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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오 Oct 19. 2024

노인회장의 운명

3년 전 아버지는 노인회장을 맡게 됐다. 그걸 맡으면 재수 없다고 꺼렸지만, 당시 노인회장이 밤마다 산소 호흡기를 끼고 잔다고 하니 도리가 없었다. 노인회장님은 회장직을 넘기고 그 해 돌아가셨다. 아버지보다 고작 한 살이 더 많았다.


아버지가 노인회장을 맡는 사이 네 번의 죽음이 있었다. 전직 노인회장 다음으로 마을 이장님이 죽었다. 60대 중반 마을에선 아직 젊은 나이인데, 말기암이었다. 이장님을 마지막 본 날이 생생하다. 그는 농사짓던 비닐하우스 앞에서 몸을 잘 가누지 못하고 인사조차 받지 못했다.  보다 못한 아버지가 시동도 걸어주고 부축해서 간신히 트랙터에 태웠다. 이장님 트랙터가 농로를 따라가는 모습을 보며, 아버지는 흉을 봤다. 저런 몸으로 무슨 농사를 짓냐며, 몸이 저렇게 되도록 뭘 한 거냐며 타박했다.


나는 이장님이 딱했다. 죽음이 코앞인데, 농사지을 생각밖에 못하다니. 그날 저녁 응급실에 실려간 이장님은 보름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집에는 돌보지 않아 못 쓰게 된 호박과 고추 모종이 가득했단다. 참 황망한 죽음이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모종들이 돌아올 수 없는 주인을 기다리며 말라갔다니!


아버지는 자기 몸을 돌보지 않은 이장이 미련하다고 했다. 인간은 단 일 초의 미래도 알 수 없어 모순적이다. 그때 자신의 몸속에도 5cm 크기의 암덩어리가 자리 잡고 있다는 걸 알았다면, 어떤 말을 했을까? 이장님과 같은 간에 정착한 암덩어리는 2년 후, 간 전체로 퍼져 아버지를 말기암 환자로 만들었다.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아버지는 올해도 고추모종을 잔뜩 신청했다. 그러고 나서 그 모종이 자라는 것도 보지 못하고 이장님과 같은 5월에 눈을 감았다.


보통의 시골 노인답지 않게 아버지는 건강관리에 철저한 편이었다. 조금만 통증이 생겨도 즉시 병원에 가서 각종 검사를 섭렵했다. 대전보훈병원에 가면 자가검사비용이 10%라며 자랑 아닌 자랑으로 건강관리에 자신만만했던 아버지. 특히 오장육부 중 '간'을 제일 자신 있어했다. 40대 술에 절은 간을 치료한 경험이 있어, 늘 간만큼은 자신 있어했다. 얼마나 자신감이 넘쳤으면 2년 전 농협 조합원 자격으로 실시한 건강검진 결과를 뜯지도 않은 채, 서랍 속에 고이 모셔놓았을까. 시내에 있는 검진 병원은 의료사고가 많고, 의사들이 돌팔이라는 자기 확신 때문에.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다. 대단히 자기중심적이고, 확증편향적인 사람. 심리학에서는 이런 사람을 나르시시스트라고 한다. 아버지는 평소에 "잘 됐어. 완벽해!"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집을 지었을 때도, 집에 하자가 생겨 보수 공사를 했을 때도, 오래전 죽은 새 할머니 명의로 된 땅이 복잡한 상속과정을 거쳐 당신의 형제들끼리 6등분으로 나눌 때도. 자신이 직접 한 일에 대해 '완벽하게 됐다'라는 표현을 쓴다.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 같은 걸까, 자신은 완벽한 사람이라는.


아이러니하게도 암은 그런 아버지의 허점을 완벽하게 노렸다. 신약이라는 항암제를 맞고 나서 아버지 몸은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길로 갔다. 건강해만 보이던 육체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항생제와 마약성진통제에 절어 비쩍 마른 몸이 되어 스스로 걸을 수도, 앉을 수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렇게 두 달을 버티다 마지막엔 혼수상태로 가족들과 작별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삶을 마감했다.

완벽해 보였던 아버지의 생은 작은 암세포에 잠식돼 결국 죽음이라는 장막 뒤로 사라져 버렸다.


"틀렸어."

두 번째 응급실에 실려갔다가 퇴원한 아버지가 내뱉은 말이다. 완벽했던 자신의 몸이 이제 틀려버린 것을 자각한 한 것이다. 말기암 선고를 받은 지 고작 두 달밖에 안 됐다. '완벽해'와 '틀렸어' 사이에 아버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미처 준비할 새도 없이 닥쳐버린 생의 마지막을 맞은 기분은 어땠을까?


"봄만 봄이 아니다.

한평생 다 살아서 이미 나이가 많이 든 뒤에라도

살아있기만 하다면 인생은 아직도 여전히 봄인 것이다.

그렇게 봄과 같은 시절을 탕진하고 나면

우리는 어딘가로 사라지게 된다.

그것을 가리켜 죽음이라 하니,  

봄날의 인생 뒤에는 죽음이 있는 것이다."

  

영면에 들어간 아버지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아버지 인생은 '봄날'이었다고.


 (수첩에 적어 둔 글귀인데, 어느 책인지 누가 쓴 글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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