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손님2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건 당연한 거예요.

by 세아

3년 전이었다. 여름방학이 끝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쯤 엄청난 우울감이 밀려왔다. 갑자기 찾아온 우울함은 나를 집어삼켰고, 그동안은 공부든 뭐든 손에 잡히지 않았다. 친구관계도 마찬가지였고 그로 인해 나는 자발적 아싸가 되어갔다. 갑자기 끝없는 우울감에 휩싸일 때면 문제집을 한가득 들고 방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부모님은 내가 공부를 하는 줄 알고 좋아하셨지만 그때 나는 공부를 하고 있지 않았다.

창문을 열고 그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내뱉었다를 반복했다. 특히 밤의 풍경을 보면 마음이 더 편안해졌다. 조금 시끄럽지만 전체적으로 차분하게 가라앉은 느낌. 잠깐이라도 내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잊을 수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걸로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 싶으면 그때서야 공부를 시작했다. 분명 나는 공부를 했지만 기계적으로 문제를 풀 뿐 그 내용은 하나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 전과는 다르게 몸이 축 쳐져 있었고, 주변에 우울한 기운을 풍겼다.

“정아윤, 너 요즘 왜 그래?”

“속상한 일 있었어?”

처음에는 친구들도 나에게 다가와 주었다. 하지만 나는 누가 다가오는 족족 그 사람에게 너무 심하게 의지했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눈에 보이는 족족 끌어당기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나에게 질린 친구들은 하나둘씩 나를 피했다. 그리고 내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다. 전에 하던 취미들은 다 재미가 없어진지 오래였고 나는 점점 집에만 틀어박혀 지냈다. 특히 겨울방학에는 그 정도가 더 심해서 한 달에 한 번도 외출은 안 한 적도 있었다.


그때 나한테 찾아온 것이 공부였다. 내가 공부를 한다고 하면 혼자 있어도, 내 방에만 틀어박혀 있어도 아무도 나를 비난하지 않았다. 결국 공부가 나에게는 도피처였던 샘이다. 주변과의 연락은 모두 끊어졌고, 나는 온전히 혼자가 되었다. 온전히 혼자가 된 이곳에서 문제를 풀고, 또 풀었다. 어느새 2~3년 앞선 과정까지 진도가 나가 있었고 부모님은 그런 나를 이곳저곳에 자랑했다. 그렇지만 정작 친구들은 내 이름조차 몰랐다.

우울감은 거북이처럼 아주 천천히 나에게서 물러갔다. 그때가 되자 과거의 내가 무지 후회되고 싫어졌다. 나에게 다가오는 친구들을 다 밀어낸 내가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였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공부 속에 숨어버렸다. 새로 입학한 중학교에서 처음 치른 시험에서는 당연하게도 전교 1등을 했다. 그렇게 계속 공부만 하며 지내니 친구가 없었다.

몇 달이 더 지나자 어느새 나는 그런 과거의 나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자라났고 처음으로 친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1년을 넘게 계속 공부만 해왔기 때문에 친구를 어떻게 만드는지 몰랐다. 우울한 분위기를 풍기는 전교 1등에게 먼저 다가오는 아이도 물론 없었고 말이다. 크고 작은 노력들을 나름대로 해 보았지만 결국 나는 다시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아주 기본적으로 외모를 가꾸는 것조차 관심이 없어서 머리는 항상 엉켜 있었고, 옷에 뭐가 묻어도 그냥 입고 다녔다. 그러다가 어느 날, 좋아하는 아이가 생겼다. 같은 동아리에 있던 다른 반 남자아이였다. 그때부터 나는 거울을 보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미용실에 혼자 가서 엉켜있던 머리를 깔끔하게 잘라버렸다. 매일매일 꼼꼼히 세수를 하고 학교에 갔다 오면 옷도 바로 빨았다. 화장은 지금껏 해본 적도 없었고 알려줄 친구도 없었기에 이게 나의 최선의 노력이었다.

그렇지만 전화번호는커녕 이름조차 직접 물을 수 없었다. 아직도 내 존재감은 거의 0에 가까웠고, 심지어 선생님들까지 내 이름을 헷갈려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나를 주변에 알리려 가끔씩 친구들에게 말을 걸어 보고, 간식을 나누어주어도 봤다. 하지만 이미 이번 연도는 거의 끝에 다다랐고 4~5명 정도가 내 이름 정도만 기억해줄 뿐이었다. 어느새 그 동아리는 끝이 났고 그 아이와의 접점은 더 이상 없었다. 그렇게 내 첫사랑은 허무하게 지나갔다.


