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태어난 동네를 여행하는 입양인과 함께 했던 여정
해외입양인연대(G.O.A'.L.)의 First Trip Home 에 처음으로 참가하게 된 예코. 이 프로그램은 한국에서 태어나 국외로 입양된 사람들이 한국으로 돌아와 그 가족을 찾는 프로그램으로, 우리 YECCO의 청년들은 입양인 분들이 가족을 찾고 출생지를 방문하는 일을 도우며 통역을 맡았다.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년 3명이 입양인 분들과 함께한 여정에서 느꼈던 소중한 경험을 담아 글을 썼고, 매주 한 편씩 그 이야기가 올라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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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의미있는 경험이겠지, 해보자!
솔직히 말하자면, 구체적이거나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어릴 때 해외로 입양가신 분들이 한국에 와서 가족 찾는 활동을 통역하며 보조해준다? 정말 의미있는 경험이 될 것 같아서 신청하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 '리턴 투 서울'이라는, 한국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입양되어 우연히 한국에 오게 돼 가족을 찾는 여정을 그린 영화를 본 지 얼마 안 된 터라 한국 디아스포라, 해외 입양인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 신청을 했던 것 같다.
사전답사
활동시기가 다가오니까 조금씩 걱정되고 불안해졌다. 영어를 다 알아듣지 못할까봐 불안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걱정은, '내가 과연 입양인 분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활동이 얼마 안 남은 시기부터 미국 시트콤 ‘프렌즈’를 보며 영어를 조금이나마 보완하려고 했다. 그리고 입양인 관련 정보를 활동 전에 미리 받았는데, 이것 외에 가족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추가적인 정보를 얻고자 여러 곳에 전화해 문의를 드리기도 했다. 활동 당일 날 함께 가보면 좋을 추천 리스트도 받았는데, 당일에 갑자기 방문을 해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보다는 미리 말씀을 드려 도움을 받을 수 있을 지 여쭤보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전날에 사전 답사를 가서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고, 활동 당일에 방문할 곳을 가서 미리 도움을 받을 수 있을 지 여쭤보기도 했었다.
약간 마음이 진정되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불안한 마음을 계속 내비쳤는데, 옆에서 그걸 보고 있던 나의 베트남 친구가 ‘그냥 Easygoing해. 나한테 했던 것처럼 편하게 대해. 그게 괜찮을거야. 너가 입양인 분을 입양인이라는 Background를 가지고 대하면 더 어려울거야.’ 라고 얘기를 해줬는데 정말 맞는 말 같았다. 입양인 분에 대해서 배려하고 존중해야되는 부분은 물론 있지만, 그것 때문에 대하는 게 불편해지면 배보다 배꼽이 큰 거 아닌가! 그리고 활동 관계자분께서도 지속적으로 이 여정의 주인공은 봉사자가 아닌 입양인이니, 당신은 그 여정을 그저 서포트 해주기만 하면 된다고 말해주셨는데 이 말도 심적으로 도움이 됐다. 그냥 잘 도와주자!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잘 도와주자! 라고 되새기며 마음을 다시금 부여잡을 수 있었다.
마음은 요 맨 ~ (하면서 허그), 실제로는 Hi ~ (정중하게 악수하며 90도 인사)
그렇게 활동 당일이 됐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얼른 준비를 마치고 호텔로 향했다. 호텔에서 교통카드, 식비를 위한 카드를 받고 이것저것 사인하며 안내사항을 전달받았다. 조금 긴장이 되어 관계자분들께 계속 떨린다고 얘기했는데, 다들 정말 좋으신 분들이니까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하라고 말씀해주셔서 위안이 됐다. 그렇게 긴장하고 있으니 나와 팀이 되어 같이 여정을 떠날 Ingo를 만나게 되었다. 친구가 어제 나에게 그냥 입양인 분 만나면 바로 요 맨 ~ 하면서 미국식으로 인사하라고 해서 나름 머리로는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보자마자 그런 생각 다 사라지고 머리가 하얘져서 바로 Hi, 하며 90도 인사를 하고 악수를 청했다. 이렇게 긴장하긴 했지만, Ingo는 정말 호탕하고 푸근한 이미지였다. 사실, 활동 이틀 전 즈음 Ingo와의 단톡 방이 만들어져서 그때 얼굴을 처음으로 볼 수 있었는데, 그때 인상이 너무 좋으셔서 약간 마음이 안심되었다. 그만큼 따뜻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관계자분께 안내사항을 받고 우리는 출발했다.
