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 2025
어릴 적 냉정과 열정사이라는 영화를 보고 처음으로 피렌체의 두오모라는 곳을 알게되었다. 영화는 인터넷에 알아보니 2001년도에 개봉한 영화로 내가 중학교 1학년이었을테니, 아마 개봉이 되고 난 후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되었을테다. 당시에 봤던 “지금 만나러 갑니다“, ”연애사진“과 함께 내가 좋아하는 로맨스 영화중 하나였다.
사실 얼마 전 이집트에서 소설 “나의 눈부신 친구”를 읽으며 나폴리에 가자고 했을때까지도 까마득히 잊고있었던 도시였다. 시간이란 야속하게도 내가 이 영화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혹은 피렌체를 얼마나 와보고 싶어했는지를 내 기억속에서 완벽하게 지워가고 있었다. 로마에서 차를 렌트해서 여행을 하고자 했던 계획은 유럽을 올 생각도 없었고 이 곳에서 차를 렌트할 생각은 더더욱이 없었기 때문에 차에 두고 온 호주 운전면허증때문에 무산이 되고 하루라도 관광객들에 치여서 모든 에너지를 다 소진하기 전에 떠나고자 가장 빠르지만 저렴한 버스를 타고 어제 오후에 피렌체에 왔다.
혜진과 오기 전부터 영화에 대해 얘기했고, 소설이 원작이기 때문에 전자책에 다운로드를 받아 읽기 시작했고 심지어 어제 저녁에는 온갖 노력으로 오랜만에 영화를 다시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때 그 어린 날의 감정을 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을까 영화는 예전만큼의 큰 감동은 주지 못했다. 하지만 로마를 제외하곤 크리스마스 시즌으로 거리마다 반짝이는 조명들이 설치되어있고 호주에서는 느낄 수 없는 차가운 공기의 12월이기 때문에 들떠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혜진이 호텔에서 일할 때 같이 일했던 실라(Scilla)라는 이탈리아 친구와 만나서 아침에 커피를 마시고 이탈리아에 대해서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고, 또 오빠에게 차를 빌려 15분정도 걸리는 경치가 좋은 곳에 가서 피렌체에서 유명한 스테이크도 먹었다. 다행히 실라가 오늘 쉬는 날이여서 원래는 오늘 아침 일찍 가려다가 미루고 해질녘에 가려고 했던 미켈란젤로 광장에 같이 가게 되었는데 이 곳에서 나는 다시 피렌체의 두오모를 보고싶었고, 오래전 컴퓨터로 봤던 영화에서 느꼈던 그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아름다운 것들을 보면 나는 웬만해서는 핸드폰 카메라를 꺼내들지 않는다. 그 이유는 사진으로 담을 수도 없을 뿐더러 내 눈에 가능한 만큼 최대로 담고 싶기 때문에 카메라를 꺼내고 사진을 찍으려는 그 시간 조차 아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예외였다. 최대한 맨눈으로 이 순간을 담으려고 하며 혹시라도 하는 마음에 핸드폰을 꺼내어 들었는데, 오히려 안좋은 화질때문인지 내가 담고자 하는 그 장면이 담기기 시작했다. 위에 사진은 그 중에서 내가 본 느낌을 가장 잘 나타낸 사진이다. 구름들 사이로 빛이 쏟아지고 빨간 지붕들은 노란 벽들에 반사되는 황금빛과 명암을 이루며 두오모를 더 돋보이게 만들었다.
오후 4시면 해가 지기 때문에 그 아름다운 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지만 나는 아마도 이 시간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될 것같다.
집에 돌아와서는 그 여운이 희미해지기 전에 핸드폰에 찍었던 사진을 열어놓고 사온 싼 와인과 와인보다 비싼 치즈와 햄을 먹으며 책을 읽고 아오이(책에 나오는 여주인공)의 감정에 이입하고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