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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CCO Oct 28. 2023

착호갑사: 호랑이와 맞서 싸운 이들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다니

‘조선사람들은 1년 중 반은 호랑이한테 물려죽은 사람 문상을 다니고, 나머지 반은 호랑이 사냥을 다닌다.’


호랑이는 우리나라 국토의 상징이자 용맹한 기상을 자랑하는 동물로 여겨진다. 하지만, 우리가 조선에 태어났다면 호랑이는 언제 어디서 가족의 안전을 위협할지 모르는 맹수로 여겨졌을 것이다.

<맹호도> 단원 김홍도


국토의 70%가 산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는 호랑이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고려 시대에는 인간과 범의 생활 터전이 대체로 구분이 되어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 들어 국가에서 식량 생산을 위해 농지 개간을 본격화하면서 호랑이와 인간의 공간이 서로 충돌한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조선에는 호환(호랑이에게 당하는 화)에 관한 기록이 다수 남아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호랑이는 길을 가다가, 나물을 캐다가, 밭을 갈고 김을 매다가, 집 앞 마당에서, 저잣거리에서, 심지어는 궁궐에서까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출몰해 사람을 해쳤다.

“경기 지방에 호환(虎患)이 심하여 한 달 안에 먹혀 죽은 자가 1백 20여 인이었다. 이천(利川) 백성 서차봉이 호랑이에게 물려 갔는데 서태금이 그 꼬리를 잡고 따라가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죽었다. 한수재의 어머니도 호랑이에게 물려 갔는데 한수재가 막대기를 잡고 호랑이를 쫓다가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죽었다. 도신(道臣)이 이 일을 아뢰니, 휼전(恤典)을 베풀라고 명하고 뒤에 또 여문에 정표하라고 명하였다.” - 영조실록 81권


범이 활개를 치는 경우 농민들은 농사에 상당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도 농사일을 하다 호랑이에 물려가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태종 대 충청·경상·전라도 경차관(조선시대 특수 임무를 띠고 지방에 파견된 관직) 김계지의 보고 내용을 보면, 조선 초기부터 중앙 정부도 호환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상도에 범이 많아, 지난해 겨울부터 금년 봄에 이르기까지 범에게죽은 사람이 기백 명입니다. 연해 군현(郡縣)이 더욱 많아 사람들이 길을 잘갈 수 없사온데, 하물며 밭을 갈고 김을 맬 수 있겠습니까?"


착호갑사

호랑이로 인한 인명 피해가 극심했던 만큼, 국가 차원에서도 호환으로부터 백성을 구제하는 데 많은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이에 조정은 일찍이 호랑이를 사냥하는 특수부대 ‘착호갑사(捉虎甲士)’를 편성하여 호랑의의 습격에 대비했다. 조선의 직업 군인을 '갑사'라고 불렀는데, 그 중에서도 특별히 호랑이를 잡기 위해 만든 특수부대는 '착호갑사'라고 불렸다. 오늘날로 치면 '호랑이 포획 담당 직업군인'인 셈이다.

호렵도 팔폭병풍 중 일부 (C)문화재청

착호갑사 선발 조건

착호갑사는 세종 대 20명을 뽑아 정식으로 운영했던 것을 시작으로 보고 있다. 착호갑사로 선발되는 조건은 까다로웠는데, 180보 거리에서 활을 쏘아 명중시켜야 했으며, 말을 타고 활이나 창을 사용할 수 있어야 했다. 혈혈단신으로 호랑이를 잡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에 각종 무기와 도구를 얼마나 잘 다루는지를 주요하게 보았다. 일반 백성이라고 해도 호랑이를 직접 잡는 경우에는 포상을 주거나 시험을 면제하고 착호갑사에 임명해주기도 했다. 과거를 통해 관직에 나아갈 여건이 되지 않았던 일반 백성들에게는 일종의 신분상승 기회이기도 했던 것이다.


궁궐도 안전하지 않다!

“호랑이가 성에 들어오니, 흥국리(興國里)의 사람이 이를 쏘아 죽였다.” - 태조실록 2권     
"밤에 호랑이가 한경(漢京) 근정전(勤政殿) 뜰에 들어왔다." - 태종실록 10권
"유후사(조선초기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에 설치된 행정 기구) 성안에 호랑이가 많으므로, 삼군 진무와 호랑이 잡는 갑사(甲士) 10명을 보내어 잡게 하였다." - 세종실록 29권

호랑이는 도성 밖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다. 궁이 매우 넓고 궁 뒤로는 산이 위치해있었기 때문에 도성은 물론이거니와 간혹 궁궐 안까지 흘러들어오는 경우가 있었다. 따라서 초기의 착호갑사는 국왕의 친병 중 포호활동을 담당하는 병사를 선발하며 생긴 관직이라 볼 수 있다. 이후 도성 밖 고을에서도 호랑이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자, 아예 전국 곳곳에서 착호갑사를 선발하여 호랑이로 인한 피해를 체계적으로 예방하고자 하였다.


