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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인석 Apr 27. 2021

바쁜 것은 정말로 다행인가

내면의 갈증을 직시해본다.

제주에 일주일을 다녀왔다. 분주한 시기에 제법 과감한 결정이었다. 올해는 작년보다 훨씬 더 바쁜 1분기를 지내왔기에 휴식은 절실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우리 직원들이 지치지 않았을까 싶어 직원들에게도 제주로 리프레시 휴가를 주었다. 이미 팀빌딩 같은 명목의 워크샵은 필요 없는 사이인 만큼 각자 가고 싶은 숙소를 물어 예약을 잡아주고 비행기 티켓과 함께 전해주었다. 어차피 2인실이니 가장 편한, 좋은 사람과 가라고 권하였고 실제로 그리 하였다. 직원들은 짧은 시간이지만 참 좋아 보였고, 그래서 내가 '위안'이 되었다. 


언젠가부터인지 내가 '행복'까지 아니더라도 '위안'을 주변에서 찾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딸이, 내 아내가, 회사 직원들이 좋아하면 그것이 곧 나의 마음을 데우는 일이라 여겼던 것 같다. 그렇게 되니 점차 누적되어 온 자발적 문제는 '내가 쉴 수 없고 쉬면 안 될 것 같은 압박'이었다. 그것을 나에게 아무도 요구하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느끼게 된 것 같다. 다른 이의 위안이 내가 쉴 수 없는 것과 무슨 상관이냐 묻는다면 생각보다 깊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의 삶과 선택에 제법 큰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니 내가 하기 나름으로 그들에게 위안이 될 수도, 근심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니까.(그 또한 너무 내 멋대로의 판단이었다 싶다.) 아무도 나에게 적토마 같은 인생을 요구한 적이 없는데, 나는 미라클 모닝이 아닌 급발진 모닝을 매일매일 꾸역꾸역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자기 객관화를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아주 부분적이고 기능적인 면에서 그랬던 게 아닐까. 일꾼으로서 내 몫과 그릇을 판별하는 일이야 그럭저럭 해왔던 것 같은데, 마음을 직시하는 것은 참으로 어색하다. 무언가 마음에 차 오른 썸띵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모르는 건 가끔 일곱 살 우리 딸의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과 오차 없이 같다. 나는 그렇게 그냥 흘러가는대로 매일매일 바삐 살았다.


제주에 상당히 긴 시간을 보내면서도 나는 사실 마음이 분주했다. 일은 아침저녁으로 해야 했고,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전화와 문의들도 대응을 해야 했다. 낮에는 딸과 아내에게 좋은 시간을 선물하고 싶었고, 제주에 와서 모처럼의 여유를 즐기는 직원들에게 결코 일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려니 내가 바삐 달리면, 모두가 완벽하게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각자의 삶의 '위안'이 되는 시간이 만들어지니까. 지금에서야 생각인데 얼마나 자기중심적인가. 각자의 행복은 각자의 선택과 사고방식에 따라 결정되는 것인데, 나는 나와 관계가 깊을수록 그것이 나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했으니 심각하게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것은 배려나 책임감 같은 단어로 포장될 수도 있겠지만, 본질은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이었다고 고백하겠다. 휴가의 상징적인 의미로 '제주'를 택한 것 또한 자기중심적인 게 아니었을까.


정작 그렇게 살았으면서도 내 안이 채워져 있지를 못했다. 그렇다 보니 다소 감정적으로 건조한 상태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것을 들여다볼 새 없이 일도 참 끝도 없이 밀려왔다. 매일매일 바쁘게 살아내느라 다른 겨를이 없었다. 묘한 잇몸 통증이 느껴져 엊그제 병원을 갔더니 꽉 들어찬 염증 때문에 선택의 여지없이 발치를 하고 임플란트를 해야 한단다. CT사진을 보니 내가보기에도 한눈에 좌우가 달랐다. 하하 참.. 이렇게 애써 살아내고 얻은 결과가 발치라니. 우스웠고, 내 처지가 영락없이 그러한 것 같아 한심했다. 이야기를 듣던 아내의 눈빛이 애처롭고 안타까웠다. 그런 마음이 들게 만든 것도 결국 나였으므로 미안했다.


요즈음 같은 시기에 바쁜 게 얼마나 다행이냐고 다들 하나같이 말한다. 그럼요- 감사한 일이지요! 항상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라고 얘기하면서도 마음속에는 표정이 없었다. 좋고 싫음도 없는, 표정이 없이 흘러가는 시간들이 제법 길어졌던가 싶다. 물론 일이 너무 싫었고 성과가 나지 않았으면 이렇게까지 하지도 않았겠지만 지금은 약간 방향이 또렷하지 않은 느낌이다. 내가 원하는 게 그냥 일을 덜하고 싶은 것인지, 다른 불안이 있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가장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닐까 싶다. 사실 나는 엄청 게으른 인간이었다. 자본주의가 내 몫을, 월급값을 요구해오지 않았던 시절에 나는 수업이고 뭐고 도저히 못 일어나겠으면 자버리고, 반쯤은 작가마냥 전국을 떠돌면서 사진을 찍으며 이게 천성인가 보다 싶던 시간들도 있었다. 얼핏 불가능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기필코 잠시간의 공백을 만들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그 시간의 결과가 아무것도 없어도 좋으니 건조한 마음통을 다시 재정비하기 위해서라도 시간을 만들고야 말겠다.


바쁜 시기에 무려 일주일이나, 그 날씨 좋은 제주에 다녀와서 내린 결론이 반드시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니. 너무 우습다. 이렇게나 역설적인 삶을 꾸역꾸역도 살았다. 비워야 채울 수 있음은 아주 물리적인 팩트다. 밖에서 위안을 찾지 않고, 내 안에서 단단하게 채워 위안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다. 바쁜 것은 결코 다행이 아니다. 음악도 없이 조용한 새벽에 출근하는 급발진 모닝 속 차 안에서 홀로 다짐하고 쏟아내듯 글을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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