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나 아빠는 미국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학교에 양해를 구해 유나 출산일에 맞추어 한국에 왔었다. 사위는 유나 출산 과정과 산후조리원에 있던 3주 동안 유나를 돌보고 딸 뒷바라지를 해왔다. 집에 와서도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까지 유나 육아를 전적으로 도맡아 했었다.
어느 날 딸이 우리 부부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유나아빠가 장인 장모님이 유나를 별로 이뻐하지 않는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는 것이다. 딸은 가족마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과 표현의 차이가 있어서 그렇다고 사위에게 충분히 설명해 줬다면서도 사위 보는 앞에서는 약간 오버액션으로 유나를 이뻐해 달라고 말하는 것이다.
딸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잠시 멍한 기분이 들었다. 유나에 대한 사랑을 우리 방식대로 충분히 표현하고 지냈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한방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평소에 동서양의 차이나 유목민과 농경민의 문화적인 차이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고 이해도 충분히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 차이를 느끼게 되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정말 집안마다 자녀를 사랑하는 방식과 표현의 방식에도 차이가 많았다.
이런 가족 문화의 차이는 사랑 표현법뿐만 아니라 식사 방식과 이벤트 방식 등 다양 곳에서 나타났다. 30년 이상을 자신이 태어나서 살아온 가족문화 환경에서 익숙하게 살아왔는데 결혼해서 다른 가족 문화 환경을 보면 이질감이 느껴질 것도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럴 때는 서로가 다른 가족문화의 다양성을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딸이 결혼하고 나서 몇 개월간을 우리집에서 사위와 같이 지낸 적이 있다. 그런데 사위가 저녁을 먹고서도 매번 가게에 가서 과자 등의 군것질거리를 사 오는 걸 보고 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과자 등을 별도로 사다 먹지 않는 우리 집 분위기에 낯설기도 했고 저녁을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어린아이처럼 과자를 먹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냥 과자 등 군것질을 좋아하는구나 하고 넘어갔었다.
그런데 한참 지난 후에 딸이 이런 말을 했다. 사위가 한국의 우리 집 식사량이 너무 적어서 배가 고팠다는 것이다. 배가 고파서 저녁마다 군것질거리를 사가지고 와서 먹었던 것이다. 우리 집은 소식을 하는 편인데 우리 집 기준으로 밥과 음식을 차려주니 사위는 배는 고픈데 배고프다는 말도 못 하고 주는 대로 먹다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군것질을 하거나 저녁 늦게 밤참을 먹었다고 했다.
나중에 딸에게 이 말을 들으니 사위 대접은 고사하고 배를 곯게 했다는 생각에 미안하기도 하고 70~80년대도 아니고 배고팠다는 말에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딸도 시댁이 대식가 집안이라고 막연히 생각했지 사위가 소식가 처가 집에서 배를 곯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딸에게 사돈댁은 식사를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온 집안이 대식가들이라고 했다. 집에 대형 냉장고가 세대에 요리 재료가 가득하고 시어머니 손이 커서 음식을 엄청 푸짐하게 많이 한다고 했다. 그렇게 대식가 집안에서 어릴 때부터 자라온 사위는 손이 작은 장모가 해주는 요리며 음식들이 부족했을 법도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돈댁 집안사람들 중에 살찐 사람은 없다. 그렇게 대식가 집안인데 가족 모두가 슬림한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사위가 음식이 부족해서 배곯은 것은 그렇다 쳐도 유나를 이뻐하는 방식에 대한 얘기에는 좀 서운했던 게 분명했다. 시댁 어른들은 고종사촌들이 집에 놀러 오면 큰 몸짓과 제스처로 이뻐함을 표시하면서 물고 빨고 난리가 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사랑을 표현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위에게 할배와 할매의 조용한 유나 사랑법은 '혹시 장인 장모님이 유나를 별로 사랑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에게는 엄마 아빠가 조용한 성격이라서 사랑 표현 방식도 그런 거라고 유나 사랑하는 마음은 아주 크고 깊다고 사위에게 잘 설명해 주라고 당부했다. 우리 부부는 성격도 조용하고 액션도 크지 않고 잘나서지도 않는 편이다. 평소에 사랑은 형식보다는 마음이 잘 전달되면 된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다른 가족문화에서 살아온 사위가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되면서 이제 다른 가족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형식도 잘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과 그런 이야기를 나눈 이후로 우리 부부는 사위가 아침에 유나를 데리고 위층에서 내려오면 유나를 격하게 이뻐해 줬다. 처음에는 이런 약간 과장된 스킨십이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금방 적응이 되었다. 사위가 미국으로 돌아간 지 두 달이 되어간다. 요즘은 딸이 아침에 유나를 데리고 위층에서 내려오면 귀여운 유나를 물고 빨고 아주 많이 표현해 주고 있다. 사위가 이 모습을 보면 장인 장모님이 이제는 유나를 아주 많이 이뻐하는구나 생각할 것 같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사위도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