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ECCO Mar 28. 2023

한중일 정원에 나타난 문화적 특성

궁궐기획2 | 한국, 중국, 일본의 정원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자연을 정복의 대상이 아닌 순응하고 따라야 하는 대상으로 여겼던 동아시아의 공통적인 철학 아래서도 한국, 중국, 일본이 자연을 다뤘던 방식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중 정원은 인간의 입장에서 자연을 가둬서 창조한 공간이므로, 그 속에는 정원을 창조한 인간과 그가 속한 문화의 특성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한중일 삼국의 문화적 특성은 정원이라는 공간을 통해 어떻게 발현되고 있을까?


거대한 자연을 통째로 옮겨놓은 중국의 원림(園林)

중국은 정원 대신 원림(園林)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데서부터 그 특징이 잘 드러난다. 뜰을 가꿔 을 만든다는 그 뜻처럼, 중국의 원림에는 또 하나의 작은 세계인 소천지(小天地)가 담겨있다. 그래서 중국의 조경에는 자연을 통째로 옮겨온다는 발상이 깔려있으며, 동굴, 산, 폭포 등의 다양한 자연환경이 하나의 원림 안에서 재현된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중국은 괴석을 통해 거대한 자연요소를 원림 속에 구현하고자 했다. 사진은 양저우 개원(个园) (C)Google Arts & Culture


특히, 기암괴석을 모아 가산(假山)을 조성한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는데, 거대한 자연을 원림 안에 구현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괴석들을 선호하게 되었다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다. 얼마나 좋은 괴석들을 많이 갖고 있느냐에 따라 정원의 수준이 결정된다고 할만큼, 중국의 원림에는 다양한 괴석들이 보인다.

쑤저우 사자림(狮子林)은 원나라 때 조성되었고, 훗날 청나라 건륭제도 이곳에 여러 차례 놀러왔다고 전해진다. (C)Wendi Wei Tour


아예 진짜 산을 만들어버린 경우도 있다. 청나라 황제의 여름별궁이었던 이화원(頤和園)에는 인공호수 '쿤밍호'를 조성할 때 파낸 흙을 쌓아 올려 만든 무려 60m 높이의 인공산인 '만수산'이 있다. 이화원은 다양한 자연요소를 한 곳에 구현하듯 중국 각지의 명승지를 원림 속에 재현해 놓은 '명경이식기법'을 확인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베이징 이화원에 있는 인공호수와 인공산 (C)메타버스신문


산, 폭포, 동굴 등 한 곳에서 보기 힘든 자연요소들을 한 곳에 구현해 놓을뿐만 아니라, 각 지역의 명승지까지 한 곳에 재현한 중국의 정원을 보면 정원의 조성방식에서도 중화사상이 느껴지는 듯하다.


비유와 추상이 숨어있는 일본의 정원(庭園)

일본 정원의 핵심 개념은 <비유>다. 자연을 그대로 가져와 감상하기 보다는 정교하게 가공되고 편집된 자연을 통해 철학적 개념이나 주제를 표현하고자 했는데, 이러한 특성이 일본의 정원을 사색과 관조의 공간으로 거듭나게 한다.


이러한 추상적 기법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일본의 정원 형식이 바로 '가레산스이(枯山水)다. 울창한 나무도, 알록달록한 꽃들도, 연못도 보이지 않아서 이것이 과연 정원인가 싶을 수도 있지만, 오로지 부순 돌과 흰 모래만으로 수면과 같은 분위기를 표현한 일본만의 독특한 정원 형식이다.


료안지(용안사)의 가레산스이를 보면 모양과 크기가 다른 15개의 돌을 배치해놓았는데, 어느 곳에서 보더라도 15개 전체가 다 보이지 않게 조성되어 있다. 여기에는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이 우주 전체를 이해할 수 없으며 끊임없는 참선을 통해 진리에 다가갈 수 있다는 불교 선종(禪宗)의 가르침이 담겨있다.

