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팀의 자세를 다시 묻다
오늘 만난 이야기는, 작가의 중학교 체육 시간의 기억에서 출발했다. 작가는 그 경험을 이렇게 회상했다.
장난기 많은 어떤 친구는 철봉에 매달려 장난치다 웃으며 떨어졌고, 또 다른 친구는 이를 악물고 끝까지 웃음을 참으며 버텼는데 그 친구가 오래 매달리기 평가에서 1등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작가는 생각했다.
‘아, 버틴다는 것, 1등이 된다는 것은 저렇게 웃지 않고 끝까지 참아내야 한다는 뜻이구나.’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작가는 깨달았다.
세상은 철봉이 아니며, 웃지 않고는 도저히 오래 매달려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작가는 결심했다.
철봉에 매달린 듯 경직되고 뻣뻣한 자세가 아니라, 남들이 보기에 우스워 보일지라도 즐겁게 버티겠다고.
나 역시 요즘 그런 생각을 자주 한다.
사람 사는 건 결국 다 비슷해서일까, 작가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했다. 그래서 오늘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버티되, 웃으며 버티자.
즐기면서 살아가자.
물론 이런 말을 들으면 쉽게 수긍하기 어려울 지도 모르겠다.
“지금 인생이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웃어요?”
“학교, 직장, 친구, 돈, 건강... 힘든 게 너무 많은데요?”
그렇다. 우리 삶에 벌어지는 많은 일은 내 의도와 무관하게 통제할 수 없는 방식으로 다가온다.
그러니 결국 우리는 버틸 수밖에 없다. 다만, 고통 속에서도 웃을 수 있어야 한다. 왜일까?
그건 지금 일어나는 일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는 “말도 안 돼요. 길 가다 교통사고가 나면 그건 당연히 나쁜 일이잖아요.”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게 너무 당연해 보이기도 하지만, 나는 법륜 스님에게 들은 이야기를 떠올린다.
한 어머니가 스님을 찾아와 말했다.
“우리 아이가 반에서 3등인데, 아무리 노력해도 1등이 안 돼서 너무 속상해요.”
얼마 후 다른 어머니는 “우리 애는 중간쯤인데 10등 안에만 들어도 소원이 없겠어요.”
또 한 명은 “우리 애는 꼴등이에요. 중간만 돼도 감사하겠어요.”
그리고 또 다른 어머니는 “우리 애는 아예 학교를 안 가요. 학교만 가줘도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어떤 어머니는 “우리 애는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갔어요. 3년형인데 1년만 살고 나오게 해달라고 기도해 주세요.”
반년 뒤, 마지막 어머니는 스님을 다시 찾아와 기뻐했다.
“부처님이 소원을 들어주셨어요. 1년 만에 가석방됐어요.”
하지만 6개월 후, 그녀는 다시 스님을 찾아와 말했다.
“그 아이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어요. 부처님이 너무 원망스러워요.”
1년 만의 가석방은 반년 전에는 축복이었지만, 반년 후에는 비극이 되었다.
이처럼 어떤 일이 ‘좋은지 나쁜지’는 지금의 시점에서는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사실 앞에서 겸손해져야 한다.
대부분의 일은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비로소 보인다.
소크라테스도 '무지의 지'를 말하지 않았던가.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 그 인식에서 진짜 앎이 시작된다고.
그런데 우리는 지금 이 순간만으로 너무 쉽게 판단하고 분별한다.
내 기준, 내 상식, 내 감정으로 해석하고 단정 짓는다.
얼마 전 부산에서 고등학생 세 명이 함께 생을 마감하는 일이 있었다.
아이들은 학업과 진학 부담을 유서에 남겼다. 이 사회는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말해왔다.
“웃지 마. 버텨. 철봉에서 떨어지면 안 돼.
지금 떨어지면 낙오자야. 좋은 대학 가야지. 그래야 좋은 직장, 좋은 월급 받을 수 있어.”
그런데 ‘좋은’이란 대체 무엇일까?
우리는 그 ‘좋음’을 정말 알고 있을까?
세상의 대부분은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다.
미래는 말할 것도 없다.
아이들에게 ‘좋은 미래’를 강요했던 우리 사회.
그 ‘좋음’은 결국 사회가 정한 기준일 뿐이지 않은가
우리는 그 기준을 들이밀며 아이들에게 웃음을 빼앗았다.
그건 분명 모두의 책임이다.
이제는 다른 말을 해야 할 때다.
“웃지 마, 즐기지 마, 진지하게 버텨”
이런 말은 사람을 경직되고 뻣뻣해지게 만든다.
그건 더 오래 매달릴 수 없게 만드는 자세다.
“무엇이든지 좋다.”
내가 자주 떠올리는 말이다.
정답을 알 수 없는 세상에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조금 더 가볍게, 조금 더 웃으면서 버티는 것.
단순히 모든 것이 정말 좋다고 믿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좋든 나쁘든, 그 안에서 살아내겠다는 다짐이며
동시에 지금 내가 붙잡고 싶은 자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경직되지 않고, 뻣뻣하지 않게
웃으면서 버텨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