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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CCO Aug 19. 2023

조선을 여행한 어느 오스트리아인

1894년 조선을 묘사하는 생생한 문장들

*이 글은 에르네스트 폰 헤세 바르텍이 1895년 독일에서 출간한 여행기를 번역한 책,『조선 1894년 여름』의 내용에 기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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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운명을 한 치 앞도 알 수 없던 1894년, 조선을 여행한 어느 오스트리아인이 있었다. 그가 조선에 도착한 1894년은, 조선 안팎으로 큼직한 사건들이 연이어 벌어진 해. 1월에는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고, 6월에는 갑오개혁이 실시되었으며, 8월에는 청일전쟁이 발발했다. 유럽과 미대륙, 아프리카, 아시아 등지를 모두 여행하고 중국과 일본을 거쳐 조선에 오게 된 에르네스트 폰 헤세-바르텍(Ernst von Hesse-Warteg). 기울어가는 조선에서 이방인은 무엇을 보았을까? 그가 쓴 기행문을 들여다보자.


1891~1930 추정.

그때도 밥심

"이 나라를 찾은 방문객들은 조선인들이 먹는 엄청난 양에 다들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어머니들은 아이들이 더 삼킬 수 없을 때까지 억지로 밥을 먹인다. 그리고 나서는 커다란 나무숟가락을 뒤집어 두터운 손잡이로 아이의 배를 눌러 공간을 만들고, 이 불쌍한 아이에게 다시 꾹꾼 밥을 채운다. 조선인은 일본인의 세 배나 더 많이 먹는 것 같다."


이화학당 수학 수업 모습. 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 제공.

문맹률이 낮은 국가

"상당수의 국민이 글자를 쓸 줄 아는데, 이는 예를 들어 이탈리아보다 훨씬 높은 비율이다."


1880년대 동대문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도로 추정. Vintage Everyday 제공.

초가지붕에 흙집

"25만 명 가량이 거주하는 대도시 중에서 5만 여 채의 집이 초가지붕의 흙집이 곳이 또 어디에 있을까? 서울은 산업도, 굴뚝도, 유리창도, 계단도 없는 도시, 극장과 커피숍이나 찻집, 공원과 정원, 이발소도 없는 도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세상에 유럽 문명이 침투하지 않은 곳이 없다고 말한다."


냇가에서 빨래하는 모습. Vintage Everyday 제공.

열악한 하수시설

"집에는 가구나 침대도 없으며, 변소는 직접 거리로 통해 있다. 남녀 할 것 없이 모든 주민들이 흰옷을 입고 있으면서도 다른 곳보다 더 더럽고 똥 천지인 도시가 어디에 또 있을까? 그러면서도 서울은 결코 건강에 해로운 곳이 아니며 전염병 발생도 드물다. 그 이유는 한편으로는 겨울이 매우 혹독하여 여러 달 동안 눈과 얼음 그리고 추위가 전염병의 등장을 막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름의 소나기가 오물을 씻어가기 때문이다."


1900년 별기군 사진. 천지일보 제공.

부실한 지휘체계와 실전경험

"병사들의 피지컬은 훌륭해서 난쟁이처럼 작은 일본인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다. 대부분 건장하고 우람했으며 영양상태가 좋았다. 하지만, 지휘체계나 규율이 없어 전쟁이 나면 도망친다. 200년 동안 평화로웠기 때문에 전쟁 경험을 할 기회가 없었다."


1910년대 죄인에게 태형을 가하는 모습. 한국저작권위원회 제공.

매관매직

"이 나라의 모든 관직은 (뇌물을 통해) 구해야 하며, 귀족의 손에 달려있다. 그것도 일종의 세습 귀족인 양반의 일원일 때만 가능하다. 따라서 상인들은 부를 획득하고자 할 만한 동기가 전혀 없다"


동학농민운동을 이끈 전봉준의 압송 사진. 양상현 순천향대 교수 제공.

수탈과 봉기

"상인이나 기업가, 농부, 목축업자들이 자신과 가족의 생계에 필요한 것 이상으로 획득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일 것이다. 우연이나 좋은 수확 덕에 약간의 돈이 수중에 들어오면, 그들은 돈을 땅속에 묻거나 비밀에 부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고급 관리들이 곧바로 달려들어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행정관이나 판사 역시 매수가 가능한 탓에, 이러한 일이 발생하더라도 어떤 보호를 기대할 수도 없다."
"그러나 관리들도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있는데, 지난 해인 1894년, 관리들은 이 '선'을 넘어섰고 백성들이 봉기를 일으켜 그들을 추방했다."


(C)Percival Lowell

그때도 뛰어난 외국어 능력

"서울에 머무르는 동안 조선인들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 이들은 조선을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음에도 비교적 교육을 잘 받았고 영어를 잘 구사했다."


선글라스를 낀 남자들. Vintage Everyday 제공.

그때도 남의 물건은 탐내지 않았다.

"이들은 자기들끼리도 그렇지만 낯선 이방인에게도 매우 정직하다. 절도와 강도는 비교적 드물며, 살인은 더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 5년간 전체 구역에서 살인은 두 건밖에 없었다."


2022년 서대문형무소 앞에서 퍼포먼스를 펼치는 미동초 태권도단 (C)뉴스핌

이 나라의 가능성

진정성이 있고 현명한 정부가 주도하는 변화된 상황에서라면, 이들은 아주 짧은 시간에 깜짝 놀랄 만한 것을 이루어낼 것이다. 물론 이들의 이웃인 잽싸고 기민한 일본인들처럼 빠르게 진행되지는 않더라도, 한때 이들의 군주국이었던 중국 보다는 훨씬 빠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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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30여 년 전 이방인의 눈을 통해 본 조선의 모습. 그 모습에서 당신이 살고 있는 한국이 보이나요? 어떤 것이 같고, 어떤 것이 달라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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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CCO 예코 콘텐츠기획팀 김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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