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른얼른퇴근합시다.
출근 시간은 당직인 날 일 땐 7시 50분까지, 보통은 8시 20분까지 그리고 퇴근 시간은 정해지지 않았다.
간간히 유튜브로 예능 '아무튼 출근'을 즐겨 본다. 예전에는 관심 없던 직장인 일상이 나의 현실이 되었기에 관심이 더 갔다. 새벽에 일어나 출근하는 모습을 보면 걸어서 출근하는 나는 '나름 늦은 시간에 출근하는구나' 혼자 위로도 받을 수 있었다.
고등학생까지만 해도 나는 아침잠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자는 게 좋았다. 다른 이유보다는 그냥 할 게 딱히 없었기에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잠으로 에너지를 보충한다는 생각이 강했었다. 그러다 대학생이 되면서 차츰 내가 하고 싶어서 해야 하는 일이 생기고, 잠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나타나더니, 현재는 주말에도 8시에는 일어나는 사람이 되었다.
운 좋게 직장이 걸어서 출근할 수 있는 거리에 있기에 아침에 25분가량을 걷는다. 버스를 타면 10분에 도착할 거리이지만, 도착 후 자리에 앉았을 때 비몽사몽 한 느낌이 싫어서 걷는 것도 이유이다. 편의점에서 더울 땐 아이스커피, 추울 땐 따뜻한 커피를 텀블러에 담고 출근하는 내 모습 자체도 좋아서 걷기도 한다. 그렇게 25분 동안 걸으며 몸의 온도를 약간 올려놓고 교실로 향한다.
반면, 퇴근 시간은 예측이 되지 않는다. 내 할 일 끝났다고 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유치원 교사에게 주어진 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교육과정 운영과 행정 업무 처리이다. 그중 행정 업무의 경우 담당자를 지정하여 세분화되어 있다. 교육청에서 내려온 행정 문서를 담당자가 확인하고 처리해야 하는 일이 주어진다. 똑같은 시간 동안 처리하는 시간은 모두가 달랐다.
교육과정 반을 맡고 있는 나는 2시면 교실에서 나와 사무실에서 다음 수업 준비, 행정업무를 처리하다, 하원 하는 유아를 돕거나 교실 청소를 하고 5시 정도가 되면 당직은 당직업무를 아닐 땐, 나머지 개인 업무를 처리하는 시간이다. 계약서에 기재된 퇴근 6시까지는 1시간가량 남은 시간이고 충분히 수업 준비와 행정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넉넉한 시간이다. 옆 선생님은 인스타를 보고 계신다. 또 다른 선생님은 결혼 준비로 어떤 웨딩드레스를 입어야 할지 또 다른 동료 선생님과 이야기 중이었다. '다들 일을 다 마쳤나 보다, 오 오늘은 정시 퇴근인가!? 부지런히 일에 몰입하고 5시 50분, 흠 끝났다.' 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왜 다들 바빠 보이지..? 빠르게 컴퓨터의 타자기를 타타닥 치며 있는 선생님들을 보며 이상함을 느꼈다.
"얼른 퇴근해" 6시 20분에 퇴근하시는 원감 선생님이 자리에 일어나면서 하는 말씀이다.
"네, 안녕히 가세요~!"
'원감 선생님이 안 가면 다들 안 가시는 거구나, 이젠 갈 준비 하자'를 속으로 말하며 또 주의를 돌아보니 또 빠르게 컴퓨터의 타자기를 타다닥 치며 있는 선생님들을 보며 이상함을 느꼈다. 아무도 왜 다들 안 가냐는 말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타타닥 타타닥 맥없이 들려오는 타자 소리만 무색하게 들렸다. 퇴근하긴 글렀다. 이런..
퇴근은 내가 일만 하는 기계가 아님을 일깨워 주는 시간이다. 퇴근 후 내 시간은 양보할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다. 일을 모두 끝내지 못한 동료를 기다려주고 도와주며 서로의 동료애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만들어진 함께'로 다들 '눈치만 보는 각자'일 뿐이었다.
혼란스러운 나의 생활에 도움을 청하고자 이미 경력이 4년은 되는 친구들에게 상담을 한 적이 있다.
"원래 사회생활이 이런 거니? 좀 많이 혼란스러워 이 상황에서 자꾸 벗어나려고만 하고 있어서 어떻게 해결해야 될지 모르겠어, 넌 어떻게 그 시간을 지나왔니?"
"흠,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왜 그렇게 대들었을까라는 생각을 해, 나도 고집이 있는 편이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안된다면 무작정 밀고 갔거든, 책임은 지면 된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해보니까
"네"하고 내가 하고 싶은 거 찾아가면 돼
결국 공동생활이라는 게 어느 정도는 맞춰짐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4년이나 지나 보니 알겠더라, 지금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은 밀고 가, 그런데 다른 점이라면 어느 정도는 맞춰서 한다는 거지."
나는 왜 이렇게 으르렁 거렸을까, 친구의 조언이 내 귀를 어루 만져줬을 때, 심장이 쿵쾅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