동네가 정말 작네?
그렇게 얘기를 나누다 보니 금세 주변 역에 도착했다. 우리는 처음으로 Ingo가 태어난 곳으로 추정되는 동네를 돌아보기로 했다. Ingo의 가족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어서 1-2일 안에 가족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고, Ingo와 나 둘 다 그것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여정의 핵심은 동네를 돌아보고, 주민 분들과 이야기하면서 입양인 분께서 이 지역에 계셨던 시기의 동네 모습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동네를 걷기 시작했다. 이 동네가 참 신기한 게, 동네가 60-70년대의 모습과 현대의 모습을 둘 다 가지고 있는데 이 둘이 조화롭게 있다기보다는 딱 분리되어 있다. 낡은 집 사이에 좁은 골목과 전통 시장이 보이는데, 갑자기 도로를 건너면 신축 아파트가 쭉 들어서 있다. 우리 둘 다 과거와 현재가 분리 공존해 있는 모습을 보며 신기하다고 얘기했던 것 같다. 그래도 옛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 있어서 70년대의 한국의 모습에 대해서도 설명해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동네가 생각보다 정말 작아서 15분 정도 걸으니 한 바퀴를 다 돌게 되어서 우리는 바로 주민센터로 향했다. 주민센터에서 입양인 분의 정보와 입양 기록이 담긴 전단지를 부착 가능한지, 이 동네의 옛 사진이 있는 지 또는 볼 수 있는 곳이 있는지 문의하러 갔다.
주민센터: 이런 민원은 처음이라, 그럼에도 친절함은 놓지 않는 직원분의 프로페셔널함
활동 당일, 날씨가 너무 습하고 더워서 제발 주민센터에서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주기를 바랬는데 다행히 너무나도 시원했다. Ingo가 현재 머물고 계신 스위스는 덥긴 해도 습도는 낮아서 막 땀이 엄청 나거나 불쾌하진 않다고 했다. 그렇게 번호표를 뽑고 Ingo와 잠시 앉아 있다가, 바로 우리 순번이 돼서 머쓱하게 앞으로 갔다. 나는 미리 Ingo에게 주민센터에서 어떤 도움을 청할지 말씀을 드렸기 때문에 바로 담당 공무원께 우리의 상황, 입양인 분의 이야기 그리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지 여쭤보았다. 그런데 담당 공무원도 이런 민원은 처음이셨는지 조금 난처해하시다 다른 공무원 분께 도움을 요청하셨다. 그렇게 우리의 사정을 다 말씀드리고 전단지를 붙일 수 있는지 여쭤봤는데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그리고 옛 동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는 지도 여쭤봤다. 담당자 분은 근처에 스튜디오가 있는데, 거기서 옛날 사진들을 볼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고, 정말 고맙게도 우리를 그 스튜디오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하셨다. Ingo에게 동네의 옛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가능할 것 같아서 안도감이 들며 행복했고, Ingo에게 이 사실을 말하니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민원은 정말 처음이었는지 주민센터에 계신 거의 모든 공무원께서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셨고, 이곳에 방문한 주민들도 덩달아 우리에게 주목하셔서 조금 긴장되기도, 신기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우리는 담당 공무원 을 따라서 스튜디오로 향했다. 가는 동안 지명의 유래와 동네의 역사에 대해서도 말하시며 궁금한 게 있다면 뭐든지 물어보라고 하셨는데 정말 친절하셨다. 본인 일이 아닌 이상 그렇게 친절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정말 고마웠다.
