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를 여행지로 정한 가장 큰 이유는 타이 마사지였다. 평소 마사지를 좋아하는터라, 이 참에 한번 배워보고 싶었다. 마사지샵에서 타이마사지를 받는 것도 좋지만, 대강이라도 타이마사지 방법을 배워놓으면 내가 타이마사지를 받을 때 더 재밌게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지인들의 뭉친 근육을 내가 풀어줄 수도 있고. 방콕, 치앙마이 같은 태국의 대도시에는 마사지를 배울 수 있는 학원이 여럿 있다. 치앙마이가 '디지털 노마드'들의 성지라는데, 우리 회사는 해외에서 재택근무를 허용하지 않는다. 디지털 노마드는 아니더라도, 이번 휴가는 며칠 동안 마사지 노마드의 삶을 살아보겠다. 더운 낮에는 마사지 스쿨에서 마사지를 배우고, 서늘한 저녁에는 올드타운의 사찰과 식당을 즐기면 정말 알찬 휴가가 되겠다.
마사지 스쿨을 찾다가 유튜브에서 '제라 마사지'라는 업체를 발견했다. 후기를 보니, 다른 곳보다 가격이 비싸지 않으면서 소규모라 마음에 들었다. SNS로 연락해서 미리 예약을 잡았다. 원래는 하루 전에 학원에 방문해서 결제를 해야 했지만, 짧은 내 여행일정을 배려해 주셨다. 당일날 바로 현장결제를 하고 수업을 듣기로 했다. 나는 타이마사지 3일 코스를 신청했다. 수강료 2800밧(한화 약 11만 원). 아침 9시 30분부터 3시 30분까지 강습을 듣는다. 중간에 점심시간이 있는데, 학원에서 점심을 준비해 주신다.
3일 동안 수강생은 나 혼자였다. 마사지 강습은 원래 수강생들끼리 마사지를 주고받으면서 이루어지는데, 나는 혼자 수업을 받으니 실습대상이 여의치 않았다. 때마침 제라 마사지에서 기거하고 계신 한국인이 계셔서 이분이 나의 모델(실습대상)이 되어주셨다. 나는 이 분을 '옥'이라 칭했다. 옥은 5년 전에 제라 마사지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선생님들과 친분을 쌓았다. 이미 제라 마사지 선생님들이 옥의 한국집에서 머무르며 한국 여행을 한 적도 있다. 내가 옥을 만난 시점에는 3주째 제라 마사지에 계신 중이었다. 그리고 당분간 더 머물 계획이라고 했다. 그녀는 그간 여러 학생들의 마사지 실습대상이되어주다 보니,사람들의 마사지 실력을 평가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나에게도 피드백을 성의 있게 해 주셨다. 명창보다 귀명창이 더 중요하다는 누군가의 말이 생각났다.
옥은 나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미스타 김은 자리를 잘 잡아. 눌러야 하는 부위를 꼼꼼히 빼먹지 않고 눌러주는데, 속도가 너무 빨라. 듬성듬성 눌러도 되니깐 천천히 마사지를 해야지. '빨리빨리'를 좋아하는 한국사람은 어쩔 수 없나(웃음)"
실제 마사지 수업에서 선생님께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릴랙스'다. 마사지사가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마사지를 해야 한다. 그래야 마사지를 받는 사람도 몸의 긴장을 풀고 편안한 상태가 된다. 그에 반해 나는 '마사지 동작이 몇 개 남았지? 다음 동작은 뭐더라?' 같은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마사지를 마치 과업처럼 여기고 있었다. 마사지를 미션수행하듯이 하다 보니 오히려 천천히 하는 게 더 힘들었다.
다행인 점은 타이마사지가 생각보다 할만하다는 것이다. 타이마사지를 배울 때 체력적으로 힘들까 봐 걱정이 됐었다. 의외로 그다지 힘들지가 않았다. 손가락의 힘만 쓰는 게 아니라, 큰 근육을 함께 사용하도록 선생님이 알려주셨다. 힘이 덜 드는 방향으로 내 손의 방향을 고쳐주시고, 다리의 각도도 잡아주신다. 수강생이 나 혼자다 보니, 내 자세를 집중해서 봐주셨다. 개인과외를 받는 호사를 누렸다.
치앙마이에서의 시간은 평소 못지않게 규칙적이었다. 7시 30분에 일어나서 교본을 챙겨서 카페에 간다. 학원을 가는 길에 있는 카페 중 마음에 드는 곳에 들어간다. 카페에서 전날 배운 내용을 복습한다. 그리고 9시 30분부터 수업을 듣는다. 전날 배운 내용 중 어려웠던 내용은 선생님께 다시 물어본다. 학원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수업을 마치면 3시 30분이다. 호텔에 와서 한숨 자고 나면 날씨가 조금 서늘해진다. 저녁부터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사찰을 구경하다 보면 하루가 뚝딱이다.
제라식 오마카세. 매끼 망고가 나와서 좋았다.
내가 열거한 치앙마이의 기록은 직장인과 다를 게 없다. 회사를 가면 월급을 주지만, 마사지스쿨은 내가 돈을 내는 거니깐 따지자면 학생의 삶과 비슷한가. 누군가는 '놀러 가서까지 왜 굳이 바쁘게 살아. 길지도 않은 여행인데.'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렇게 규칙적으로 평소에 하지 않던걸 하니깐 상당히 리프레시가 되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 이거 대체 어떻게 하는 건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해 봤자 머릿속에 온갖 잡생각이 난무하여 포기하고 만다. 그러니 차라리 아예 다른 무언가에 몸과 정신을 집중하는 게 효과적인 휴식 방법이 된다.복잡한 일상에서 잠깐 외출하는 기분이 든다.
혹시 리프레시를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나와 같은 방법을 사용해 보는 건 어떨까. 일상에서 해본 적 없었던, 하지만 궁금했던 무언가를 찾아서 몰두해 보는 거다. 해외여행일 필요도, 마사지 수업일 필요도 없다. 당신이 호기심이 드는 그 어떤 것.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내 일상을 잠깐 잊을 수 있다. 기계도 버벅대면 재부팅하듯이, 일상도 재부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