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친구의 기준에선 내가 잘못이었다
고등학교라는 우물에서 처음 세상 밖으로 나오자, 대학이라는 새로운 곳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새로운 세상은 나에게 더욱 많은 경험과 넓은 시야를 제공해 주었다. 특히 새로운 공간에서 만나는 새로운 사람들은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좋은 원재료였다.
하지만 표본이 커지면 이상치도 많아지는 법. 세상에 좋은 사람들은 많지만, 통계적인 '이상치'에 해당하는 해로운 사람들 역시 고등학교 시절보다 많아지는 법이다. 나 역시 여러 가지 단체에 소속되어 활동을 하면서 내 기준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인상깊었던 경험은 바로 고등학교 동창의 인성을 다시 보게 된 것이었다. 그 동창을 A라 하자. A와 B, 그리고 나까지 해서 셋이서 만든 동아리가 있다. 이 동아리는 그동안 직감으로만 느꼈던 A라는 사람의 해로운 면을 분명하게 느끼게 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
A는 매우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다. 동아리에서는 '자신이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 해 온 것을 보여주라고 하면 그게 있었냐는 듯이 묻는 것은 예사이며, 자신이 맡은 일을 시간이 닥쳐 남에게 떠넘기는 것 역시 심심찮게 보고 있다. 반면 자기 자신의 프로젝트에는 나름대로 참여를 하는데, 이것도 본인에게 도움이 될 만한 부분만 골라서 한다는 점에서 내 눈에는 좋은 행동으로 보이지 않았다.
요즘 부전공으로 경제학을 하고 있는데, 경제학에서는 이런 사람을 '체리피커(cherrypicker)'라고 지칭한다고 한다.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것만 뽑아먹고 책임은 회피하는 사람을 가리키는데, A에게 어울리는 학술 용어가 아닐 수 없다. A가 반복적으로 이런 행동을 해 가며, 점차 A에 대한 나의 인식이 변화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A의 무책임한 면모를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 발생하였다.
우리 동아리는 조별로 프로젝트를 만들고 이끌어야 하는데, 기술적인 문제로 인해 한 조가 진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운영진은 A에게 이 조를 맡아서 피드백과 간단한 온라인 강연을 하도록 맡겼다. 첫 강연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잘 진행되어, 내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다음 강연에서 발생했다. A가 강연 준비를 해 오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A는 B와 나에게 "B랑 프로젝트 하느라 어쩔 수 없었다. B, 너는 알지 않느냐"라며 전혀 반성이 없는 모습을 보였다. 그 강연은 무려 2~3주 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것으로, 공모전 일정과 겹치는 것을 알았다면 사전에 자료를 만들어놓고 시간 배분을 잘 하였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게다가 A는 한 발짝 더 나아가, 나에게 자신이 옛날에 들었던 자료 몇 개를 던져주며 "니가 해"라고 했다. 그러나 이 자료는 기술적인 부분이었기 때문에, 내가 당장 그것을 강연할 수 없었다. 심지어 강연 15분 전에 던져준 자료를 어떻게 내가 한 눈에 해석하겠는가. 내가 어려워하자 A는 개인톡으로 "아니, 이걸 ~~하게 하면 되잖아"라며 되려 성내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운영진 단톡방에는 "~~~하세요"라며 명령조로 지시를 내리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나와, 함께 달려들었던 다른 운영진 1명, 그리고 회장인 B마저 포기하자 그 친구는 한 마디도 없이 그 온라인 회의를 나가버렸다. 결국 해당 조원에게 사과를 한 것은 잘못을 한 A가 아닌 회장인 B 친구가 대신한 것이다.
나와 다른 부원들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회의가 끝나고 한참 지난 후, A는 해당 조원에게 학습 자료를 전송하였다. 암만 봐도 급조한 자료였다. 나와, B와, 다른 운영진과, 심지어 어려움을 겪으며 강연을 듣기 위해 기다린 조원에게까지 약 10여 명 가량에게 피해를 끼친 A였지만 결코 사과는 없었다. "다음 시간에 ~~ 합시당"이라는 애교 섞인 말투가 다였다.
사건이 터지고 얼마 후, 학술대회 발표로 인해 B와 나는 4박 정도 함께 묵을 일이 생겼다. 학술 발표가 모두 끝나고 난 후, 숙소에서 배달음식과 맥주를 시켜놓고 진지한 대화를 하던 도중 A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앞선 사건 당일 있었던 이야기를 복기하며 솔직한 마음을 B에게 털어놓았다. B도 내색은 안 했지만, 그것에 많이 공감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다행히 A와 B가 서로 어느 정도 교류가 있었던 사이였기 때문에, A에 대한 인식이라든지 이면을 조금 더 넓게 공유할 수 있었다. 다만 나는, B에게서 그때 그 사건 이후 A의 반응을 듣고 개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바로 A가 되려 나에게 역정을 냈다는 것이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하고 들어봤다. B가 내게 말해준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A는 갑작스럽게 넘겨준 자료를 내가 '해석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지 못한 것'에 대해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고 한다. 그것도 모자라서 B에게 나의 험담을 했다고 한다. 어떻게 전공자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냐는 것이다.
너무나도 얼토당토않은 이유에, 나는 화를 느끼지 못했다. 재밌었다면 재밌었달까. 심지어 엄밀히 말하자면 A와 나는 전공이 같지 않다. A가 학과 이름만 보고 대강 착각한 모양인데, A와 내가 배우는 교육과정은 상당히 다른 수준이다. 백 번 양보해서 내가 그 지식을 몰랐던 것이 잘못한 일이라고 해도, 이 사건의 핀포인트는 그 친구가 무책임하게 강연을 팽개친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던 나는, A의 반응을 듣고서 벙찌고 말았다.
A는 자신이 일을 팽개쳤던 것은 '바빠서 그럴 수 있었다'며 정당화했고, 무려 15분 전에 받은 관련 전공 자료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대신 강연을 진행하지 못한 나는 비난한 것이다.
이처럼, A같이 가끔가다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다. 무언가를 얻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가가 있어야 하지만,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행동하는 A가 나에게는 그러한 사람이었다. 동아리에서 프로젝트 경력이란 것을 얻고 싶으면 최소한 자신이 맡은 바 소임은 다 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우리가 고등학교 시절 내내 배운 윤리이자 도덕이고 규범이다.
나는 본디 어떤 사람이 나에게 비난이나 비판을 가했다는 것은 '나름대로의 인생사와 가치관과 지혜'를 가진 사람이 나를 비판하는 것이므로 뼈아프게 받아들이곤 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A의 비판을 듣고는 생각보다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 나를 비판하는 그 상대방 A는 '바쁘면 관련 전공자인 다른 사람에게 일을 넘겨도 된다. 그것을 못하면 전공을 이해하지 못한 그 사람의 책임이다'라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의 대척점에 선 가치관이 고작 이 정도였다면, 되려 누가 올바른 길을 걷고 있는지를 반증하는 하나의 예시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나를 기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