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는 방법
매일 아침마다 거울 앞에 가서 선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거울 속에 있는 소년은 퉁퉁 부은 눈에 떡 진 머리를 하고 있다. 코는 납작하고, 안 그래도 작은 눈은 부어서 거의 묻혔다. 여드름투성이 얼굴에 붉은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입술은 정말 보기 싫다. 고1인데도 키는 아직 164. 그렇다고 공부나 운동을 유별나게 잘하는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나는 잘난 거 하나 없는 못난 고등학생이다.
화장실로 가서 얼른 머리를 감고 단정하게 빗었다. 얼굴을 박박 문지르며 찬물로 세수를 하자 여드름들이 조금 가라앉은 듯해 보였고 눈에 붓기도 좀 빠진 듯해 보였다. 어제 다림질해 놓은 교복을 입고 가방을 멘 뒤 학교로 향했다. 학교 운동장에서는 일찍부터 친구들이 축구를 하고 있다. 다른 애들의 입가에는 밝은 웃음이 걸려 있는데 내 얼굴은 밤하늘보다도 어둡다.
사실 어제 하루에게 고백했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 되면서부터 좋아하던 여자아이였다. 사실 친해진지는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중학교 3학년 때 우연히 같은 학원에 들어가면서부터 친해졌다. 가끔씩 문자를 나눌 정도로 친하긴 했는데 어제의 고백으로 인해서 잠깐의 문자마저 할 수 없게 되었다. 마침 어제가 화이트데이여서 사탕을 건네며 고백했지만, 공부에 전념해야 한다는 핑계로 차였다.
공부해야 한다는 말로 포장하고 좋은 친구가 되자는 말로 다독였지만 하루는 그냥 내가 싫은 거다. 그 이유는 뻔하다. 나는 잘난 구석이 없는 반면에 하루는 그냥 존재 자체로 잘났다는 게 느껴진다. 하루는 친구도 많고 성격도 좋다. 웃을 때면 반달처럼 접히는 그 예쁜 눈이 나는 참 좋다. 사실 하루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반에 몇 명 더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나를 찰 이유는 충분하고도 넘쳤다.
나는 언제쯤이면 그런 ‘잘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이 된다면 하루도 내 고백을 받아주지 않을까? 그렇지만 나는 아무리 봐도 잘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하루를 좋아하는 아이들 중 대부분은 꽤 잘난 아이였다. 키가 180 정도 되어 보이는 애도 있고, 얼굴이 잘생겨서 여자아이들 대부분이 짝사랑하는 애도 있다. 공부를 잘해서 각종 대회에서 상을 탔던 애도 있다. 그런 아이들에 비해서 나는 참 초라하다.
문을 열고 교실로 들어가자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로 집중되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기분 나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더니 벌써 고백하고 차인 게 소문이 퍼진 모양이었다. 뒤에서 따끔거리는 시선도 느껴졌다. 아마 하루를 좋아하는 아이들 중 하나일 것이었다. 뒤이어 하루가 교실로 들어오자 여자아이들이 우르르 하루에게 몰려들며 나를 힐끗거렸다.
아,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하루의 곁에는 저렇게 많은 아이들이 몰려들었지만 내 곁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다행이기도 했다. 그냥 고개 숙이고 있는 듯 없는 듯이 지내면 나는 금방 잊힐 테니 말이다. 그래서 딱 그렇게 지냈다. 있는 듯, 없는 듯.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는 교실 한구석이나 운동장 한구석에서 조용히 있었고, 수업 시간에는 책상에 고개를 파묻고 선생님과 눈을 안 마주치기 위해 노력했다.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내가 비참하게 느껴졌다.
학교가 끝나자, 내 착각이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아이들이 나를 힐끔거리는 것 같았다. 얼른 운동화로 갈아 신고 하교하는데 뒤에서 킥킥대는 소리가 들렸다.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왠지 모두가 내 얘기를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갑자기 숨이 막혀서 뛰기 시작했다. 아이들과는 점점 멀어져 갔고 멀어질수록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한참을 뛰고 오늘 하루 종일 신경이 곤두서 있었더니 엄청난 허기가 몰려왔다. 사실 점심도 주변의 시선들이 신경 쓰여서 제대로 먹지 못하고 나온 터여서 더 배가 고팠다. 그런데 갑자기 고소한 냄새가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평소라면 안 그랬을 터지만 뭔가에 이끌리듯 그 냄새를 천천히 따라갔다. 하지만 가면 갈수록 모르는 풍경 투성이었다. 어느새 나는 한 아파트 단지 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 냄새는 한 아파트 지하실에서 나는 거였다. 이러면 안 되는 건 알지만 나도 모르게 지하실 문을 여는 손잡이 쪽으로 손이 갔다. 끼이익,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는 순간 이상한 일이 눈앞에 펼쳐졌다. 갑자기 지하실 안이 엄청 넓어지더니 저 멀리에 카페가 보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드디어 미친 건가 싶어서 눈을 꼭 감았다 떠 보았지만 보이는 모습은 그대로였다. 심지어 저 멀리서 곰 인형처럼 보이는 게 나한테 이리 오라고 손짓했다.
‘설마 납치는 아니겠지? 함정같이 이곳에 가둬놓고 못 나가게 한다거나.. 근데 나를 납치해 봤자 뭐 하겠어. 잘난 거 하나 없는데.’
