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나가 모유를 먹고 자꾸 토하자 모유가 묽어서 토한다는 생각에 분유로 바꾸었다. 그런데 분유로 바꾼 이후로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유나는 분유를 먹으면 분수토를 하면서 배앓이를 했고 수포가 나면서 얼굴이 곰보처럼 변해갔다. 딸은 유나가 모유나 분유를 먹으면 토하는 증상을 보이는 것이 유문 협착증이 아닌가 걱정했다.
유문 협착증은 위와 십이지장을 연결하는 유문을 둘러싼 근육이 두꺼워지면서 발생하는 병으로 분유가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유문 속이 좁아지고 가늘어지면 아이가 반사적으로 토하는 증상이다. 유나가 모유나 분유를 먹을 때마다 토를 했기 때문에 딸은 유문 협착증을 의심했다. 유문 협착증이 있으면 구토가 심해져 탈수증과 전해질 이상 등이 발생하면 영양이 부족해질 수 있으므로 가급적 빠른 수술을 권고한다.
유나의 증상이 유문 협착증이란 심증을 굳힌 딸은 마음이 급해졌다. 금요일 오후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유문 협착증을 진단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 나섰다. 늦은 시간이라서 진료를 할 수 있는 병원이 있을지 알 수는 없었지만 딸은 당장 유문 협착증 여부를 진단할 수 있는 1차 병원을 찾으려고 애를 썼다.
다행히 초음파로 유문 협착증을 진단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서 곧바로 유나를 데리고 병원으로 출발했다. 5시까지 도착해야 진료를 봐줄 수 있다고 해서 택시로 급하게 이동을 했지만 길이 막혀 진료시간 내 도착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딸은 걱정과 염려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할배는 계속 울어대는 유나를 달래면서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5시에 도착해서 초음파 검사를 해지만 유나 배에 가스가 너무 차서 병원에 있는 초음파로는 유문 협착증 여부를 정확히 확인하기 어렵다면서 종합병원에 가보라고 진단서를 끊어줬다. 분유만 먹으면 분수토를 하고 배앓이를 하면서 울어대는 유나를 보면서 종합병원 예약을 기다릴 여유가 딸에게는 없어 보였다. 집에 와서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상의한 후에 우리 가족은 저녁에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종합병원 응급실로 가는 도중 소품이 든 가방을 낮에 방문했던 병원에 두고 온 것을 알게 되었다. 딸이 할배에게 맡겨주었던 유나 소품을 병원에서 초음파실, 진료실 등으로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면서 휴게실 의자에 놓고 온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예민하고 신경이 곤두서 있던 딸은 할배에게 짜증을 냈다.
유나 소품을 못 챙겨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긴장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딸의 짜증 섞인 말을 들으니 할배의 마음도 답답해지고 짜증이 몰려왔다. 힘든 딸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면서도 짜증이 만들어낸 비합리적인 마음은 화를 종용하고 있었다. 마음속에서 '지금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하루 종일 정신이 없는데. 그깟 유나 소품가방을 놓고 왔다고 짜증을 내는 거지' 하는 불편함이 몰려왔다.
유나의 고통에 온 가족이 감정이입해서 일주일 이상을 힘들어하고 신경이 예민해 있기는 했지만 당사자인 딸이 제일 힘들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가라앉히고 침묵을 유지했다. 딸과 함께 보내는 앞으로의 일 년 동안이 할배나 딸에게도 참으로 소중하고 행복했던 시절로 기억될 것인데 이런 사소한 일로 서로에게 불편한 감정을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딸은 "아빠 미안해요. 제가 지금 정신이 없나 봐요. 유나 낳기 전에 아무리 힘들어도 부모님 탓이나 부모님께 짜증을 내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는데 이런 사소한 일로 짜증을 냈네요. 정말 죄송해요"라며 울먹였다. 부모와 자식 관계 등 가까운 사이일수록 힘들 때 자신과 상대의 마음을 살피면서 잘 정돈하지 않으면 사소한 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게 되고 그 일은 두고두고 두 사람 마음에 아픔으로 자리하게 된다.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진단서를 보여주고 치료를 요청했지만 담당 의사분이 안 계시다, 아이가 너무 어려서 치료가 어렵다 등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치료가 어렵다고 했다. 119에 연락해 다른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119는 계속 전화 대기 상태였다. 종합병원 응급실 세 군데에서 진료 퇴짜를 맞자 마음은 급하고 속은 타들어 갔지만 의료대란 사태 앞에서 해볼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뉴스 기사로 의료대란 사태를 접하다가 당사자가 되어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게 되고, 응급실에서 진료가 어렵다는 말을 듣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 진료해 줄 이 병원 저 병원에 연락하다 보니 의료대란 여파의 한가운데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나는 시급을 다투는 병이 아니었기 얼마나 다행인지 감사한 마음까지 들었다. 정말 촌각을 다투는 위급한 상태에서 병원 응급실을 찾았는데 진료를 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정신이 아찔해졌다. 의료대란이 기득권 사수의 이슈인지 정치적 이슈인지 우리 같은 평범한 서민들은 잘 알지 못하지만 치료가 급한 환자들이 적시에 치료받을 수 있도록 원만하게 잘 해결되기를 기원했다.
자정이 넘어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유나는 울다가 지쳐 잠이 들었고 할배, 할매, 유나 엄마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오후 네 시부터 자정까지 발을 동동 구르면서 유문협착증 증세를 확인하고 치료해 보려 했지만 소득 없이 하루가 지나갔다. 집으로 돌아와 할배는 평온한 얼굴로 자고 있는 유나를 안고 침대에 뉘었다. 분유를 먹고 토하고 배앓이를 하는 원인을 해결해서 유나에게 평온한 일상을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