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남 카라 Oct 22. 2024

5. 유나와 브런치 카페에 가다.

  유나가 생후 5개월이 지나자 외부 활동이 가능할 것 같아 인근에 있는 브런치 카페에 데리고 갔다. 유나 육아로 지쳐가는 딸에게 기분전환도 시켜주고 유나에게도 세상구경을 시켜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요즘은 경치 좋은 곳에 분위기 좋은 브런치 카페들이 생겨서 이용하기도 편리하다. 딸과 유나와 나가보니 생각보다 좋아 올가을에는 미술관,  브런치 카페, 공원 등에 자주 나가볼 생각이다.


  유나를 데리고 가족이 브런치 카페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딸의 어릴 적 생각이 떠올랐다. 마치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같이 딸의 어릴 적 기억이 소환된 것 같다. 그때 나는 유모차를 끌고 에버랜드에서 꽃구경을 하던 서른살의 젊은 아빠였다. 결혼을 했지만 아직 아이가 없던 지인들과 에버랜드를 돌면서 예쁜 꽃들과 신기한 동물들 구경도 하고 딸을 안고 가벼운 놀이 기구를 탔었던 기억이 난다. 지인들과 같이 찍은 사진들을 보면 나도 생각보다 앳된 얼굴이고 딸도 유나처럼 오동통하다.  


  사랑스럽기만 한 어린 딸을 유모차에 태우고 에버랜드 곳곳을 다녔던 97년 봄날의 기억은 선명하다. 그 해는 대전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할매가 딸을 데리고 수도권으로 올라와서 세 명의 가족이 함께 보낼 수 있는 아파트 전세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한 해이기도 하다. 처음 집을 구할 때 하필 전세 대란 시기여서 할매와 할배 직장 부근의 전세매물로 나온 아파트를 모두 찾아다녔다. 어떤 아파트는 가격이 비싸서 어떤 아파트는 너무 낡아서 아파트를 고르지 못하다가 외곽이지만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에 전세로 입주했다.


  산 밑에 있었던 아파트에서 딸과 함께한 추억이 시작되었다. 맞벌이를 하던 할매와 할배의 일상은 정신이 없었고 집안은 늘 정돈 대기 상태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놀이방에 딸을 맡기고 회사에 정신없이 출근을 했다. 회사에서 눈치를 보면서 6시에 땡 퇴근을 해서 놀이방에서 딸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할배는 어지럽혀져 있는 집 안 청소를 하고 할매는 저녁 준비를 해서 저녁을 먹은 후에 딸을 목욕 시키고 재우면 저녁 9시가 넘었다.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던 할배는 이때부터 밀린 학교 과제나 전공 공부를 했다. 회사와 대학원 그리고 딸의 육아까지 일상이 전쟁 같은 날들이었다. 이렇게 바쁜 일상에도 주말에는 꼭 딸을 데리고 야외로 나들이를 다녔다. 어릴 때 많은 곳을 보고 경험시켜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활력을 느껴보고 싶어서였다. 우리 가족은 매주 외부에서 먹는 점심값을 아끼기 위해 김밥을 싸서 야외로 나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이 딸과 함께 보냈던 가장 행복한 시간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할배는 현실의 실존적 힘듦을 겪고 있었다. 직장에서도 아직 내세울 만한 경력을 만들지 못한 생태였고 이제 막 시작한 석사 대학원은 박사과정까지 언제 끝낼 수 있을지 기약도 없었다. 무일푼의 가장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초보 가장에게는 경제적 기반을 잡아야 한다는 중압감도 밀려왔다. 딸을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한 초보 아빠는 어떻게 잘 키울 수 있는지에 대한 막막함을 가지고 이런저런 자녀교육에 대한 책들을 탐독하고 있었다.  


  할배에게 놓인 삶의 과제들이 하나같이 만만치 않았다. 뭐하나 명확하게 손에 잡히는 것이 없었기에 시도 때도 없이 불안감이 몰려왔고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회의감이 지속적으로 들었다. 자욱한 안개에 싸여있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인생의 개울을 건너는 심정이었다. 단 한 번의 실수로 돌다리를 잘못 짚으면 개울로 떨어질 것 같은  중압감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런 실존의 어려움 속에서도 딸은 청량감을 주는 존재였다. 딸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면 세상 걱정과 시름을 잠시 접어두고 딸의 귀여움에 집중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서 좀 더 힘을 내자는 의지가 생겨났다. 이런 아빠들의 마음은 모성애와는 다른 차원의 부성애인 것 같다.


  이런저런 딸과의 추억과 회상에 젖어있는 동안 규모도 크고 모던한 브런치 가게에 도착했다. 브런치 가게에는 연인들과 가족단위의 손님들이 많았다. 여러 명의 가족에 둘러싸여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는 유나 또래의 아이들도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브런치 가게에 자리 잡고 음식과 음료를 주문을 한 후에 유나를 유모차에 뉘고 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배는 딸에게 "지나고 보니 딸과 보낸 어린 시절이 제일 기억에 많이 남고 행복한 시절이었던 것 같다. 유나를 키우면서 많이 힘이 들겠지만 지금 이 순간이 유나와 보낸 제일 행복했던 시간이란 생각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알차게 보내면 좋겠구나" 하고 말해주었다. 앞으로 딸이 유나를 키우면서 겪게 될 많은 힘듦과 우여곡절들이 파노라마같이 할배의  머리에 스치지만 딸은 부모가 그러했듯이 슬기롭고 현명하게 잘 이겨나갈 것이다. 


  지금 딸과 사위도 할배가 느꼈던 약 27년 전의 불안감과 마주하고 있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앞으로 달려 나가고 있는데 딸은 육아에 묶여서 퇴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수 있고, 대학원에 다니는 사위는 언제 졸업해서 사회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 경제적인 기반도 걱정 될 것이다. 하지만 앞에 놓여있는 불확실한 삶의 과제 앞에서 불안과 걱정만 하고 있다 보면 유나와 함께하는 행복한 일상을 누릴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젊은 부부들이 마주하는 삶의 과제들은 대부분 한 번에 인생역전할 수 있는 과제라기보다는 꾸준하고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달성되는 인생 마라톤 같은 과제들이다. 딸 부부가 꾸준하고 일정한 페이스로 인생 마라톤을 달리면서 순간순간 변하는 주변 경치도 즐길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있는 삶을 살아갔으면 한다.


  브런치 가게에서 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유나는 브런치 가게의 손님들과 인테리어 등이 신기한지 계속 두리번거렸다. 집에만 있다가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에 오면 유나도 신이 나는 것 같다. 브런치 가게에 있는 동안 유나가 배가 고파서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에 분유를 잘 먹여 재우기도 했고 응가를 해서 뒤처리에 애를 먹기도 했다.


  그래도 유나의 적극적인 협조 덕에 브런치 카페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유나를 위한 외출이었지만 딸과 오랜만에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딸의 어린 시절 이야기, 유나를 앞으로 어떻게 키울지, 딸 부부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어 하는지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편안하게 나누었다. 날씨 좋은 가을에는 좀 더 자주 유나와 외부로 나와서 유나에게 세상구경도 시켜주고 딸과도 이야기를 나누어봐야겠다.

이전 04화 4. 가족 간에 사랑하는 방식과 표현의 차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