겨울 방학이 되자 정말로 할 게 없어져 버렸다. 학교를 다닐 때는 그래도 6시간쯤을 학교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보냈는데 이제는 집에만 있어야 해서 할 일이 없어졌다. 공부는 더 이상 하기 싫었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네는 건 너무 지루했고, 계속 침대에 누워있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결국 내가 생각한 방법은 현실 세계에서 벗어나 상상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머릿속에서는 틈만 나면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그곳에서 난 뭐든지 될 수 있었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외로웠다. 결국 그 상상에서 벗어나면 내 곁에 남는 건 없었다. 겨울방학이 끝나기 1주정도 남았을 때부터 학교에서 친구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거울을 보며 말하는 연습을 했다. 자연스럽게 웃는 연습이나 친구한테 어떻게 다가가면 될지 등도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수백 번씩 돌려봤다. 나를 꾸미지는 않더라도 기본적인 청결쯤은 지켰다.

3월 4일, 드디어 새 학년이 시작되는 날이 왔다. 주머니에는 친구와 친해지기 위한 간식 몇 가지와 얼굴 가득 미소를 장착하고 반으로 들어갔다. 반에서는 이미 아이들이 끼리끼리 모여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에게로 눈길을 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나 빼고 모든 아이들이 서로 모여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가 먼저 말을 걸어 봐도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피했다.


그러던 나에게 처음 다가와 준 게 서안이었다.


“힘들었겠네요. 그래서 그걸 이겨내기 위해서 학교 시험시간에 무작정 학교를 뛰쳐나온 거예요?”

“네.. 아직도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좋아하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어요.”

내가 담담하게 말했다. 곰돌이는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짓더니 싱긋 미소 지으며 입을 떼었다.

“그러면 저희 가게에서 일해 보는 건 어떨까요?”

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내가 상상했던 일들이 진짜로 현실에서 일어나는 걸까?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네! 좋아요.”

나는 덥석 곰돌이, 아니 사장님의 손을 잡았다.

“그러면 먼저 감정을 이야기 속에서 골라내는 것부터 해 볼까요?”

사장님이 나에게 큰 유리병을 건넸다. 나는 눈을 감고 내 이야기 속에 들어있는 감정들을 상상했다.

‘끝없는 우울과 자괴감,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사랑, 처음으로 다가와 준 서안이를 향한 고마움.’

그러자 내가 생각한 감정들이 형상을 만들어 유리병 안으로 들어갔다. 감정의 색들은 정말 다양했다.

“끝없는 우울과 자괴감은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더 큰 빛을 보기 위한 잠깐의 어두움일 뿐이에요. 어쩌면 희망으로 바뀔 수도 있죠.”

사장님이 내가 들고 있던 유리병을 조심히 가져가서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러자 그 안에 들어있던 감정들이 빛을 내며 더 아름다운 빛깔로 빛났다.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건 당연한 거예요. 우리는 모두 인생을 처음 살아보는 거잖아요? 원래 실패도 해보고 좌절도 해보면서 길을 찾아나가는 거예요. 믿어주는 친구도 있고, 이제 안정적인 직장도 생겼으니 시험시간 중간에 학교를 뛰쳐나가는 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게 어때요?”

“일단 오늘은 다시 학교로 돌아가 봐야 할 것 같네요. 정아윤씨 출근은 내일부터 하면 돼요. 학교 끝나고 천천히 여기로 와요.”


카페의 문이 다시 열리더니 경쾌한 풍경소리가 들렸다. 저 멀리서 사장님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학교 복도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이 모든 게 꿈 같았다. 어쩌면 진짜로 꿈일 지도 몰랐다. 다시 학교를 나가려는 발걸음이 잠시 멈칫했다. 입안에는 아직도 달달한 쿠키향이 남아 있었다.


꼭 공부에 목숨을 걸 필요는 없지만 어쩌면 내 진로에 공부가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를 이제 목적이 아닌 하나의 수단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것을 찾으면 공부를 포기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다. 일단은 내일 출근부터 하고 내가 좋아하는 걸 천천히 찾아 봐야겠다. 나는 다시 교실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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