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웅-웅-웅.
밖에서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오랜만에 듣는 예초기 엔진 소리. 근 일 년만이다. 작년 가을 예초기를 돌리고는 내내 못 켰다. 창문을 여니, 소리가 더 크게 울린다. 위아래 검은 운동복을 입고, 헬멧까지 쓴 남자가 예초기를 돌리고 있다. 엄마가 막내 삼촌을 불러들였다.
새벽에 온 삼촌은 자신이 쓰던 예초기를 가져와 아침부터 풀을 깎는다. 오랜만에 우리 마당에서도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아버지 살아계실 때는 저 소리가 그렇게도 싫었는데, 오랜만에 들으니, 반갑고 울컥한다. 예초기 소리조차 반가워지는 순간이 있을 줄이야!
엄마의 사람 부려먹는 재주는 정말 탁월하다. 아버지가 모든 걸 혼자 해결하는 스타일이라면, 엄마는 누구든 불러들인다. 나에게 없는 재주다. 정년 퇴직한 삼촌도 심심하던 차에 내려온 것이겠지만, 덕분에 엄마는 큰 걱정을 덜었다.
오전 내내 풀을 깎던 삼촌이 헬멧을 벗었다. 얼굴엔 땀이 범벅이고, 옷은 풀이 튀어 어수선하다. 그래도 삼촌은 전혀 힘든 내색 없이 웃는 얼굴이다. 나는 얼른 커피를 내렸다. 남매가 파라솔 그늘에 앉아 냉커피를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아버지 장례식이 끝난 후, 두 번째 우리 집에 왔다. 여름에 왔을 땐 예초기가 말썽이었다. 엔진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삼촌은 주인이 없어서 기계도 말을 안 듣는 거라며, 다음에 자신의 예초기를 가져오겠다더니, 약속을 지켰다.
큰딸인 엄마와 막내 삼촌은 스무 살 정도 차이가 난다. 엄마의 친엄마는 딸 둘을 낳고 얼마 되지 않아 죽었다. 할아버지는 또 장가를 갔고, 그 할머니가 낳은 셋째 아들이 막내 삼촌이다. 나와 삼촌은 고작 일곱 살 차이다.
엄마를 만나기만 하면, 삼촌은 조카 욕부터 한다. 죽은 큰 형의 아들인 조카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시던 집을 팔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집을 조카 명의로 했는데, 치매 걸린 할머니를 4년이나 모신 삼촌에게 아무런 상의도 없이, 자신 명의로 된 집을 날름 팔아버린 것이다. 집이 팔린 것을 알았을 때 아버지는 삼촌을 꼴통이라고 했다. 집 등기에 압류를 걸어놓지 않았다고. 그럴 때면 엄마도 "걔가 좀 꼴통이지."라며 맞장구를 쳤다. 그랬던 엄마가 '꼴통' 동생과 마주 앉아서 수다를 떤다.
"크다! 와, 진짜 크다!"
막내 삼촌이 고추건조기 안을 들여다보며 말한다. 갑자기 삼촌은 몇십 년 전 할아버지에게 중고 건조기 사드린 이야기를 한다. 작은 건조기에 고추를 말리니 할아버지가 참 좋아하셨다는 이야기를 하며 활짝 웃는다. 할아버지 임종 때 혼자서 지켜보다 눈을 감겨드렸다는 이야기,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마지막 자신의 품에서 눈을 감았다는 이야기, 군대 제대한 아들과 처음 간 일본 여행에서 엄청 큰 초밥을 먹었다는 이야기... 삼촌 이야기가 끝날 줄을 몰랐다.
나는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삼촌을 바라본다. 원망과 미움을 걷어내니, 오롯이 삼촌의 천성이라 짐작할 모습이 나온다. 인정 있고, 성실하고 우직한 막내 삼촌. 할머니가 시집와서 낳은 자식 중 제일 아픈 손가락 같던 막내 삼촌은 아파서 중학교를 중퇴한 이후, 변변한 직업 없이 농사일을 돕다가 혼기를 놓쳐 골칫거리처럼 여겨졌으나, 지금은 제일 걱정 없는 노년을 맞았다. 삼촌 얼굴이 할머니와 판박이다. 웃는 얼굴로 말하는 삼촌을 보는데, 꼭 외할머니가 앉아있는 것만 같았다.
수인선 열차가 오가던 00역 시골마을에 외갓집이 있었다. 소도 몇 마리 키우고, 농사도 짓고, 집 가운데 마당과 수돗가가 있고, 사랑방과 아궁이가 있는 전형적인 시골집. 나는 동생과 둘이서 수인선 열차를 타고 방학 때면 외할머니 집에 갔다. 농사와 집안 일로 바쁜 와중에도 손주를 챙기려고 귀한 계란을 꺼내 부쳐주시던 할머니. 몇 살 차이 안 나는 조카와 놀아주던 젊은 삼촌과 이모. 덕분에 나와 동생의 방학생활은 풍성했다. 어쩌면 시골감성을 그때 키운 건 지도 모른다. 몰래 이모방에 들어가 이모의 연애편지도 훔쳐보고, 큰삼촌 신혼방에도 들어가 과자를 먹던 기억도 난다. 겨울엔 물을 대 꽝꽝 언 논 위에서 스케이트와 썰매도 탔다.
이젠 모두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 수인선 열차도, 00역도, 옛날 외갓집도, 큰삼촌도, 외숙모도,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모두 사라졌다.
막내 삼촌은 이야기 끝에 장인 장모가 나이가 많아 양평에 있는 전원주택을 물려줄 테니 같이 살자고 한다는 말을 했다. 손재주가 좋고, 심성이 착한 사위가 맘에 들었나 보다. 외숙모도 친정 부모님 곁에서 살고 싶어 한단다. 나는 삼촌에게 아파트 생활을 접고 양평으로 가라고 했다. 이제 연금 생활자니 노년은 걱정 없겠다며.
그러자 엄마가 진지한 얼굴로 삼촌에게 묻는다.
"너 진짜 갈 거야? 그럼 난 친정이 없어지는데..."
뜬금없는 친정 타령에 나는 그만 웃음이 터졌다. 팔순의 엄마에게도 친정은 소중한가 보다.
삼촌도 그저 웃기만 했다. 아무튼 삼촌 덕분에 엄마는 친정 덕을 톡톡히 봤다.
집에 가려는 삼촌에게 여름에 만들어 둔 블루베리 잼을 드렸다. 삼촌이 고맙다며 씩 웃는다. 할머니 미소로.
막내 삼촌이 왔다 가니, 꼭 외갓집에 다녀온 것처럼 마음이 푸근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