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미식해 - 그리운 손맛
동창회에서 2년 전에 마주한 얼굴은, 마치 오래된 달력 속에서 막 걸어 나온 사람처럼 반가웠다. 계절을 몇 번이나 건너뛰고서야 다시 이어진 인연은 “수원으로 이사 왔어”라는 짧은 문자가 왔다. 점심 초대에 노란 프리지어 한 다발을 안고 찾아간 집은, 햇살이 나뭇결을 따라 미끄러지듯 따뜻한 거실을 품고 있다. 그 아늑한 집안 공기는 이미 두 팔을 벌려 환영해 준다.
식탁에 둘러앉는 순간, 불고기는 윤기가 흐르고, 잡채는 지나간 시간처럼 가지런했으며, 구운 굴비는 겨울 햇볕을 입은 듯 노릇하게 반짝인다. 지중해식 샐러드의 화려한 색감 사이, 김장 배추김치 곁에 놓인 반찬 접시가 시선을 붙잡았다. '가자미식해다'
“어머, 가자미식해를 좋아해?”
묻는 나보다, 어떻게 이 음식을 아느냐는 친구의 되물음이 더 놀라웠다. 강릉에 계신 시어머님이 함경도 출신이라 겨울마다 담가 보내주신다는 말에, 숟가락을 들고 있던 손이 잠시 멈췄다. 쌀밥 위에 식해를 얹어 한입 넣는 순간, 맛은 혀에 닿기 전에 이미 기억한다. 오래 봉인해 두었던 그 맛이 목울대까지 차올라 뜨거워진다.
어머니가 계실 때는 우리 집에 늘 있던 겨울 반찬이었다. 그래서 귀한 줄 몰랐다. 없어지고 나서야 알게 되는 소중함, 그 맛도 뒤늦게 귀해졌다. 시원하면서 상큼한 감칠맛, 밥을 부르던 그 조용한 힘은 십 년 만에야 입맛을 찾아왔다.
어머니는 젓갈이나 생선을 좋아하셨다. 곳간 한쪽에는 직접 담근 새우젓, 칠게장, 어리굴젓등 크고 작은 항아리가 있었다. 내가 스무 살 무렵, 어머니는 당숙모 집에서 처음 맛본 가자미식해로 겨울 반찬이 하나 추가 되었다. 작은 통에 얻어온 식해 하나를 단서 삼아, 만드는 법을 묻고 또 물으며 결국 자기 손맛으로 완성해 내셨다. 만드는 레시피는 종이에 남지 않았고, 손끝에만 남았다. 처음으로 먹어보는 맛은 단순했다.
‘생선으로 만든 김치.’ 처음에 딱히 좋아하지 않았다.
그 김치는 해마다 겨울을 건너며 우리 집 식구들이 좋아하는 식탁의 주인공이 되었다. 식해는 함경도 지방의 음식으로 낯설다. 6·25 이후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강릉과 속초에 정착하며 이어온, 시간의 망명 같은 음식. 좁쌀밥과 무, 생선과 소금, 그리고 기다림을 섞어 만드는 발효음식으로 지금도 강릉지역에는 만들어 파는 곳이 많이 있다.
한겨울 수산시장에 가면 어머니는 참가자미와 도루묵을 한 상자씩 사 오셨다. 가자미식해와 도루묵 식해를 만들기 위해서다. 식해용 참가자미는 아기 손바닥처럼 작고 연한 살구빛이다. 아버지는 비늘을 긁고, 생선 대가리를 자르고, 내장을 꺼냈다. 어머니는 지느러미와 꼬리를 정리했다. 말 없는 분업은 반나절을 훌쩍 넘겼고, 그 시간은 노동이 아니라 도란도란 웃음을 나누며 하는 작업 같았다.
손질한 생선은 천일염 이불을 덮고 항아리 속에서 잠을 잔다. 한 달이 지나 항아리 속에 물기가 보일 때, 그제야 잠에서 깨어난다.
