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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돌보는 글쓰기

마곡사(麻谷寺)의 봄

by 수련

마곡사(麻谷寺)의 봄/ 수련


탐욕과 미움을 씻어내는

세신교(洗身橋)를 지나

피안의 세계

유유히 흐르는 물소리

극락교를 건너다


물 위에 살포시 떠 있는

앙증맞은 연등

다리 위에도 연꽃 송이

마당 가득 색색의 꽃등

지혜와 자비로 세상을 비춘다


증오심으로 허기진 마음

개천에 흘려보내고

기상 높은 팔각지붕

하늘 높이 솟아

삿자리 마루의 기적 이루다


법당의 향 내음

108 번뇌 지우는 바람

염불 소리 부처의 염화 미소

풍경소리 자비심 품고

쉼이 되는 숨소리






이팝나무 하얀 꽃은 쌀밥처럼 달고 연둣빛 가로수는 사랑스러운 아가의 손바닥처럼 반짝인다. 시선을 돌리는 곳마다 철쭉은 노랑, 빨강, 분홍 옷을 입고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고건축을 전공한 교수님과 문화해설사 친구와 함께 봄날 번개 여행으로 천년의 시간 속으로 조심스레 발을 디뎠다.


공주의 마곡사

새들이 짝을 찾는 산길을 따라 걷다 보면, 산속의 시간은 달팽이처럼 꾸물꾸물 기어간다. 고즈넉한 풍경이 운치를 더한다. 충남 공주시 태화산 자락에 자리한 ‘마곡사’는 신라 선덕여왕 9년(640).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한국 불교의 오랜 역사를 간직한 산사이자,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묵묵히 제 자리를 지켜낸 평화의 상징이다.


마곡사 이름은 설법을 들으러 모인 신도들이 삼밭의 삼 대처럼 빽빽했다는 데서 유래한 ‘마곡(麻谷)’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그 이름부터가 세월의 역사이고 고요한 울림이다.

주차장 옆 태화식당에서 산채와 더덕구이 한 점으로 속을 채우고 차도와 인도가 조성이 잘된 숲길을 따라 20분 정도 걸었다. 신록의 푸르름은 촉촉한 눈을 선물하고, 청정한 피톤치드가 폐 속 깊숙이 머물며 솔바람은 목덜미를 쓰다듬고 길 아래로 태화천 개울물은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시원스레 흐른다.


입구에 한국의 산사 승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마곡사라고 쓰여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산사는 우리나라 남쪽 지방에 있는 7개 불교 산지 승원-통도사, 부석사, 봉정사,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로 이루어져 있다.


마곡사 경내로 들어가는 길은 S자처럼 자연스러운 지형을 따라 들어간다. 굽이굽이 휘돌아 몸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닿게 한다. 건축가의 설명은 보통의 종교건축물 즉 교회나 성당, 사찰 등은 입구에서 본건물(금당)로, 일직선으로 진입하여 건축물의 좌우대칭과 웅장함에 고개를 숙이고, 우러러볼 수 있도록 설계한다고 한다.


이곳은 태극 도형으로 사찰을 감싸고 흐르는 태화천을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부처님의 공간을 상징하고 하천 남쪽으로는 스님들의 수행 공간으로 극락교를 연결하여 수행의 목적을 일깨우고 있다고 한다. 입구 오른쪽으로 돌아서며 부드러운 곡선의 흐름으로 자연과 사람을 품어 안는 듯하다. 건축물의 구도가 특별히 아름다운 절이라고 설명을 덧붙인다. 마음 깊숙이 묻어둔 상처를 슬며시 꺼내놓아도 위로가 될 듯하다.


마곡사는 태화산으로 둘러싸인 깊은 곳으로 한국전쟁 중에도 병화를 입지 않은 채 전쟁을 모르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한다. 오랜 전통과 더불어 불가사의한 안정감을 간직한 장소로, 지금도 많은 이들이 고단한 마음을 내려놓고 싶을 때 힐링 공간으로 찾는 곳이다.


