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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룰루 May 30. 2023

이탈리아 휴양지에서 본 단체 한국인 관광객

포지타노, 이탈리아

 이탈리아 남부에는 아름다운 휴양지가 많다. 소렌토, 카프리, 아말피, 포지타노. 어디서 한 번씩 들어본 이름들이다. 이번 이탈리아 여행에는 남부 지역도 가보리라. 문제는 시간이다. 일주일 남짓의 여름휴가에서 과연 남부지역에 시간을 할애할 가치가 있는가. 고민이다.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많은 한인 여행사들에서 '이태리 남부투어' 상품을 운영한다. 여러 여행사에서 운영하는데, 투어들의 일정은 비슷하다. 아침 일찍 로마에서 전세버스를 타고 출발해서 폼페이 유적, 소렌토, 포지타노를 보고 저녁에 다시 로마로 돌아온다. 가장 한국 관광객이 선호하는 스폿들을 찍고 돌아온다. 제한된 시간 안에서 최고의 효율을 뽑아낸다. 능숙한 가이드의 재미난 해설은 덤이고.


 고민이 되었다. 남부투어를 이용하고 시간을 아껴서 친퀘테레를 갈지, 친퀘테레를 포기하고 남부에 며칠 머물지. 제한된 휴가 속에서 움직이는 직장인은 시간이 항상 고민이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시간이 많을 땐 돈이 없고, 돈이 없을 땐 시간이 없다'라고 한탄하셨던가.


 나는 투어상품을 이용하지 않고, 소렌토에 숙소를 잡았다. 소렌토를 기반으로 해서 날마다 주변 소도시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휴양지에 어울리는 방식을 택했다. 짧은 기간이나마 쉬듯이 여유를 즐기고 싶었다. 로마에서 나폴리로 고속열차로 이동한 뒤, 완행열차로 두 시간 남짓 달리면 소렌토에 도착한다. 북부 이탈리아와는 다른 분위기다. 우리나라에 비유하면 통영쯤 되는 느낌이다. 소도시의 매력이 있다. 버스 정류장 앞에는 작은 카페가 있었다. 우리나라 구멍가게 정도 되는 규모였는데, 거기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동네 주민들의 대화를 구경(말을 못 알아들으니 구경이 맞다)하며 버스를 기다리는 재미가 있었다.



 하루는 포지타노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다. 포지타노는 유명한 휴양도시답게 남녀노소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물놀이를 즐긴다. 삼십 분쯤 물에서 놀고 있었나. 예쁘게 차려입은 열명 남짓의 사람들이 해변가로 걸어왔다. 이 해변의 사람들은 편하게 입은 수영복차림이 대부분인데, 이 단체는 너무 예쁘게 차려입었다. 그들은 바로 한국 단체 관광객. 남자는 흰색 반바지에 파스텔톤 셔츠, 여자는 쨍한 색감의 원피스. 말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들은 분명 한국인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한국인이 매무새가 깔끔해서 빛이 난다. 그러고 보니 남부 투어 일정을 보면 지금쯤 포지타노에서 점심식사시간을 갖는다고 되어 있었다. 이들은 5분쯤 해변에서 가장 뷰가 좋은 위치를 찾아서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예쁘게 차려입었으니, 수영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수영 대신 사진촬영과 산책, 그리고 식사를 하고 이곳을 떠나겠지. 기분이 묘했다. 흑백 영화에서 이들만 컬러로 나오는 것 같았다. 내가 만약 남부 투어를 했으면 저들처럼 여행을 했겠지. 마치 내 분신을 보는 기분이었다. 무의식적으로 '지금 내가 더 행복한가, 저들이 더 행복한가' 하는 상념에 빠졌다. 하지만 이내 무의미한 생각임을 깨달았다. 해변에서 수영을 하며 여유를 즐기는 나도 행복했고, 저 단체 관광객들도 충분히 즐거워 보였다. 스스로 만족하면 된 거지, 비교를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소렌토 마리나그란데. 비긴어게인3에서도 방문했던 그곳

 살다 보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 있다. 이 선택을 하면 되돌릴 수 없는 것들. 그 선택의 순간에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아진다. 그리고 가지 않은 길에는 미련이 남는다. 이 날은 운이 좋게도 가지 않은 길이 어땟을지 구경할 수 있었다. 내가 단체투어를 선택했다면 저런 표정이었겠구나. 한국인 관광객들의 표정을 보고 나니 안심이 되었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꼭 정답이 있는 건 아니구나. 무얼 선택하든 내가 만족할 수도 있는 거구나.


 하나의 선택으로 모든 게 정해지진 않는다. 선택 후 내가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더 중요하다. 여태껏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도록 의미 있게 살아야겠다.


2023.6.2 다음 메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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