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의 행복을 염원하는 이들
영화 ‘파묘’를 통해 그 어느 때보다 큰 관심을 받게 된 직업이 있다. 바로 무당이다.
신이 들린 듯한 움직임과 형형색색의 복식, 신명 나는 전통음악과 함께하는 굿판 등 요즘 세대에게는 어쩌면 상당히 낯설면서도 거리감 있게 느껴지는 직업이다. 그렇지만 파묘를 통해 우리가 만난 무당은 우리가 막연하게 짐작하던 전통적인 무당의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 마샬 스피커를 사용하고, 핀 마이크를 부착해 굿을 진행하고, 스마트워치를 차며 컨버스를 신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비일상적이라고 여겼던 존재를 일상 속 물건들을 통해 친근하고 트렌디한 사람으로 만든 부분은 비록 그 영향은 적을지 몰라도, 젊은 세대에게서 파묘의 흥행을 이끌어내는 데에 어느 정도 이바지한 점이 있다고 보인다.
이렇게 파묘를 통해 우리와 한층 가까워진 무당이지만, 사실 영화만을 보고 무당의 모든 것을 이해하기란 아직 어렵다. 파묘 속 주인공 무당 화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에 대해 파헤치고, 험한 것들을 물리치고 한 가족의 평화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무당은 원래 무엇을 하던 이들일까?
일반적으로 무당의 시초는 고대 부족국가의 제천의식으로 여겨진다.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 등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 집단 가무로써 국가의 안녕과 삶의 풍요를 기원하는 행사에서 출발한 것이다. 삼국시대에 접어들며 이 행사가 전문화된 무당에 의해 거행되는 의례로 발전하면서 점차 무당이라는 개념이 확실히 뿌리내리게 되었다. 고구려에서는 왕의 스승으로서, 백제에서는 점성술사로서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데에 영향을 미쳤다. 또 신라에서는 여성 사제권이 존재해 여성 무당이 제사를 관장하기도 했다. 이것이 고려로 넘어오면서 당시의 기본 사상이었던 불교에 녹아들었다. 국무당을 도성 내에 설치해 점복을 국가차원에서 다루었고, 그렇기에 뛰어난 능력을 갖춘 무당은 국가에 매우 중요한 존재였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탄압하는 숭유억불 정책이 시행되면서, 불교와 융화되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고 있던 무속 역시 음사로써 배척의 대상이 되었다. 이에 따라 조선시대에서는 무속을 음사로 규정하고, 여기에 종사하는 무당은 천민으로 강등시켰다. 아마 조선시대의 이러한 관점이 오늘날 사람들이 무속신앙을 낮잡아보는 것에 일정부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러나 지배층이 가지고 있는 외적 이념이나 정책과는 별도로 사회적 기층을 이루는 민간층이 가지고 있는 내적인 종교적 요구는 없앨 수 없었다.
무당은 크게 강신무와 세습무로 나눌 수 있다. 강습무는 흔히들 말하는 신내림을 받고, 굿을 통해 신병을 치료한 후 무당이 되는 이들을 뜻한다. 따라서 이들은 스승 격의 무당을 신어머니로 모시며 도제관계를 형성한다. 주로 한강 북쪽에 분포하고 있다.
반면 세습무는 부모로부터 무당의 신분이나 직능을 물려받아 되는 무당으로, 한강 남쪽 지방과 한반도의 동쪽 해안을 따라 분포한다. 세습무는 여자무당이 주로 춤과 노래로 신을 모시고, 남자는 무악을 연주하는 악사로서 굿에 부수되는 연희를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세습무가 강신무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고 평가받는다. 파묘 속의 주인공 화림 역시 작중 ‘할머니가 지켜준다.’는 표현과 다른 무당들을 많이 알고 있고 어려서부터 까다로운 교육을 받은 것, 일반적인 무당에 비해 강한 힘을 가진 점 등으로 보아 가족 대대로 무업에 종사하는 세습무로 볼 수 있을 듯하다.
지역과 무당의 유형, 굿의 동기나 목적에 따라 굿의 종류가 나뉘는데, 크게 집굿과 마을굿, 신굿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에서 신굿의 경우는 개인적인 굿 성격이 강한데, 강신무가 신을 받을 때 하는 내림굿과, 신을 받은 후 자신이 모시는 신에게 바치는 진적굿이 신굿에 해당한다. 집굿과 마을굿이 바로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굿이다. 집에서 복락을 추구하고, 죽은 사람의 영혼을 천도하는 굿 등을 집굿이라고 하고, 마을의 번영과 주민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것이 마을굿에 해당한다.
굿의 목적은 단연코 산 자의 안녕과 복락을 기원하기 위함이다. 무당은 죽은 이와 가장 가까운, 누구보다 깊이 영적 세계와 소통하는 행위를 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산 자의 행복을 염원한다. 설령 죽은 영을 위한 사령제를 지내더라도 결국 그것은 가족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산 자를 위하는 성격이 아주 강하다. 어떠한가? 막연히 낯설고 어렵게만 느껴지던 무당이 사실은 누구보다 우리의 행복을 빌어주는 존재라니, 왠지 든든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YECCO 예코 콘텐츠기획팀 백이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