사진 스튜디오: 정말로 따뜻하고 친근하신 사장님 부부
그렇게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스튜디오는 일반적인 동네 사진관이었는데, 사진관 사장님께서 취미로 90년대부터 이 동네 일대를 찍어 오신 사진들이 가득했다. 공무원 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사장님께 자초지종을 설명하시며 사진을 볼 수 있는 지 여쭤보셨는데, 사장님께서 흔쾌히 허락하셨다. 직후에 담당 공무원께서는 일 때문에 주민센터로 가야 한다고 하시며 도움이 필요하면 주민센터에서 본인을 찾으라고 하셨다. 이 다정함, 너무 감사했습니다!
사장님 부부께서는 정말 따뜻하시고, 친근하셨다. 한 동네에 사는 정이 넘치는 동네 이웃 삼촌, 이모같았다. 연예인분들이 와서 사진을 찍을 정도로 동네에서 유명한 사진관이어서 손님도 많았고, 우리에게 사진을 일일이 다 보여줘야 했기 때문에 번거로우셨을텐데 되려 손님들 사진 찍어주느라 사진 보여주는 게 늦어진다고 되려 미안해하셨다. 전혀 아닙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손님 사진 촬영이 길어져서 1시간 가까이 있다보니 진짜 얘기를 이것저것 다 했던 것 같다. 입양인 분에 대한 얘기, 이 동네에 대한 얘기, 사장님께서 독일에 가셨던 얘기, 사장님 따님 분에 대한 얘기까지 정말 이것저것 다 했었다. 그 중, 독일에서 찍은 사진 속 사장님의 모습이 딱 봐도 북한사람같다는 사장님 아내 분의 말이 너무 웃겨서 기억에 남는다. 포즈는 정말 정직했고, 표정은 엄격, 근엄, 진지 그 자체였다. 겉으로는 아니라고 했지만, 속으로는 웃음 참느라고 좀 힘들었다.
그리고 또 우리 말고도 이 사진관에 방문하신 다른 입양인 분들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처럼 혈육을 찾으러 한국에 오셨다 사진관에 들르신 거였다. 이 곳에 방문하신 입양인 분들 중에는 가족을 찾으셔서 곧 보러 간다고 하셨던 분도 있었다고 했다. 사진관이라는 공간에서 다른 입양인 분에 대한 얘기를 듣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 “친부모를 다시 만나면 어떤 기분일까?” 란 생각이 들기도 했던 것 같다.
사진관에 있는 동안 여러 손님이 방문하셨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다들 하나 같이 따뜻하고 정이 넘쳤다. 어머니, 아버지, 아들 그리고 강아지까지 해서 가족사진을 찍으러 오신 분들도 계셨고, 급하게 여권사진이 필요해서 오신 분도 계셨다. 사진관 중간에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화를 듣고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 시간이 정말 소소하게 행복했던 것 같다. 다들 입양인 분에 대해 관심을 가져 주시고, 이야기에 마음 아파하시며 공감해주시고, 정말 정겹게 우리를 대해주셨다. 그리고, 손님들뿐만 아니라 사진관 사장님 그리고 공무원 분까지 “나에게 정말 좋은 일을 한다.”고 해주셨는데,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까지 큰 의미를 두고 시작한 활동은 아니었어서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이런 얘기를 들으니 더 가슴 벅차고, 열심히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듬뿍 들었다.
