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보르기니보다 부러운 것

그냥 나로서 존재해도 괜찮다는 확신

by 담유연



양자역학과 심리학은 얼핏 보면 전혀 다른 세계처럼 보인다.

하지만 만류귀종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이 두 영역 사이에 묘한 공통점이 있다고 느껴왔다.

우연처럼 보이는 사건들 속에 어떤 숨은 질서가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동시성’이라는 개념을 처음 들은 것도 그런 관심에서였다.


유명한 이야기다. 심리학자 칼 융은 한 환자와 상담을 하던 중, 황금빛 풍뎅이에 대한 꿈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실제로 창문을 통해 풍뎅이와 비슷한 딱정벌레 한 마리가 연구실 안으로 날아들었다. 꿈속 이미지와 현실의 장면이 기묘하게 겹친 것이다.



융은 이러한 현상을 단순한 우연으로 보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 인과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더 큰 차원에서 보면 어떤 의미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를 ‘동시성’이라 불렀고,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깊은 연결로 설명했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볼프강 파울리 역시 이 개념에 깊은 흥미를 보였다.

그는 융의 생각이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양자 도약”,

그리고 하나의 전자가 동시에 두 곳에 존재하는 이중 슬릿 실험과도 닮았다고 했다.



이는 단지 과학적 이론에 그치지 않는다.

동양의 ‘주역’이 말하는 도의 원리, 석가가 말한 연기의 개념과도 연결된다고 느낀다.

모든 것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인연이 되어 흐른다.



어쩌면 나 역시 이런 동시성을 일상 속에서 자주 마주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무 관련 없어 보이는 두 사건이 마치 퍼즐처럼 맞아떨어지는 순간들.

그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지금 이 삶이 어떤 흐름 위에 놓여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진다.


예를 들면 이렇다.

얼마 전에 친구와 함께 오랜만에 풋살을 하러 갔다.

거기서 만난 팀의 회장은 신체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풋살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체격이 매우 크고, 공은 제대로 차지도 못했다.

그 정도면 본인도 불편하겠지만, 팀원들에게도 부담이 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실제로 경기 중에 그 회장이 공을 놓치는 장면에서 몇몇 팀원들은 웃기도 했고, 한숨을 쉬는 모습도 보였다.

그런데 놀라웠던 건 그 사람의 태도였다.

조금도 위축되거나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당당했고, 목소리는 밝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신기했고, 동시에 부러웠다.



나였다면 창피함에 풋살은 안 나왔을 것이다. 회장직은 더욱 안 맡았을 것이고.

생각해보면 나의 실력은 그 회장보다 약간 나은 수준이다.

잘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저 꼴찌에서 한두 걸음 앞선 정도랄까.

그래서 경기 내내 실력이 신경 쓰이고, 팀에 민폐가 되는 건 아닐까 걱정한다.



집으로 돌아갈 때면 ‘왜 이렇게 못하나’, ‘연습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계속 맴돈다.

반대로 경기가 잘 풀린 날에는 기분이 한없이 좋아진다.

그런데 그 회장은 그런 감정의 기복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저 풋살이라는 그 과정을 즐기고 있는 듯 해보였다.



자신에 대한 확고한 태도, 근거 없는 듯 보이는 자신감

나라는 존재 자체로부터 나오는 자신감.

그걸 갖고 있는 사람을 보면 괜시리 부러움이 올라온다.

심지어 그 회장은 본인 사업도 잘되고 있어서 노란색 람보르기니를 타고 다녔다.



차가 부러웠던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차를 봤을 때, 저런 자존감과 자신감이 인생 전체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까?라는 의문이 생겼고 문득 생각났다.

나도 언젠가는 그런 자신감과 자존감을 가졌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다.



아마 학창시절이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자신감이 넘쳤고, 세상도 별로 무섭지 않았다.

친구들 사이에서 골목 대장 소리를 들을 정도로 당당했다.

그래서인지 가끔씩 그 시절의 내가 그립다.

그때마다 ‘다시 그때처럼 살아보자’고 결심해보지만, 그리 쉽게 되는 일은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그런 자신감과 자존감은 조건 없는 사랑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어렸을 때 그런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다.

무언가를 해야 칭찬받았고, 잘해야 인정받았다.

그 자체로는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지금도 근거 없는 자신감, 나 자신을 믿는 힘을 갖기가 참 어렵다.



그런데 오늘 책을 펴니, 눈에 들어온 소제목이 ‘자존감이 약하면 타이틀에 집착한다’ 가 아니겠는가.

책장을 넘길수록 마치 누군가 내 생각을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이 책을 도서관에서 무심코 집어 든 것도, 지금 이 시기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것도, 어쩌면 우연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책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바깥 상황이나 외부 요인에 따라 내가 작아지고 커지기를 반복하는 것은 자존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모든 사람은 아무 이유 없이 그 존재만으로도 이미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나도 머리로는 알고 있던 내용이었지만,

그 순간에는 마치 우주가, 이 세상이 내게 그 말을 다시 확신시켜주는 것 같았다.

‘괜찮다. 너라는 존재만으로 이미 의미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또 하나, 위로가 된 문장이 있었다.

자신만의 자존감을 쌓아가는 과정은 때론 외로울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당연한 말이다.

좋지 않은 평가를 견뎌야 하고,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는 시기를 지나야 하니까.



하지만 작가는 말한다.

“조금 외로워지더라도 자존감을 지키자.

외롭더라도 자신의 개성을 끝까지 지켜낸 사람은

결국 존재 그 자체로 인정받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여정은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이제는 나 스스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야말로 자존감이 시작되는 자리 아닐까.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어떤 모습이든 좋다.

이전 02화후라이가 병아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