항아리 뚜껑을 너무 빠르게 열면 발효가 덜 되어 뼈가 억세고, 늦으면 생선은 흐물흐물해져 젓갈이 된다고 했다. 어머니는 그 미묘한 시점을 손끝으로 알아차렸다. 설명할 수 없는 판단, 경험이 만든 감각. 타고난 눈썰미와 손맛으로 터득한 것이다.
가자미와 섞일 무는 장독대 옆, 뒤란의 토굴에서 꺼냈다. 겨울 무의 머리에는 어느새 노란 싹이 두세 가닥 올라와 있다. 깨끗이 씻어 검지손가락만큼 잘라 돗자리를 펴고 겨울 햇볕에 말리면, 무는 꼬들꼬들해지고 맛은 농축되었다. 칼슘과 식이섬유가 늘어나고, 비타민 D가 생겨 뼈를 생성하며 소화를 돕는다는 말보다, 씹을수록 오독거리는 그 식감이 젓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이게 한다.
부엌에서는 조밥을 고슬고슬하게 지어 식혔고, 고춧가루와 마늘, 파, 생강이 더해졌다. 물기를 뺀 가자미가 마지막으로 들어가 버무려지면, 비로소 식해라 불리는 음식이 되었다. 일주일쯤 숙성하면 뼈는 씹을 수 있을 만큼 부드러워졌고, 생선과 무, 양념은 서로의 경계를 허물었다. 맵고 얼큰하면서도 달착지근하고, 끝에는 산뜻함이 남는 맛. 절임과 발효가 빚어낸 기다림의 맛이다.
식탁에 앉으면 어머니는 잘 삭은 생선을 골라 우리들 밥숟가락에 얹어 주고, 자신은 주로 무를 드셨다. 생선을 좋아하시면서도 늘 그러셨다. 자식들이 잘 먹는 것을 보는 일이 곧 기쁨이었기 때문이다. 사랑은 언제나 이렇게, 자신을 덜어내는 방식으로 남겨놓는다.
몇 해 전 겨울, 강릉 여행에서 속초 중앙시장의 젓갈 판매대 상인들이 맛보라며 건네는 '가자미식해' 반가웠다. 시식을 했으나 우리는 고개를 저었다. 집에서 먹던 맛보다 뻣뻣하고 텁텁한 맛이다. 직접 만들어 보자고 생물 참가자미 한 박스를 구입하고 집에서 손질하며, 그 일이 얼마나 고된 노동인지 몸으로 체험했다. 따뜻한 아파트 주방에서도 힘들었으니, 한겨울 시골집 부엌에서 그 일을 해내던 어머니는 얼마나 허리 아프고 손 시리고 고단했을까. 그때는 몰랐다.
오늘, 친구 집 식탁에서 다시 만난 가자미식해는 그 모든 기억을 데리고 돌아왔다. 친구는 스테인리스 김치통에 식해를 야무지게 눌러 담아주며 말했다. '맛있게 먹어, 떨어지면 또 줄게.' 음식을 건네며 하는 친구의 말이 갑자기 엄마가 평상시 하시던 말처럼 들렸다.
따뜻한 쌀밥 위에 얹어 주던 어머니의 주름진 손, 흐뭇하게 바라보던 얼굴. 음식은 결국 사람의 삶을 닮는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때, 음식은 사랑의 가장 정확한 언어가 된다. 만드는 품이 오래 걸리고, 손이 많이 가고, 그 과정이 보이지 않을수록 맛은 깊어진다. 추위를 견디며 가족을 위해 만들어 먹이던, 말보다 손이 앞서던 한 사람의 인생처럼.
어쩌면 음식에 대한 사랑보다 더 진실한 사랑은 없다는 말은, 결국 이렇게 증명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라져도 남는 맛,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것. 발효과정처럼 천천히, 우리 안에 스며드는 것.
오늘 밤, 그 손맛이 유난히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