나중에 손님들께서 다 가신 후에 사장님께서 일일이 90년대부터 사진을 하나하나 다 보여주셨다. 그 사진 안에는 지금과는 너무 다른 모습의 동네사진과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있었어서, 나와 Ingo는 “Oh, that’s really nice. Wow…” 라고 연신 감탄했다. 사장님께선 사진에 담긴 소소한 이야기도 해주셨고, 이 지역의 역사와 옛 분위기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셨다. 사진과 그 속에 담긴 여러 이야기를 알게 되니, 재개발 속에서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옛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고, 옛 모습을 간직하는 방향으로 재개발을 할 순 없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사장님께서 입양인 분이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신 후에도 볼 수 있게 마음에 드는 사진들을 보내주시기도 하셨다. 거의 30분 ~ 1시간 가까이 사진을 보여주시며 설명을 해주셨는데, 힘들거나 번거로운 내색 하나 없이 조부모님들께서 손자, 손녀에게 옛 이야기를 해주시는 것처럼 내내 즐거워하셨다. Ingo가 본인이 태어나신 곳으로 추정되는 지역에 대해서 더 깊이 이해해서 돌아가면 자제분들에게 더 잘 설명해줄 수 있겠다고 하시며 좋아하셨는데, 내가 다 즐겁고, 뿌듯했다. Ingo가 최초로 발견된 곳으로 추정 출생지라고 문서상으로만 기록된 공간이, 점차 진정한 고향, 뿌리내린 곳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되는 것 같아서 너무나도 뭉클했던 것 같다. 사진을 다 보고, 그리고 전달받고 난 후에 사장님에게 감사인사를 드리고 우리는 점심을 먹으러 갔다.
맥주 & 와사비 are my favorites!
우리는 돈카츠를 먹으러 갔다. 한국에 왔으니 한식을 먹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지만, 다른 활동을 하며 많이 드시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돈카츠를 드셔 본 적이 없다고 하셔서 돈카츠로 정했다. 다행히 Ingo가 정말 맛있다고 했다. 정말 믿기지 않았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고 좀 얼떨떨했다. 사실 엄청 막 찾아본 것도 아니고, 평점하고 리뷰 괜찮아서 선택한 것이었는데 이런 극찬을 받다니… 얼떨떨 그 자체였다. 그래도 맛있다니 행복했고, 잘 데려왔다고 생각했다. 사실 난 정말 미각이 둔해서 뭐든 다 잘 먹는데, Ingo가 맛잘알이라고 (물론 영어로 “You know really yummie place.” 라고 하셨다!) 인정해줬다. 감사합니다, 하하!
Ingo는 와사비를 정말 좋아했다. 돈카츠와 메밀소바에 와사비가 함께 곁들여 나왔는데, 처음엔 카츠하고 같이 먹더니 카츠를 다 먹고 난 이후에는 와사비만 따로 먹을 정도로 좋아했다. 물론, 먹고 나서 매워서 어쩔 줄 몰라했지만… 그래도 이 매운 맛이 너무 좋다고 했다. 사실 나도 와사비를 좋아해서 Ingo에게 엄청 공감하며 서로 매워하는 모습에 깔깔대며 웃었던 것 같다.
Ingo는 맥주도 정말 좋아했다. 전에 어느 축제에서 1리터짜리 생맥주를 10병 넘게 마실 정도로 맥주광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맥주도 먹었다. 사실 이 활동을 주최한 기관이 정부와 연계되어 있고, 활동비가 세금에서 나오기 때문에 식사비로 술은 지원되지 않아서, 정 먹고 싶으면 사비로 마셔야 했다. 그래서 난 거의 못 마신다고 생각했었는데, Ingo가 맥주를 마시지 않겠냐고 해서 약간 당황스러워서 급하게 규정을 랩을 하듯 읊어드렸다. 그런데 Ingo가 쿨하게 내가 사겠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오오… 그렇게 Ingo 덕분에 맥주를 마시며 더위를 식힐 수 있었다.
Ingo는 정말 술을 좋아해서 나에게 스페인어, 아일랜드어 등으로 건배를 어떻게 말하는지 가르쳐주었다. 물론, '건배'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린 한 모금 마실 때 마다 Cheers, 건배, Salute, Slainte(아일랜드 특유의 건배인사라고 한다.) 등 여러 나라의 건배 인사를 외치며 위아더월드가 되었다.
