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째 엄마가 우리 집에 오지 않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딸네 집에 들러 수다도 떨고 차도 마시던 엄마가 오지 않는다. 오랜만에 생긴 경계선이다.
지난 주말 나는 같이 마늘 심자는 요청을 거절했다. 엄마는 동생에게 구시렁거렸을 테고, 결국 손이 거칠어서 마늘을 삐뚤게 심는다는 동생을 데리고 나가 마늘을 심었다. 그리고선 단단히 삐져버렸다.
엄마 요구를 거절한 이유는 있다. 전날 밭일을 도와주러 남동생이 왔는데, 트랙터로 밭을 가는 일이 끝나자마자 엄마는 자기 볼일을 보러 나가 버렸다. 아들과 손자까지 왔는데, 볼일을 보러 나간 엄마의 이기적인 행동에 기가 찼다. 그럴 거면 나중에 부르던가, 아님 자신의 약속을 포기했어야 했는데, 자신의 욕심을 다 채웠다. 매번 겪는 일이지만, 유난히 더 얄미운 마음이 들었다. 자식들 부려먹는 재주가 쏠쏠한 엄마에게 찬물이라도 끼얹고 싶었다.
다음 날 나를 보는 엄마 눈길이 싸늘했다. 그러더니 저녁때쯤 놀러 온 동생 친구 차를 얻어 타고 아들 집으로 휑하니 가버렸다. 다음 날 동창모임이 있어서 간다는데, 어쩐지 엄마가 시위하는 걸로 보였다. 그날 저녁 엄마는 문자도 전화도 한 통 없었다. 살갑게 전화하는 사이는 아니어도, 아버지가 죽고 나서 기차역에 태워다 드리면 잘 도착했다는 전화 정도는 하는 사이였는데, 찬바람이 불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나도 엄마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다음 날도 엄마는 전화 한 통, 문자 하나가 없었다. 집에 오는 버스를 시간 맞춰 타긴 힘드니 전화를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둑해질 때까지 엄마에게 소식이 없었다. 깜짝 놀라 엄마집에 가보니, 엄마가 식탁 앞에 앉아 있었다. 꼭 순간이동해서 날아온 것처럼. 어떻게 왔냐고 묻자, 콜밴을 불러서 타고 왔단다. 엄마 얼굴에는 승자의 표정이 담겨있었다.
'너 없어도 다닐 수 있어. 흥!'
엄마와 거리감이 생기면 생길수록 나는 편하다. 우리 집에 오지도 않고, 일도 시키지 않으니 느긋하게 뒹굴며 방해받지 않고 내 일을 할 수 있다. 물론 나 대신 누군가는 엄마 옆에서 일을 도와야 한다. 그게 누구든.
다음 날 오후 뒹굴거리다 밭에 가보니, 동생이 혼자서 콩을 베고 있었다. 왜 혼자냐고 했더니, 엄마는 피곤해서 주무시고 자신은 마저 일을 끝내려고 하고 있단다. 노는 나와 일하는 동생을 보니, 내가 꼭 팥쥐 같고, 동생은 콩쥐 같다. 이상하다. 역할이 바뀐 기분이다. 분명 예전엔 내가 콩쥐였고, 동생이 팥쥐였는데, 어느새 이렇게 됐지? 나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 동생에게 도서관에 갈 거냐고 물었다. 동생은 콩만 다 베고 가겠다고 했다.
동생과 도서관에 들렀다, 닭사료를 싣고 김밥까지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김밥을 먹고 어두워지기 전 개산책을 다녀왔다. 저녁 6시가 조금 넘었는데도 밖은 캄캄해졌다. 그렇게 콩쥐와 팥쥐는 나름 사이좋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문제는 다음 날이다. 아침 일찍 우리 집에 들른 엄마와 마주쳤다. 엄마가 사위 먹으라고 뭇국을 가져온 모양이다. 그런데, 나를 보고도 인사 한 마디 없이 나가는 것이다.
"딸을 보고도 왜 인사를 안 해?" 하고 툭 던졌다.
그랬더니, 엄마가 눈을 부릅뜨고,
"어떻게 엄마를 두고 개 산책을 가니? 엄마가 어제 캄캄한 밭에서 얼마나 무섭고 떨렸는 줄 알아?"
