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을 가면 평소에 안해본 걸 하고 싶어진다. 새로운 환경에서는 도전에 관대해진다. 가령, 평소에 요리도 안하면서 괜히 '요리클래스'를 찾아본다던가. 이번 태국여행에서는 재즈공연이 먹잇감이었다. 치앙마이는 랜드마크가 없는데도 관광객으로 붐빈다. 마음편히 하고싶은 걸 실천하기 좋은 분위기라서다. 그래서 한달살기를 하는 프리랜서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치앙마이와 재즈는 잘 어울린다. 정해진 박자를 타지않고 유유히 흐르는 재즈가 치앙마이와 닮았다. 미리 조사한 정보에 따르면 치앙마이에 있는 라이브클럽 겸 재즈바 '노스게이트'라는 곳이 유명하다. 치앙마이 여행의 마지막날 저녁, 치앙마이에서의 마지막 추억을 만들기 위해 그곳으로 향했다.
어랏. 재즈바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없다. 분명 오늘은 휴일이 아닌데. 설마하는 마음으로 가게에서 공식적으로 운영하는 SNS에 들어가본다.
태국은 부처님 오신날에 주류 판매가 금지된다. 재즈바의 주 수익원이 술을 파는건데, 이게 안되니 가게가 열지 않은 것이다. 태국과 한국은 부처님 오신날이 달라서 이런 변수는 예상하지 못했다.
구글맵으로 치앙마이에 있는 재즈바들을 뒤진다. 한군데, 문을 연 재즈바를 찾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구글 평점을 보는 것도 사치다. 재즈클럽 'Moment's notice'로 향한다. 위치가 꽤 외지다. 치앙마이 공항 인근이다. 가게와 가까워 갈수록 사람의 인적이 드물어진다. 이런 곳에 재즈바가 정말 있는건지 머릿속에 물음표가 뜬다. 의심을 거두고 구글맵을 따른다. 어느새 넓직하게 재즈바에 당도했다. 깔끔한 건물과 정원이 인상적이다.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았나보다.
재즈공연이 한창이었다. 나도 청중들 사이에 들어갔다. 칵테일처럼 생긴 사과쥬스를 마시면서 공연을 관람했다. 선곡은 남녀노소 모두가 알만한 올드팝이 많았다. 음악적 소양은 없으나, 가창자와 연주자들 모두 초보가 아님은 확실했다. 늦은 밤, 좋은 음악, 귀를 열고 있는 청중들, 자신의 공연에 흠뻑 빠져있는 연주가들. 재즈 공연이 이런 매력이 있구나. 그 공간에 푹 빠졌다. 각 악기의 소리에 집중해본다. 색소폰, 기타, 드럼. 보컬의 창법만 주위깊게 들어본다. 그리고 전체 노래를 그냥 즐긴다.
11까지만 공연을 보고 집에 갈 생각이었으나, '한곡만 더 볼까?' 욕심에 시간이 늦어진다. 그러다가 어느덧 12시가 훌쩍 넘었다. 멍하니 두시간 넘게 혼자서 공연을 즐겼다. 내가 왔을때 있던 관람객은 이미 다 집에 가고 없다. 피곤을 이겨낼 정도로 공연이 훌륭했다. 알코올이 들어갔으면 더 흥겨웠을텐데. 한국에서도 종종 재즈공연을 찾아다녀야겠다고 다짐했다. 치앙마이 재즈바에서 그 느낌, 내 흥겨움이 기억에 남았기 때문이다. 재즈가 주는 나른함, 라이브 공연의 풍성한 소리가 좋았다.
그러나 치앙마이에서의 내 재즈 사랑은 금새 무색해졌다. 집에 돌아온 직후에 재즈바 몇군데 찾아본 것을 제외하고는, 재즈에 대한 관심이 팍 식었다. '여기는 너무 먼데?', '여기는 공연팀이 그다지', '너무 공간이 큰거 아닌가?' 가지 않아야 하는 핑계를 만들어댔다. 사실 구미가 당기지 않는건데, 괜히 이유를 만들어서 '불가피한 불참'으로 둘러댄다.
여행이 그렇다. 뭐든 흥미롭다. 평소에 쓰지 않던 감각들을 쓰다보니, 내 취향이 아닌 것들도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재즈도 그러지 않았을까. 내가 좋아했던 건 '재즈'가 아니라, '낯선 장소를 여행하는 것'이었을 지 모르겠다. 재즈만의 얘기는 아니다. 스페인 여행을 가면 '돌아가면 스페인어를 배워야지', 일본을 가면 '다음에 일본에 왔을때는 현지인과 소통할거야'라고 다짐했었다. 이 다짐들은 두달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깨끗한 구몬 일본어 학습지 팝니다ㅠㅠ)
하지만 이게 여행의 매력이다. 평소에 해보지 않았던 걸 쉽게 시도해볼 호기심이 뿜어져 나오는 것. 그래서 여행이 필요하다. 반복된 일상에서는 새로운 걸 도전하기 힘들기 때문에. 대부분은 일상에 돌아오면 열기가 식지만, 그래도 괜찮다. 적어도 여행 그 순간에는 즐거웠으니깐. 가끔 흥미를 유지하는 것도 건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