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울하다. 이렇게 속 시원히 밝히는 것이 왜 그동안 어려웠는지 모르겠다. 본래 아무리 I라고 해도 사람들은 나를 E로 보곤 했다. 그런 내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시작이 뭐였는지, 언제였는지도 이제 모르겠다. 그냥 고독이란 것이 찾아왔구나 싶었던 게 우울이었다. 나는 사람을 만나면 생기를 얻었고 사람들을 만나는 게 어렵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는 사람을 만나는 게 힘에 부치고 에너지를 다 쓰고 돌아오는 기분으로 바뀌었다. 그동안 내가 E가 아니었음을 이렇게 실감하게 된다. 아니면 우울이 자연스레 사람 만나는 횟수를 줄여버려서 얻을 에너지를 더 못 얻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어쨌든 지금은 사람을 애써 만나고 싶지 않다. 만남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애써야 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하루 중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시간은 저녁식사 시간이었다. 예전 글에도 적은 적이 있지만 나는 대접하고 대접받는 그 시간이 좋았다. 내가 정성껏 음식으로 가족들을 대접한다면, 가족들은 각자의 하루 이야기를 들려줌으로 나를 대접했다. 우리 저녁식사 시간엔 푸념도 있었지만 웃음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 저녁식사 시간에 내가 소홀해지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이 겨울방학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돌아서면 밥 해야 하는 에너지는 생각보다 고된 노동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메뉴를 겹치게 주지 않으려는 엄마 마음이 부담을 갖게 하는 것이다. 전국의 모든 엄마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도대체 아침, 점심으로 무얼 챙겨주느냐고. 저녁 한 끼만이라도 제대로 챙기고 싶은데 그 제대로를 쪼개고 쪼개서 아침, 점심으로 나누니 제대로 된 식탁 모양새가 사라지고 있다. 그게 또 날 우울하게 한다.
나는 현명하지 못하고 둔해서 요즘 그렇게 잘 나온다는 밀키트도 이용하지 않는다. 장을 봐서 손수 재료를 다듬고 정석대로 요리를 한다. 그러다 보니 품이 많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내 우울과 에너지 고갈은 음식의 질을 떨어트리게 한다.
오늘 처음으로 볶음밥 세트를 구매해 봤다. 프라이팬에 볶기만 하면 되는 새우볶음밥이다. 새우가 냉장고에 있어서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건 다른 요리에 써먹기로 하고 덜컥 지르고 말았다. 주위에서 추천하는 이유가 있겠지 하고. 좀 더 편해져야 이 우울이 멀리 가려나 싶어서 약처방받듯이 그렇게 주위의 추천을 처방받아 본다.
나는 우울하다. 예전이라면 크게 웃을 남편의 실없는 농담에도 간신히 미소 지을 뿐이다. 인정하고 보니 마음이 조금은 편안하다. 우울이든 기쁨이든 어떤 마음 상태를 오롯이 인정할 때 마음에 평온이 찾아온다고 했던가. 그게 내 상태인 걸 어쩌겠는가. 상태를 인정하고 안정으로 되돌릴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다행히 잘 웃는 아이들이 있고 내 상태를 잘 살펴주는 남편이 있다. 나는 행복할 수 있다. 이미 그 안에 있으니까 조금씩만 더 웃어 보자. 이러면 되는 거겠지? 의사는 특별한 조언을 해주지는 않았다. 그저 내 얘기만 들어주고 약을 처방해 줄 뿐이다. 나는 내 안을 들여다 보고 어떤 때 평안한 지를 찾아내야 한다. 이 우울과 불안을 잘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그랬으니까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며. 나는 나를 좀 더 믿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