이러면서 노기 띤 목소리로 말했다. 뭔가 분하고 억울한 표정이다. 개가 엄마보다 더 중하냐며, 왜 동생을 데려갔냐는 거다. 동생에게 밭에 비닐 벗기는 걸 시키려 했다고 항의하듯 쏟아냈다.
엄마는 분명 뭇국이라는 뇌물을 받아 든 사위가 편들어주기를 바랐을 거다. 약하고 힘없는 늙은 장모를 가련히 여기기를 바라며... 그러나 사위는 엄마 편을 들지 않았다. 언제나 기어를 중립에 놓고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다.
갑자기 속에서 뭔가 끓어올랐다. 도대체 엄마는 만족을 모른다. 이걸 도와주면 저걸 도와달라 하고, 저게 끝나면 또 다른 게 있다. 이건 마치 민담 속 계모가 깨진 물항아리에 물을 채워라, 콩밭에 풀을 메라, 끊임없이 요구하며 자식을 괴롭히는 것과도 같다.
"다음날 낮에 하면 되잖아. 그게 꼭 밤에 해야 할 일이야?"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본인 입장에서만 생각하지 말고 자식 입장에서도 좀 생각하라, 시도 때도 없이 아들을 불러들이지 말고, 자신이 다 감당 못할 농사일을 만들어 자식들을 힘들게 하지 말라, 자식 걱정도 좀 하라고... 두서없이 말했다. 꼭 자식을 훈계하는 부모처럼.
내 말을 듣는 엄마 표정은 그야말로 '벙찐' 표정이다. 나도 안다. 엄마는 내 말을 못 알아들었을 거라고. 평생을 그렇게 본인 위주로 살아온 엄마에게 다른 사람의 입장도 좀 생각해 달라는 말이 얼마나 이상하게 들릴지...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엄마는 집으로 가버렸다.
중년의 나이에 노년의 부모와 같이 산다는 건 모험이다. 그건 자신의 밑바닥을 보는 일이며, 자신의 내면을 마치 해부하듯 하나씩 파헤쳐 전시하는 일이다. 웬만하면 덮어두고, 그런대로 괜찮은 척 살아가도 좋았을 걸... 후회의 연속이다. 사람들이 엄마에게 딸이 옆에 살아서 얼마나 좋으냐고 묻는단다. 엄마는 좋다고 얼른 고개를 끄덕이지 못한다. 엄마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딸의 모습과 나는 너무 거리가 멀 테니까.
"보편적으로 부모와 자녀의 심리적 분리는 부모뿐 아니라 자녀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자신 안에 내면화한 부모의 모습과 싸우고, 달래고, 도망치고, 협상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곧 사람이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성장의 과정이다.
나이가 든다고 끝나는 일도 아니고 어쩌면 평생 지속해야 하는 과제이다. 나는 그 과정을 어떻게 치러내는가가 어떤 사람이 되는지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본다."
김희경, <이상한 정상가족> 중에서
언젠가 읽은 이 책의 문장이 8년 간 나를 버텨준 힘이다. '자신 안에 내면화한 부모의 모습과 싸우고, 달래고, 도망치고, 협상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곧 사람이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성장의 과정'이라는 이 문장이 내 삶의 위로였다. 부모로부터의 정서적 독립은 '나이가 든다고 끝나는 일도 아니고 어쩌면 평생을 지속해야 하는 과제'라는 말에 나는 힘을 얻었다. 부모와 싸우고, 부모의 요구를 거절하는 일이 겉으로 보기엔 불효 같고 나쁜 사람 같지만, 실은 심리적 독립을 위한 처절한 싸움의 과정이라고 변명해 본다.
얼마 전 일을 도와주러 내려온 남동생으로부터 '누나가 예전엔 착했는데, 이젠 안 착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남동생은 누나가 왜 그렇게 변했는지 궁금하다며 아련한 눈빛으로 나를 봤다. 엄마와 밀착되어 있는 남동생에게 '이상한 정상 가족'에 나오는 이런 심오한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들려줘야 할지 난감했다.
"나는 원래 안 착했거든! 그땐 그냥 착한 척한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