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미소로 안아주기

평온을 찾아

by 보포름

첫째가 씻고 나와서 발가락을 내 발가락에 문질렀다. 방금 씻고 나온 따뜻한 발의 온도가 딱 좋았다. 건강한 온도로 느껴졌다. 건강한 아이의 건강한 발이다. 거기에 촉촉하기까지 하다. 싱그럽다. 아이는 아이의 방식대로 내게 사랑을 건네고 있었다. 고학년이 되고 낯 간지러운 소리는 잘하지 않게 되었지만 소리 없는 미소로 팔 벌려 나를 안아준다. 첫째의 따뜻한 발가락 문지름도 소리 없는 포옹과 같다. 발가락으로 발가락을 안는다.

오늘도 하루가 길게 느껴졌다. 하지만 밤이 되면 또 오늘이 가는구나 아쉽기만 하다. 밤엔 무드등에 그림자가 늘어지는 느낌이다. 이 밤엔 시간이 천천히 갔으면 좋겠다. 오늘은 이불에 들어간 아이들 옆에 끼어 본다. 첫째가 이불속에서 또 발가락을 꿈틀거린다. 이번엔 발이 식어있다. 따뜻하게 만들어주고 싶다. 나도 발가락을 꼼지락 거려본다. 우리 발가락은 왈츠를 추듯이 서로 박자를 맞춘다. 웃음이 나오는 순간이다.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것에 웃을 수 있을 때 마음이 평온해진다. 어떤 마음으로 이 아이는 내게 미소 짓고 있는 걸까?

나는 아이의 얼굴을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 눈웃음을 짓고 있는 눈이 예쁘다. 나는 쌍꺼풀이 없는데 첫째는 쌍꺼풀이 있다. 남편의 속쌍꺼풀을 닮았나 보다. 그 예쁜 눈으로 웃음을 날리면 보조개가 들어간다. 이건 나를 닮았다. 웃을 때 도드라져 보이는 특징을 하나씩 물려주었다. 우리의 합작품이다. 둘째가 내 어깨에 살포시 손가락을 올려둔다. 손이 따뜻하다. 적당한 무게감이 또 나를 안정시킨다. 엄마가 옆에 있다는 것이 아이들을 안정시키기도 하지만 나 역시 그렇다는 걸 아이들이 알까? 둘째의 얼굴도 들여다본다. 둘째의 얼굴은 신기하다. 쌍꺼풀도 보조개도 없는데 우리 부부를 닮았다. 도드라지는 특징은 없는데 콧대가 높아서 전체적으로 균형이 맞아 보인다.

내 어깨에 올려놓은 손가락이 나를 다독인다. 나도 편한 자세를 찾으며 둘째 허리에 자연스레 손이 올라간다. 첫째와의 발가락 왈츠는 그만두고 첫째와 둘째 허리에 양쪽 손 하나씩 올려놓고 토닥여준다. 이럴 때 두 아이의 침대를 붙여놓길 잘했다 싶은 생각이 든다. 슈퍼싱글 사이즈 두 개를 붙여두니 내가 어느 쪽이든 끼어 들어갈 만큼 공간이 생겨서 두 아이의 손을 잡을 수 있다. 가운데 가드가 있고 인형들이 둘러져 있어서 편하진 않지만 매일 밤 내가 끼어들어 가는 게 아니니까 모처럼 이 불편함도 평온으로 덮어본다. 아이들이 내 품에 포근함을 느끼는 것 같아도 사실은 두 아이들 속에서 내가 포근해진다. 오늘 밤은 두 아이의 발가락과 손가락에 행복을 느낀다. 낮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행복이다. 종종 두 아이 사이에 누워있어야겠다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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