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늦었지만 가을 느낌나는 시
내 몸에서 피어난 것들이
하나 둘 져가는 이 밤에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핏빛 거리를 걷는다
여름이 끝난지 얼마나 됐다고
바람이 날카롭세 얼굴에 생채기를 낸다
밤색 코트를 입은 그 소녀는 벤치에 앉아 책 읽던 것을 멈추고
울긋불긋한 길을 한 줌 주워 담아
책 사이에 꽂는다
그 사이 다가온 한 소년은
청설모들의 금고에 있던 소중한 보물을
한아름 가져와 소녀에게 쏟아붓고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입은 크게, 눈은 작게 소리낸다
크게 벌린 입 안은
마치 지금의 하늘이 들어가 있는 양 밝다
여름이 끝난 이 핏빛 거리의 밤은
참 아름답고 시끄러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