교회에서, God Bless Us
그렇게 우리는 돈카츠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맥주로 더위를 식힌 다음 동네 교회로 향했다. 교회는 오래 전부터 이 동네에 있었기 때문에, 동네에 오래 사신 주민분들도 방문하시지 않을까 생각하여 교회 두 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일단 전단지 부착 여부를 문의하고, 얘기를 나누며 이외의 도움을 얻을 수 있을 지 물어보려고 했다. 사실 전 날에 동네에 사전 답사를 왔을 때 교회 관계자분에게 전화로 문의를 드려 어렵지 않게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통화했던 분은 아니셨지만, 잘 보이는 곳에 붙여두겠다며 정말 흔쾌히 전단지 붙이는 거를 허락해주셨고, 고맙게도 우리가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것을 보셨는지 교회 1층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라도 마시지 않겠냐고 해주셨다. 뭔가 거절을 해야 할 것 같았지만, 덥다는 몸의 아우성을 이기지 못하고 수줍게 “정말이요? 너무 감사드립니다.” 라고 말씀드렸던 것 같다. 그렇게 감사히 시원한 커피를 얻어 마시고, 다음 교회로 향했다.
이 다음으로 방문한 교회에선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사전답사를 왔을 때는 교회가 닫혀 있어서 그날 당일에 사무실 직원분께 사정을 얘기하고 도움을 청해야 했다. 그래서 인터폰으로 사정을 얘기하고 도움을 청했는데, 생각보다 얘기가 긍정적으로 돼서 다음날 다시 목사님이랑 얘기를 나눠보자고 하셨는데, 알고 보니 인터폰을 사무실로 한 게 아니라 목사님이 계시는 곳으로 한 거였다. 그런데, 바로 앞 사무실에 계시던 교회 관리자 분이 밖에서 소리가 들리셨는지 문 앞으로 오셔서 나에게 어떤 용무로 왔냐고 여쭤 보셨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해서 약간 어버버하면서 사정을 말씀드린 후 다음날 도움을 받을 수 있을 지 여쭤봤는데, 교회에는 전단지를 붙일 수 없다고 단호히 말씀하셨다. 그래서, 안 되는건가 싶어 그냥 갈까 싶었지만 그래도 한번만 더라는 생각으로 방금 목사님 쪽 관계자와 인터폰으로 통화한 내용을 전달 드리니 일단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셨다.
안에 들어와서 천천히 침착하게 내가 어떤 활동을 하고 있고, 입양인 분은 어떻게 입양되었고, 그리고 어떤 도움을 받고자 하는 지 말씀을 드렸는데, 다행히 따뜻하게 이해해주셨다. 내가 밖에서 얘기할 때 긴장해서 제대로 얘기를 전달하지 못했던 것 같다. 관리인 분께선 입양인 분의 이야기에 마음 아파하시면서도, 나에게 정말 좋은 일을 한다며 칭찬해주기도 하셨고, Ingo의 가족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다른 방법도 얘기해주셨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 좀 단호하게 안된다고 하셔서 약간은 어려웠었는데, 얘기를 나눠보니 정말 따뜻하신 분이었던 것 같다.
이후 Ingo와 다시 왔을 땐 반갑게 맞이해주셨고, 목사님과 이야기 후 허가하시면 전단지를 붙여주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냉큼 전단지를 드렸다. 관리인 분께서 다른 도움 필요한 게 없냐고 하시길래, 가능하면 주일 기도할 때 목사님께서 입양인 분의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지 부탁드렸는데, 그것도 한번 상의해보겠다고 하셨다. 게다가, 우리가 시장이나 노인정에 방문해서 Ingo의 가족에 대해 물어보러 갈 계획이라고 말씀드렸더니, 관리인분께서 본인이 동네 사람들을 좀 아니까 자기가 시장에서 장사하시는 동네 어르신분들에게 데려다 주겠다고 하셨다. 내가 바란 것은 전단지 하나 붙이는 것이었는데, 이렇게 큰 도움을 받게 되어서 정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관리인분께서 단호히 안된다고 했을 때 한번 더 여쭤보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는 관리인 분을 따라서 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에서
시장에서의 경험은 신기하면서도 뭉클했다. 관리인 분께서 우리를 데리고 다니면서 시장에서 오래 장사하신 사장님분들에게 소개를 해주며 입양인 분의 사연을 아는 지 물어봐주셨고, 만약에 사장님께서 모르신다고 하시면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여기서 더 오래 장사하신 분과 통화를 해 또 우리를 연결시켜주셨고, 그렇게 주민분들과 관리인 분의 도움을 통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주민 분들을 뵀다. 동네주민분들께서 힘을 합쳐서 입양인 분을 도와주려고 하는 모습이 정말이나 뭉클했다. 그러다가 이 동네에서 일평생을 사신 사장님도 만날 수 있었다. 아쉽게도, 이 분도 Ingo의 이야기에 대해서 알진 못하셨지만, 이 동네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현재의 모습이 되었는지 정말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사장님께서 전에 Ingo를 본 것 같다고 하셨다. 