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하게 굴면 분명 만만하게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 다정함을 이용해 자기 이득을 취하려고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타인에게 다정하지 못할 이유는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오해하곤 합니다.
"다정함은 타인을 위한 것이야"
그러니 자꾸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친절을 베풀었는데? 다정함을 베풀었는데?
네가 나한테 이렇게 한다고? 네가 뒤에서 내 흉을 본다고? 내 친절함과 다정함을 이용해 먹는다고? 날 이렇게 만만하게 본다고?"
이런 생각과 함께 자신이 베푼 다정함은 그 양만큼 정확하게 상처로 돌아옵니다.
그러니 다정함은 타인을 위한 시혜적 베풂이라 여겨지고 점점 다정함을 베푸는 일은 어려워집니다.
말 그대로 '베푸는 일'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정함은 타인을 향하는 것 같지만 그 시작점과 도착점은 결국 나 자신입니다.
타인에게 다정할 수 있다는 것은 곧 나 자신에게도 다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타인에게 냉소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결국 자기 자신에게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 다정하면 세상도 내게 다정해집니다.
그리고 그 다정함은 내 행복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니 결국 다정함은 나를 위한 것입니다.
어느 날 정말 뜬금없이 초1 딸이 갑자기 제게 물었습니다.
"아빠 꽃이 왜 예뻐 보이는 줄 알아?"
"음.. 그냥.. 이뻐서? 음 잘 모르겠는데?"
"그 사람 마음속에 꽃이 있기 때문이래."
불교에는 일체유심조란 말이 있죠. 결국 모든 건 마음이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속에 꽃이 있다면, 사람들이 꽃으로 보일 것입니다.
내 마음속에 가시가 있다면, 사람들이 가시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내가 손해 보고 이용당하고 있다고 느낀다면 타인이 아니라 내 마음속을 먼저 들여다봐야 할지도 모릅니다. 결국 우리가 마주하는 사람의 얼굴은, 내 마음의 얼굴인 것입니다.
영화 '달콤한 인생' 오프닝에서도 비슷한 대사가 나옵니다.
어느 맑은 봄날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겁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겁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리키는 것은 보지도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뿐이다."
불교는 보시, 즉 베풂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무언가를 바라는 베풂은 보시가 아니라 거래에 가깝습니다.
진정한 베풂은 조건 없는 베풂, 곧 무주상보시입니다.
누군가에게 생일 선물을 한 뒤 나의 생일에도 비슷한 가치의 선물을 기대하는 마음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 가치가 돈일 수도, 정성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대와 다른 선물이 돌아왔을 때 상대를 힐난하거나 원망하게 된다면
그 선물이 처음부터 어디에서 온 것이었는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사실 그 안에는 "난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넌 이렇게 밖에 못 돌려주나?"라는
교환의 논리가 숨어 있습니다. 그건 '선물'보다는 '거래'에 가깝습니다.
진정한 선물은 그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돌려주느냐와는 상관없이
온전히 '주는 것'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마치 엄마가 아이에게 이유 없이 건네는 사랑처럼요.
다정함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의 반응에 나의 다정함의 유무를 결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인상을 쓰든 심지어 욕을 하든 다정할 뿐입니다.
물론 욕을 하는데 다정하면 바보 같아 보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런 극단적인 상황이 아닙니다.
제가 말하는 다정함은 일상의 태도에 가깝습니다.
특별한 상황이 아닌 보통의 시간 속에서 지인 혹은 잠시 마주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씩 친절과 다정함을 나누는 태도를 말하는 것이죠.
이 다정함은 그들을 위한 것이며 동시에 나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인상을 쓰고 날을 세우는 누군가에 휩쓸려 나도 날을 세우는 순간
나의 마음도 그 거친 감정 속에 갇혀버립니다.
반대로 초연하게 다정할 때 내 안의 세계는 오히려 고요하고 단단해집니다.
사실 저도 그렇게 다정한 사람은 아닙니다. 오히려 냉소적이고 회의적인 편에 가깝습니다.
평생 사람을 믿지 않고 쉽게 마음을 주지 않았고 타인을 회피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행복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걸 조금 늦게 알았습니다.
어쩌면 늦게 알았다기보다는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것에 가까운 것 같기도 합니다.
내가 삶을 대하는 방식이, 내 경험이 틀릴 리 없다는 오만함과 착각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고 해서 사람이 쉽게 바뀌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살아온 관성이라는 것이 있으니깐요. 그래도 저는 오늘도 조금씩 시도합니다. 평소보다 딱 한 걸음만 다정해지기 위해서요.
당신의 다정함과 행복을 외부에 맡기지 마세요.
당신이 주인이 되세요.
다정함은 약점이 아닙니다.
강한 사람만이 다정할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다정하고 행복하세요.
다정함의 시작과 끝은 언제나 나입니다.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친절하시길
그리고 그 친절을 먼 미래에 우리에게 잘 전달해 주시길 바랍니다.
허준이 교수 서울대 축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