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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살던 것들, 한 끼에 담겨 있었다

특별할 것 없었던 점심, 그 순간 마음이 움직였다

by 최원호
그냥 점심 한 끼였을 뿐인데


일하다가 점심시간에 간 숨은 맛집.

반찬은 신선하고, 정성과 정이 느껴진다.

특별한 맛은 아닌데 정감이 간달까.


가게 밖엔 조그마한 귀여운 화초 몇 개와 화분들이 있다.

내부 느낌은 그것과 어우러지게 짙은 갈색의 나무 구조들이 섞여 있다.

탁자, 대들보, 벽에 붙은 메뉴 등등.


메뉴판에 없는 뚝배기 닭볶음탕을 시키고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가게 바로 옆에서 피고 있었는데, 건너편 양갈비집 앞에 보더콜리 강아지가 보여서 한참을 바라봤다.

씰룩씰룩 움직이는 귀, 호기심에 찬 눈, 의젓하게 엎드린 자세가 어우러져 아주 귀여웠다.


피우고 들어오니 반찬들이 다 나와 있었다.

오이소박이, 무생채, 미니 전, 샐러드, 미역줄기볶음, 두부조림, 잡곡밥.

정갈하게 나온 많은 반찬을 보고 있으면 눈부터 즐겁게 시작한다.


작은 전부터 무의식적으로 손이 갔다.

전은 간이 강하지 않고, 카레를 넣은 듯한 맛. 가정집에서 만든 맛이었다.


뚝배기 닭볶음탕이 나왔다.

(원래 나는 ‘닭도리탕’이라고 써져 있어야 먹는데, 여긴 믿고 먹는 곳이라서 시켜봤다.

닭도리탕은 원래 끓이는 거다. 닭볶음탕이라 해서 진짜 볶는 곳이 있기 때문에.)


크지 않지만 알찬 닭이라고 해야 하나.

약간 슴슴한 고기맛이어서 ‘음, 국물이 밍밍할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국물은 간이 확실히 되어 있었고, 밥에 비벼 먹고 싶은 맛이었다. 일단 나중으로 보류.


평소엔 항상 딴 데 정신 팔린 채로 먹다가, 정말 오랜만에 ‘먹는 행위’ 그 자체에 집중했다.

반찬들은 신선함이 느껴졌고, 깔끔하고 맛있었다.

나는 밥과 고기와 반찬을 같이 음미하고 있었다.

갑자기 울컥하는 감정이 들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일상에 감사하기도 했고, 그 음식 자체로 아름다웠다.

재료를 키워서 농작한 농부분들, 맛있게 정성 들여 조리한 가게분들.

모든 것이 어우러져 소박하지만 정겨운 맛을 내고 있었다.

음식이 화려하고 대단히 맛있어서 그런 감정이 든 건 아니다.


왜 울컥한 건지 모르겠는 채로 음식을 먹으며 생각해 보았다.

음식에 감동한 건지, 그동안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못 느낀 나 자신에 대한 미안함, 억울함인지,

여러 감정이 든 건지… 뭐 때문인지 정확히는 몰랐다.


하지만 이 생각은 분명히 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분명 소중한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았었다고.

소소한 것, 거창한 것 상관없이 좋은 추억들을 많이 잊어버린 것 같다고.

기억하고 싶은 추억의 조각들 중 몇 개는 많이 희미해졌다고.

지금에서야 느낀 것 같다.


말은 휘발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글은 영원히 남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글로써 나의 소중한 이 인생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나중에 나이 들어 다시 보면 정말 재밌을 것 같아서.


쨌든, 먹는 와중에 울컥하는 감정이 들어 정신이 없었다.

잡생각도 많이 들었지만, 소중한 이 순간에 집중하자고 생각했다.

먹으면서 샐러드는 마지막에 먹으려고 외면하며 먹었다.

이제 닭을 다 먹어서 국물을 밥에 부었다. 역시 스까먹어야 제맛.


반찬을 다 먹고 부족해서 오이소박이를 더 달라고 부탁해 식사를 마무리했다.


글이 좀 감성적인 거 같아서

음식에 대한 내 견해를 말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략하겠다.

(하나하나 따지면 장단점이 다 있기 때문에.)


일상 속 소중함, 아름다움의 가치를 등한시한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원래 음식점에 대한 전반적인 생각이나 견해를 쓰려했지만, 어쩌다 보니 딴 길로 샌 것 같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개인적으로 의미 있던 방문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날이, 가장 소중한 기억이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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