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맛

그리운 과줄 -어머니의 손맛

by 수련

세밑 한파가 밀려오고 바람까지 불어 체감상 더 춥게 느껴진다. 겨울답게 매서운 추위가 몸도 마음도 꽁꽁 얼게 하는 세밑이다. 아랫목의 따뜻한 온기가 그리운 계절이면, 내 기억 속 유년 시절 가장 맛있게 먹은 간식으로 과줄이 떠오른다.

아이들은 방학이고 연말연시 외지에서 가족들이 고향으로 돌아올 때쯤 아버지는 읍내 방앗간으로 농사지은 쌀을 갖고 가셔서 가래떡 한 상자와 쌀 튀밥 한 자루를 만들어 자전거에 싣고 오셨다. 김이 모락모락 부드럽고 쫄깃한 뽀얀 가래떡이 상자 안에 일렬로 줄 서있고, 달콤한 쌀 튀밥은 겨울의 선물이다.

한 상자의 가래떡과 큰 자루의 쌀 튀밥이 마루에 놓이면, 아이들은 따뜻한 안방 아랫목에 발을 모으고 둥글게 앉아 큰 양푼에 가득 덜어온 튀밥을 한 움큼씩 먹었다. 쌀 튀밥은 달짝지근하면서도 보들보들한 맛이었고, 그 맛은 입안에서 녹아내리며 끝없이 이어지는 즐거움을 주었다. 손이 멈추지 않는 그 순간은 눈썹달로 마냥 즐거운 시간이었다.

70년대 시골집 지붕에는 고드름이 길게 달려있고, 방에는 위풍이 있어 윗목에 있는 물그릇에는 살얼음이 졌다. 부엌은 한데 바람이 문틈으로 들어와 냉랭한 공간이었지만, 부지런한 성품의 아버지는 장작과 솔가지로 군불을 넣어 따듯한 열기로 집안 곳곳을 따뜻하게 만드셨다. 새벽마다 제일 먼저 일어나셔서 큰 가마솥에 물을 데우셨고, 식구들이 따뜻한 물로 밥도 하고 아이들이 씻을 수 있게 준비해 주셨다.

재래식 부엌의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서 가끔은 매운 연기에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는 아침밥을 하고, 시루떡을 만들고 콩도 삶고 찐빵도 찌고 다양한 음식을 만드셨다. 겨울이 깊어지는 시기에 특별히 조청을 만들었다. 조청을 만드는 과정은 찹쌀밥을 지어 엿기름물에 삭힌 후 밥알을 모두 건져낸다. 엿물에 생강즙과 무즙을 넣고 가마솥에서 눌어붙지 않도록 팔이 떨어져도 계속 저어야 한다.


긴 과정을 거치면 마침내 엿물이 졸아들어 꿀처럼 윤이 나며 달콤한 조청이 만들어진다. 정성을 담아 만든 달콤한 조청을 작은 항아리에 담아 놓으면 우리 가족에겐 맛있고 든든하게 겨울을 나는 비법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방금 만든 따끈한 조청은 생강 향도 나고 무를 넣어 소화도 잘된다고 했다. 캐러멜색의 조청에 말랑한 가래떡을 찍어 먹으면 부러운 것이 없었다.

고향집 과줄 만드는 날은 온 가족이 모여 앉아 함께 했다. 어머니는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밀대로 넓게 밀고 네모나게 썬 1) 반대기는 이삼일 동안 사랑방에서 말려야 했다. 마치 햇살이 투명하게 비치듯 바짝 마른 반대기는 화롯불 옆에서 기름 냄비에 튀겨지면 넓적한 과자가 되었다.


뜨겁게 부풀어 오르는 반대기를, 조청을 앞뒤로 골고루 바른 뒤 쌀 튀밥을 묻히면, 바삭하고 달콤한 과줄이 완성되었다. 그 과줄은 추운 겨울날의 위로였고, 가족이 함께 나누는 즐거움이었다.


어머니의 과줄을 귀히 여기기 시작한 것은 30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다. 결혼하고, 백화점의 화려하고 세련된 한과 선물 세트가 더 좋아 보였던 철없던 시절이 있었다. 어머니가 보내주신 노란색 보자기 속 분홍색 플라스틱 바구니 속의 넓적하고 투박한 과줄은 촌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깨달았다. 그 투박함 속에는 정성과 사랑이 담겨 있는 최고의 명품인 것을. 명절 전에 매년 어머니가 정성껏 만들어 보내주신 과줄과 함께 시골에서 농사지어 보내주는 쌀, 고춧가루, 참기름, 들기름은 단순한 양식이 아니라 어머니의 사랑과 고향의 온기를 전하는 꾸러미였다.


하늘의 별이 되신 지, 15년이 지났다. 깊은 겨울밤 어머니의 손맛이 그립다. 시중에서 사는 한과로는 그 시절의 맛을 찾을 수 없다. 70세가 넘은 큰 언니에게 전화하여 과줄 만드는 방법을 묻자, 어렴풋이 기억난다며, 어머니의 과줄이 얼마나 정성이 많이 들어갔는지, 조청을 만드는 데 들인 고생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찹쌀을 씻어 물에 불리고, 가루를 만들어 콩물과 술을 넣어 반죽하며, 음지에서 말려야 하는 반대기의 과정, 그리고 기름에 튀겨내는 순간까지 모든 것이 어머니의 손길이 있어야 했다. 언젠가 어머니의 손맛을 따라 과줄을 만들어볼 생각이다. 많은 시간이 들고, 정성이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어머니와 우리 집 겨울의 추억을 다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 반대기: 찹쌀가루를 반죽한 것으로 납작하게 만든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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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줄 만들기]

찹쌀가루, 콩 삶은 물, 정종, 식용유, 조청, 쌀 튀밥

1. 찹쌀을 물에 불려 쌀가루로 만들어 콩물과 정종을 넣어 반죽한다.

2. 반죽을 밀대로 밀어 칼국수 만들 때처럼 넓게 편 다음 녹말가루를 뿌리고 명함 반쪽만 한 크기로 네모나게 자른다. (반대기)

3. 채반에 펴 담은 후 음지에서 건조한다. (햇볕에 말리면 깨지고 갈라진다고 한다)

4. 기름 냄비를 두 개 준비한다.

① 첫째 냄비에 미지근한 기름을 준비해 딱딱한 반대기를 담가 부드럽게 해 준다.

② 둘째 끓는 기름 냄비에 넣고 튀겨낸다.

5. 손바닥만큼 커진 과자에 골고루 조청을 바른다.

6. 큰 튀밥 바구니에 넣어 좌우로 흔들면서 튀밥 옷을 입힌다.

* 통통한 튀밥과 달콤하고 쫀득한 조청, 고소한 맛의 조화가 환상적인 진한 맛입니다.

과줄도 지역에 따라 통통하고 큼직한 튀밥에 굴려 만드는 곳이 있고 튀밥을 살짝 바스러뜨려서 묻혀 만드는 곳이 있더라고요, 우리 집은 아주 통통하고 새하얀 쌀 튀밥이 붙어있는 과줄을 만들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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