아마 80년 세월을 사시며 스치며 봐왔던 얼굴 중 닮은 얼굴이 있었던 거겠지만, 혹시 Ingo의 아버지를 본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Ingo의 표정에도 여운이 좀 남아 보였다. 그렇게 이 사장님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시장에서 나왔다. 계획상으로는 노인정을 가기로 했지만, Ingo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했다. 애초부터 우리의 목적은, 정말 가족을 찾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동네를 돌아보며, 이 동네의 이모저모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었다. 우리는 동네의 옛 모습이 담긴 사진도 보고 동네에 오래 사신 주민 분들과도 얘기했으니,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리고 너무 덥기도 했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아쉽지만 우리의 여정을 여기서 마무리하고 호텔로 돌아갔다.
호텔 인근에 도착했는데 Ingo가 들어가기 전에 맥주 한 잔 하자고 해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우리의 여정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Ingo에게 깜짝 초콜릿 선물도 받았다!
다정함
사실 활동을 하는 동안 나의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과정에 의의를 둘 수 있게도 된 것 같다. 개인적으로 언어도 부족했던 것 같고, 소통을 하는 것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최대한 편하게 하려고 했지만, 조심해야한다는 마음이 커서 그런지 좀 쉽지 않았다. 그래서 Ingo의 여정을 잘 보조해주지 못한 것 같다는 아쉬움이 컸었고, 끝날 때 Ingo에게 이런 부분에 대해 미안함을 전했었는데, Ingo는 "그렇게 생각하지 마. 정말 대단하고 좋았던 경험이었어. 난 정말 만족해. 그리고 너무 고마워."라고 말하며 되려 나를 북돋아주었다. 항상 어떤 활동을 하더라도 끝나고 나면 성취감도 있지만 아쉬움도 컸다. 뭔가 하지 못한 게, 그리고 좀 더 잘할 수 있었던 게 항상 눈에 밟혀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Ingo의 얘기를 듣다 보니 내가 너무 결과에만 치중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보면 궁극적으로 바랐던 결과는 아니었지만, 여정 도중에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정한 도움을 받았으며, 궁극적으로 이 여정의 주인공인 Ingo는 만족을 했으니까! 결과보단 과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머리로만 생각하고 마음 속으론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 나를 알게 된 것 같고, 다음부턴 조금 더 과정에 집중을 해보자 하고 마음을 먹게 된 것 같다.
해외입양인연대 활동 동안 만났던 분들께 예상했던 것 이상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이 분들의 친절과 따뜻한 마음에 소소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나 혼자였으면 부족했을 여정을 가득 채워준 것 같아서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최근 한국사회에서 사람들 간의 정이 점차 사라지며 삭막해지는 현실이 아쉽고 슬프기도 했는데, 활동을 통해 마음의 온도를 높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또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일을 하며 사람들의 마음의 온도를 높이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인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내가 유일하게 아는 것은 우리 모두 다정해야 한다는 거야. 다정함을 보여줘. 특히 우리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를 때 말이야.’
나도 우리를 따뜻하게 대해주며 도움을 주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주민 분들을 따라 좀 더 많은 사람에게 다정함을 전하고 싶다. 다정함의 힘과 전파력을 알고 있었지만, 이번 활동을 통해 더 강하게 느낀 것 같다. 사람들이 서로를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날을 기대하며 조금 더 열정적으로 그리고 다정하게 살아야겠다!
해외입양인연대, 정말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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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CCO 예코 이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