잠깐 내가 납치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오늘따라 더 고픈 배는 얼른 저쪽으로 가라고 나를 재촉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맡았던 그 고소한 냄새도 저곳에서 나는 것 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곳으로 다가갔다. 간판에는 ‘곰돌이 카페’라고 적혀 있었다. 참 컨셉을 잘 잡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곰돌이 탈을 쓰고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이라니. 사람들의 눈길을 끌 만하지만 왜 이곳에 건물이 있는 걸까?
카페의 문을 열자 딸랑, 경쾌한 풍경 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세요!”
나보다 한두 살 정도 어려 보이는 여자아이가 앞치마를 매고 반갑게 인사했다. 나는 고개를 살짝 까딱하는 걸로 인사를 대신하고 근처 테이블에 가서 앉았다. 카페 안으로 들어오니 아까 맡았던 고소한 냄새뿐만 아니라 달달한 냄새와 짠 냄새도 같이 풍겼다.
“여기 메뉴판은 없나요?”
내가 큰 소리로 말했다. 이 카페 안에 나 말고는 손님이 없는 모양이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아까 그 여자아이가 나에게 말하고는 주방 안으로 쏙 들어갔다. 주방 안에서 조곤조곤 말하는 말소리가 들렸다. 카페 내부의 용기들이나 의자 상태 등을 봐서는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했다. 다른 카페들과는 달리 테이블도 그리 많지 않았다. 한 3~4개 정도가 전부였다. 대체 이 카페는 뭐 하는 곳일까 하고 생각하다가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음료 나왔습니다.”
테이블에 미숫가루 한 잔이 떡하니 놓여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아까 카페에 들어오기 전에 보았던 곰돌이가 웃으며 서 있었다. 신종 사기단인가? 주문도 안 했는데 나에게 음료를 내오는 것이 아무래도 수상했다.
“전 아직 주문을 안 했는데요?”
내가 물었다.
“저희 카페는 메뉴가 없답니다. 그때그때 손님께 필요한 메뉴를 내오죠. 힘든 하루를 보냈을 때는 자기 마음이 든든해져야 자신에게 의지할 수 있는 법이니까요. 미숫가루가 이래 보여도 꽤 든든하답니다. 저도 가끔씩 배고플 때 타 먹죠.”
미숫가루를 조금 마셔보았다. 입안에 텁텁함과 고소함, 달콤함이 동시에 퍼졌다. 진짜로 곰돌이가 말한 대로 든든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 기분이 좀 강력했다. 그냥 미숫가루가 아닌 것 같았다. 갑자기 마음에 따듯한 것이 차오르고, 주변이 아름답게 보였다. 더붙어 기분까지도 좋아졌다. 아까의 슬프고 아픈 기억들은 나의 따듯한 기분에 밀려서 점점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갔다.
“이.. 이게 대체 뭐예요?”
“이건 사랑이에요.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요. 자기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비로소 남도 사랑할 수 있어요. 사실 저는 그걸 좀 늦게 깨달았어요. 그래서 그걸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이 카페를 차리게 되었죠.”
곰돌이가 약간 씁쓸한 표정을 짓더니 말을 이었다.
“우선 나 자신에게 진심을 쏟는 법을 알아야 상대에게도 진심을 쏟을 수 있어요. 그리고 그래야 상대도 나를 사랑해 줄 수 있어요. 슬프고 힘든 날이 있어도 언제나 괜찮다고 말하며 위로해 주고, 나에게 단점이 있어도 그 단점까지도 인정하며 나를 보듬어주는 게 날 사랑하는 방법이에요.”
내가 나를 사랑한 적이 있었던가? 언제나 나 자신에게 불평만 늘어놓고 일이 틀어지면 다 내 잘못으로 돌렸던 것 같다. 실수하는 일이 생기면 ‘다음에는 더 잘해야지’가 아니라 ‘난 또 실수네.. 역시 난 안되나 봐’라는 생각을 더 자주 하곤 했다. 생각해 보니 오늘의 수군거림도 어쩌면 내 마음속에서 만들어낸 게 아닐까 싶었다. 아이들이 각자 떠들며 웃는 소리를 내 마음대로 나를 비웃는 소리로 생각해 버린 것일 수도 있다. 하루에게 차인 것도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 그저 우리의 마음이 맞지 않았을 뿐이었다.
“감사합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 곰돌이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진심으로 고마웠다. 이번 한 번으로 온전히 나를 사랑하게 될 순 없겠지만 나를 바꿀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 같았다. 그걸 일깨워준 곰돌이에게 너무나 감사했다.
“저는 해야 될 일을 한 것뿐일걸요.”
곰돌이는 사람 좋은 미소 아니, 곰 좋은 미소라고 해야 할까? 푸근한 미소를 나에게 지었다. 내가 계산하려 카운터로 가려 하자 옆에 서 있던 여자아이가 큰 유리병을 가지고 오더니 나를 다시 테이블에 앉혔다.
“계산해야 하지 않나요?”
“저희 카페는 돈을 받지 않아요. 대신 이야기를 받죠. 정확히 말하자면 그 이야기 안에 숨어있는 감정을 받아요. 어려울 거 없어요. 그냥 이야기 하나만 들려주시면 돼요.”
여자아이가 병을 테이블에 조심히 올려놓으며 말했다. 병 안에는 형형색색의 빛을 내는 물체들이 있었다.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신비한 카페니까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것들을 잠시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어떤 이야기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가 그 고민을 굳이 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내가 제일 잘 아는 이야기를 하면 될 것 같았다.
“그날은 반배정이 발표되는 날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