주, 한 달, 일년이 행복했던 시간들로 기억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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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돌아오기 전날 밤이었는지 같이 놀러다녔던 수줍음 많던 아리사라는 친구는 한적했던 거리 가로등 밑에 앉아서 나를 좋아했다고 말했다. 그 순수함은 아름답지만 조금 일찍 알려줬어도 좋았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는 건 시간이 지나도 어쩔 수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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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글거림보다는 순수함으로 생각하고 당시의 모습을 첨부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