경내로 들어가려면 두 개의 다리를 건너야 한다. 세신교를 지나며 내 안의 소란스러운 몸과 마음을 씻고, 극락교를 건너며 피안의 도량으로 번뇌가 사라져 부처의 세계에 들어선다. 다리 하나 건넜을 뿐인데 꺼내놓지 못하는 묵직한 근심덩어리가 털려 나가는 듯 편안하다. 천년의 침묵 속에 모든 이의 업보를 껴안는 거대한 품속 같다.


해탈문과 사천왕문을 지나면 색색의 연등이 흐르는 개천물 위에, 앙증맞은 병아리처럼 잔잔히 떠 있고 다리 위에도 연등 꽃이 피어 있다. 어두운 세상을 밝게 비추고 깨달음의 세계로 가고자 하는 지혜와 자비의 연등을 밝히는 중생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다.


단청이 화려한 대웅보전의 팔각지붕은 파란 하늘을 품었고, 지붕 끝의 용머리는 세상과 하늘을 잇는 통로처럼 보인다. 고건축은 묵언수행하는 수행자처럼 말이 없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내가 누구라고 자랑하지 않아도 침묵으로 우러러보게 하고 많은 지혜를 내어주는 고상한 비결을 갖고 있다.


이 교수는 건물의 배치와 “시선의 연기(緣起)”를 말했다.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가람의 배치 모양도 다르고, 보는 위치에 따라 다양한 구도로 다르게 볼 수가 있다. 같은 건물도, 어떤 이는 극락으로 바라보고 어떤 이는 유배지가 되기도 한다. 원효대사의 해골 물에서 깨달은 "일체유심조"란 말과 일맥상통 한다.


석가탄신일을 앞둔 마곡사의 도량은 화려하게 연등을 밝히고 왕벚꽃, 산수유, 자목련이 세상의 분열과 아픔을 조화롭게 덮으려는 듯 공평하게 비춘다. 절 마당의 많은 나무 연둣빛으로 펼쳐진 반짝이는 잎을 자랑하는데, 비쩍 마르고 뒤틀리고 목이 꺾인 늙은 기린 같은 고목의 가지 끝에 뾰족한 어린순이 늦었지만 이제 돋아난다. 죽은 나무 같은데 보고 또 봐도 눈을 뗄 수가 없다. 지난해 혹한과 습설에도 버텨낸 위대한 생명력에 감사하다. 조금 느려도 괜찮아 뿌리를 내리고 천천히 함께 할 수 있는 작은 것에 감사하며 평범한 일상이 더없이 소중함을 얻는다.


절 마당의 약수 한 모금으로 내 속의 갈증을 씻어내고 마음을 가볍게 한다. ‘상선약수’라고 쓰여있다. 선한 마음은 물처럼 낮은 곳으로 흐른다.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흐르고, 스미고, 감싸며, 다양한 형태로 변신하며,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는 것, 우리의 삶도 선한 물줄기를 따라 순리대로 살아가기를.


어느 전각에서 목탁 소리가 들려온다. 조선후기 아랫마을 이름 없는 앉은뱅이가 백일동안 발원 기도를 드리며 대광보전 법당 마루에 앉아 정성 들여 나무껍질로 삿자리를 짜고 완성이 되는 날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 절하고 걸어 나갔다는 기적 같은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진리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부처님의 가피가 온 세상 모든 이의 소망과 함께 하기를.... 맑은 목탁 소리는 내 안의 깊은 곳에서 원을 그리며 은은하게 번졌다.


지난 과오를 개울물에 흘려보내고 업보를 참회하며 함께하는 이 순간을 감싸 안을 수 있는 나를 찾는다. 지붕 끝에 달린 풍경소리가 고요함을 더한다. 풍경을 흔드는 바람도 부처의 숨결처럼 자비로운 미소이다. 지친 마음이 쉬어가는 시간, 극락은 찰나 속에 느낌으로 숨이 된다.

그날의 바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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