사냥 방법

단 한발의 활과 창으로는 호랑이를 잡을 수 없었기 때문에 세 번 이상을 공격해야 했는데, 첫 번째로 호랑이를 쏜 사람을 선중전자라고 불렀으며, 첫 번째로 호랑이를 찌른 사람을 선창자라고 불렀다.

호랑이덫, 찰코 (C)국립민속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산촌전'에서 '벼락틀'을 재현해 놓은 모습. 우리 역사넷 제공.

활이나 창보다 더 선호되는 방법은 함정을 설치하는 것이었는데,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해 함정이 적극 활용되었다. 호랑이 사냥에서 사용된 대표적인 함정이 '벼락틀'인데, 호랑이가 잘 다니는 길에 개를 미끼로 넣어놓고, 그 위에 나무나 돌을 올려 설치하여 위에 있던 돌이나 나무가 무너져 내리면서 호랑이를 덮치는 구조로 되어있다. 또, 구덩이를 파서 뾰족한 창을 설치해두는 '정창'을 함정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포호활동의 결과

국왕은 강무와 같은 군사훈련을 주도하면서 포호활동을 해 나갔다. 또한 중앙군에는 착호갑사를, 지방에는 착호인을 설치하여 포호정책을 뒷받침할 수 있는 군사력을 확보하였다. 포호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포호절목을 제정하고, 포호정책의 성과를 확인하기 위해 호피공납제를 운영하기도 했다. 국가가 체계적으로 포호정책을 시행해나가면서 맹수의 숫자는 현저히 감소했고, 포호정책이 널리 시행되자 민간에서도 포호활동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유행하였다. 조선시대에 추진한 포호정책은 농본주의라는 뚜렷한 이념적 지향성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추진된 것으로, 이후 조선의 농지개간의 확대와 농업생산력의 발달에 크게 기여한 정책이 되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호랑이 사냥이 어려웠던 만큼, 호랑이를 잡았을 때 얻을 수 있는 보상은 남달랐다. 속담에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는데... 과연 호랑이는 가죽만 남겼을까? 가죽은 물론이거니와 호랑이의 모든 것들은 비싼 값에 팔려나갔다. 앞다리정강이뼈는 약재로 판매되었고, 발톱은 악귀를 물리치는 데 효험이 있다고 믿어졌으며 이빨은 부스럼, 수염은 치통을 낫게 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알려졌다.


호랑이의 가죽인 호피 역시 매우 인기가 많았는데, 1500년대 조선 물가를 기준으로 호피 1장은 쌀 60가마 정도에 해당했다고 한다. 쌀 1가마가 약 80kg임을 감안했을 때, 쌀 60가마는 당시의 조선에서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녔을 것이다. 숙종 당시 기록(1600년대)을 보면, 쌀 한 섬(약 144kg)의 값이 현재를 기준으로 36만원 정도였다고 하니, 1500년대 물가 기준으로 호피 1장이면 꽤 큰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다. 특히, 일본의 경우 섬나라 특성상 호랑이가 살지 않아서 호피가 큰 인기를 끌었는데, 이런 수요에 발맞춰 선발 조건이 까다로운 착호갑사보다는 개인이 호랑이를 사냥하는 민간 사냥꾼이 많이 증가했다고 전해진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호랑이

출판사 '에이도스'에서 출간한 '정호기'에 나온 일제 해수구제사업의 모습. 1917년 일본의 야마모토 정호군이 영흥군에서 아무르표범을 사살한 모습. (C)에이도스. 시사위크 제공.

한반도에 서식하던 한국호랑이는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그 수가 많았지만, 20세기 초부터 민간인의 총기 사냥 보급을 시작으로 개체수가 서서히 감소했다. 그러다 일제강점기 일본이 사람과 재산에 위해를 끼치는 해수를 몰아낸다는 뜻의 '해수구제' 정책을 명목으로 호랑이, 표범, 곰, 늑대 등의 한반도 내 야생동물을 마구잡이로 잡아 죽이면서 이 땅의 호랑이는 멸종 위기에 이르렀다.


한반도를 상징하는 동물로도, 귀여운 마스코트로도 변신할 수 있지만, 농경으로 인해 개간지를 점차 확장했던 인간과 공존하기 어려웠던 호랑이. 한반도를 호령하던 호랑이가 사라진지 어느덧 약 100여 년이 흘렀다. 사람들이 호랑이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해진 것은 좋은 일이지만, 한국호랑이가 점차 사라져 이제는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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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CCO 예코 콘텐츠기획팀 백이현, 김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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