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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오 Oct 16. 2024

티거에게

땅이 얼기 전 구덩이를 파야 한다고 아버지가 재촉했다. 날씨가 봄날처럼 따뜻해 12월 중순인데 아직 땅이 얼지 않았다. 이러다가도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눈이 올지 모른다. 며칠 전 제주도 여행을 갔다 와서 그런지, 아버지 목소리가 다른 때보다 부드러웠다.

나와 둘째는 삽과 곡괭이를 들고 앞서가는 아버지를 따라갔다. 매장할 자리는 이미 봐둔 터다. 산 아래 아버지 명의의 답이 시작되는 곳, 티거가 매일같이 산책하던 볕이 잘 드는 곳이다. 풍수는 몰라도 이만하면 명당이다 싶었다.

땅파기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삽이 쑥쑥 들어가 금세 구덩이 모양이 나왔다. 키가 큰 티거라 구덩이도 긴 직사각형 모양이 나왔다. 내가 땅을 파는 게 시원찮아 보였는지, 어느새 삽이 아버지 손에 넘어갔다. 할아버지와 손녀가 13년을 같이 보낸 티거를 묻기 위해 땅을 파는 모습이 12월 같지 않은 날씨만큼이나 따뜻해 보였다. 땅파기를 다 끝내고 내려오며 둘은 이제 걱정이 없다고 말했다.


며칠 후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고 눈이 펑펑 내렸다. 개들은 좋아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데, 티거만 집 안에서 꼼짝을 할 수 없었다. 티거는 앉은 채로 이불 위에 오줌을 쌌다. 사람 같으면 기저귀라도 채울 텐데, 티거를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일단 급한 대로 배변패드를 깔아 뒀지만, 이불도 바닥도 축축했다. 날은 춥고 움직임이 적다 보니, 뒷다리 근육이 빠져서 자력으로 일어설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거동을 할 수 없게 되자, 똥오줌이 다 문제다. 티거가 움직일 수 없게 되자, 나도 꼼짝을 못 했다. 티거 수발에 온 힘을 쏟았다. 개가 죽는 과정도 사람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삶의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는 티거가 짠했다.  


드디어 기말고사를 마친 둘째가 왔다. 급격히 나빠진 티거 상태를 보고, 둘째도 마음의 준비를 했다. 이틀 후면 크리스마스이브인데, 우리는 티거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다. 둘째는 음식을 못 먹는 티거를 위해 영양식을 만들었다. 티거는 딱 한 번 먹고는 다음날 다 토해버렸다. 둘째는 행여 욕창이라도 생길까, 무거운 티거를 안아서 자리를 바꿔주었다. 다리도 주물러주고, 배도 쓰다듬었지만, 티거의 숨소리는 점점 더 거칠어졌다. 둘째는 밤새 티거 곁을 떠나지 않았다. 금요일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더니, 일요일 밤엔 항문이 열려 검은 똥이 줄줄 나왔다.

 "베넷똥이네. 사람이랑 똑같네."

티거를 보러 온 아버지가 말했다. 여러 죽음을 목격한 아버지는 사람도 죽기 전에 저런다며, 개도 그런 줄은 몰랐다고 했다. 아버지는 구덩이가 얼었을 거라며 걱정했다.


밤새 끙끙 앓던 티거가 새벽을 넘겼다. 입을 벌리고 숨쉬는 탓에 혀가 마른 티거에게 물을 주었다. 몇 모금 물을 마신 후, 갑자기 티거의 몸이 경직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숨을 토해내더니, 더 이상 숨을 안 쉬었다.

"엄마, 티거 심장이 안 뛰어."

눈을 뜬 상태로 티거의 심장이 멈췄다.  


12월 25일 아침. 우리 집 대들보 같던 티거가 죽었다.

가장 덩치도 컸고, 가장 오래 살았고, 가장 깊이 교감을 나누었던 티거가 늙고 아픈 몸을 벗어났다. 둘째가 티거의 눈을 감겼다.

제일 바쁜 건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신문지로 불을 피워 구덩이를 가득 채운 눈을 녹였다. 그리고 트랙터를  집 앞까지 끌고 와서 티거 나를 준비를 했다. 우리는 티거가 누운 이불 네 귀퉁이를 잡고 티거를 집 안에서 집밖으로 꺼냈다.

며칠 동안 움직이지 못했던 티거는 죽어서야 집 밖으로 나왔다. 자갈마당에 놓인 티거. 함께 지내던 개들이 다가와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 가까이 가지 않는다. 개들이 죽음의 냄새를 맡은 것일까? 평소 같으면 티거 앞에서 꼬리를 흔들고, 핥았을 녀석들이 티거 가까이 가지 않았다.

티거는 트랙터 앞 바가지에 실려 뒷동산으로 갔다. 구덩이에 티거를 묻고 흙으로 덮었다.

한 삽씩 떠서 티거 위에 뿌리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티거야, 잘 가! 행복했고, 고마웠어!"

모두 생을 마친 티거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 티거의 마지막이 이렇게 와버리다니!

자신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 듯 슬퍼하는 둘째를 보니 맘이 참 아팠다.


티거가 가고 몸은 편해졌지만, 그 자리가 너무 휑하다. 소멸이란 그런 것이다. 다시는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물성이 사라져 없어지는 것.


p.s.

티거에게

티거야, 잘 지내고 있니? 내가 너를 정말 사랑하지만 편지는 오늘 처음 쓴다.

내가 집에 갔을 때 그 누구보다 나를 반겨줘서 정말 고마워. 난 정말 너에게서 큰 힘을 얻는다.

이 세상에서 너는 가장 아름다운 존재야.

그건 확실해. 티거야, 다음 주면 1주일 동안 같이 있어. 그날만을 기다릴게.

건강하게 아프지 말고 행복하게 살자!

                                                              20.11.16


 (몇 년 전 둘째가 쓴 편지를  다시 티거에게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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