일본 료안지의 가레산스이(枯山水) (C)LIVEJAPAN


왕과 황제가 살던 궁(宮)에서 최고의 정원을 볼 수 있는 한국, 중국과 달리 일본 정원의 정수는 사찰과 같은 종교공간에서 찾을 수 있다. 은유를 통해 깨달음을 주고자 하는 일본 정원의 특성과 가장 잘 어울리는 공간이 사찰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교한 가공과 편집을 통해 의미를 부여하고 완벽성을 추구하는 일본 문화의 모습이 정원의 조성방식에서도 느껴지는 듯하다.


인간과 자연의 경계가 모호한 한국의 정원(庭苑)

현재 우리나라의 정원 한문표기는 일본과 같은 정원(庭園)을 사용하고 있지만, 전통적으로는 '동산 원(園)'이 아닌 '나라 동산 원(苑)'을 써서 같은 동산을 뜻하는 한자지만, 울타리로 경계를 친 뜰이라는 의미를 포함시켰다. 집 안에 있는 뜰만이 아닌 주변 경관까지도 정원의 개념에 포함시키는 한국 정원의 특징을 고려할 때 전통적인 표기가 그 뜻을 더 잘 반영하고 있다.


한국은 집을 짓고 그 안에 정원을 예쁘게 가꾸는 게 아니라, 애초에 산 좋고 물 좋은 곳을 찾아서 그곳에 집을 짓는다. 자연이 마치 건축의 일부처럼 활용되면서 정원과 원초적 자연의 경계가 뚜렷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을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건축이 경주의 ‘옥산서원’이다.


옥산서원은 산을 등지고 계곡을 마주하는 곳에 세워져서, 산과 계곡이 서원에 속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서원의 뒷마당처럼 느껴진다. 자연을 인공적으로 집 안에 조성하기 보다는, 경관이 뛰어난 곳을 골라 그 주변에 집을 짓고 자연을 그대로 정원으로 활용하는 가장 대표적인 한국 전통 정원의 예시다.

옥산서원 독락당은 계곡과 바로 맞닿아 있다. (C)일요시사


한국 전통정원의 정수는 창덕궁에서 찾을 수 있다. 창덕궁의 후원은 매봉산 자락의 경사진 지형과 자연경관을 그대로 보존한 채 후원을 조성하여, 누각과 정자들이 수풀 속에 자연스럽게 융화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왼쪽부터 창덕궁 규장각과 주합루, 관람지, 애련지 (C)YECCO


연못에 물을 대는 방식에서조차 인공적인 요소를 찾아볼 수 없다. 중국과 일본의 경우 인공적으로 연못을 채우는 데 반해, 한국의 정원은 자연적으로 흐르는 물줄기를 연못으로 끌고 와서 물을 채웠다. 현재 창덕궁의 금천에는 물이 흐르지 않지만, 현대 도시가 건설되기 이전에는 창덕궁 후원의 옥류천에 흐르는 엄청난 양의 물이 궁궐 전각의 금천까지 쭉 흘러내려왔다.

창덕궁 후원 옥류천(왼쪽 사진)에는 물이 폭포처럼 쏟아졌다는 기록이 있다. 그 물이 창덕궁 초입의 금천(오른쪽 사진)까지 흘러내려 왔다. (C)YECCO (C)국가문화유산포털


인간의 생활공간과 자연의 경계가 모호한 한국의 특성은 '담장'에서도 나타난다. 한국은 삼국 중에서 담장이 가장 낮다. 궁궐조차도 담이 높지 않다. 인공적인 울타리는 낮추고 자연을 울타리 삼는 모습에서 왠지 배산임수(背山臨水)에 따라 터를 잡았던 선조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창덕궁 후원 연경당의 담 (C)YECCO

.

.

.

<참고문헌>

유홍준,『나의 문화유산답사기9』

한국전통조경학회,「이화원 황가원림의 경관연출기법 연구」

건축블로그 '마당'



YECCO(예코) 콘텐츠기획팀

김승연, 김혜린


YECCO는 외국인에게 문화유산을 해설하는 청년 비영리단체입니다.

Instagram(@yecco_official), NAVER 오디오클립 <예코 고고해>에서도 YECCO의 콘텐츠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서울ㆍ경기 지하철 타고 같이 꽃 보러 갈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