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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룰루 Feb 17. 2023

나가사키 원폭 자료관 방문후기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많더라

  내가 가본 일본 도시 중 가장 아기자기한 곳은 나가사키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아날로그 전차는 이곳이 일본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해 준다. 하루종일 전차를 마음껏 탈 수 있는 자유이용권을 구매해서 전차여행만 해도 나가사키 여행을 제대로 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가사키는 개항기에 일찍 문호를 연 곳이기도 하다. 네덜란드와 교역이 많았는데, 그 때문인지 테마파크인 하우스탠보스 등 일본과 서양의 조화로운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한국사람들에게 나가사키는 두 가지로 친숙하다. 첫 번째로 나가사키 짬뽕이 있다. 차이나타운에 가면 나가사키 짬뽕을 파는 식당을 여럿 볼 수 있다. 맛은 우리가 예상한 것과는 조금 다르다. 개인적으로는 그냥 전국에 퍼져있는 체인점 '링가하토'가 더 내 입맛에 맞았다.



 두 번째, 나가사키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폭탄 투하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막상 와보니 이 아날로그 매력이 있는 곳이  불과 80년 전에는 참혹한 죽음의 현장이었단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 이 도시에는 전쟁의 상처를 잊지 않기 위해 원폭 자료관이 있다. 과연 어떤 자료들이 있는지 궁금해서 찾아갔다.


 원폭 자료관에는 그날의 기록들이 있었다. 몇 명의 희생자가 있었는지, 원폭 피해자들은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원자폭탄의 위력은 어느 정도였는지 까지도. 틀린 말은 없었다. 전쟁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는지,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 자료관에서 알 수 있었다. 다만 사실과 진실은 다르다. 사실 태평양전쟁은 일본이 시작했으며, 태평양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한국인이 일본으로부터 희생당했다. 유감스럽게도 이 사실은 찾아볼 수 없었다.


*2021년 한국인 동포들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세웠다. 하지만 이마저도 강제 징용 및 노동에 투입된 한국인을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라고 간접적으로 명시하였다.


 인간의 본성이 그런가. 자신이 당한 것은 유난히 또렷하게 가슴에 박힌다. 그에 비해 자신이 잘못한 건 쉽게 잊는다. 잘못한걸 아예 모르기도 한다. 나 역시도 예외가 아니다.


 내가 대학생이었던 시절, 의지하던 후배들과 관계가 끊어진 적이 있다. 함께 다녀온 농촌봉사활동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 나는 복학생이었고, 후배들을 인솔할 책임이 있었다. 나와 가장 친했던 후배들이 날 도와주긴커녕, 일부러 나 보란 듯이 엇나갔다. 결국 마지막날 후배들과 대판 싸웠고 그 뒤로는 졸업할 때까지 데면데면 지냈다. 믿었던 후배들에게도 외면받고, 공허한 대학 생활을 했다고 생각했다. 몇 년이 지나서 알게 됐는데, 그 친구들이 나한테 화가 난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내가 농활 때 페트병으로 뒤통수를 때리면서 짜증을 부렸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이럴 수가. 내가 피해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내가 원인 제공자였다니. 그저 자기 연민에 빠진 원인 제공자일 뿐이었다니.


나가사키에 있는 평화기념상

 자신이 손해 본 것만 강조해서 기억한다. 자신이 기어코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연민을 느끼기 쉬운 게 사람의 특성인가 싶다. 원폭 자료관에 있다 보니 이때 당시 나 자신을 피해자라고 착각하던 기억이 다시금 떠올랐다.


 한국인이 아니었다면 나가사키 원폭 자료관을 좀 더 있는 그대로 관람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평화가 유지되어야 함은 동의하는 바다. 다행히 지금의 나가사키는 전쟁을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편안하고, 아기자기하다. 앞으로도 이 평화가 유지되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내가 피해자긴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가해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면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일이 줄어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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