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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아쉬움만 남은 이탈리아 장거리 여행

by Bora

이번에 이탈리아 살기를 하는 동안 장거리 여행은 최소한으로 줄이자고 생각했었다.


숙박비를 이중으로 지출하는 것도 아깝고, 사는 곳 주변 지역만 둘러봐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탈리아 국내 여행은 딱 세 번만, 1박 2일씩 다녀오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나의 판단은 틀렸다.


첫 번째 여행은 피렌체를 경유하여 시에나, 루카, 피사, 세 도시 구경하기.

두 번째는 다시 피렌체로 가서 신년 세일을 하는 아웃렛에 들른 후 서해안의 친퀘테레 다섯 마을 방문.

세 번째는 나폴리를 거쳐 폼페이, 아말피 해안, 포지타노 마을, 소렌토 둘러보기.


나는 여행을 가게 되면 1박만 하고 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왔소, 갔소인 셈이라 최소 이틀, 적어도 사흘은 한 곳에 머무르는 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피우지 마을의 숙소에 이미 장기 숙박비를 지불한 상태다. 집 말고 다른 곳에 가서 자면 이중으로 숙박비를 내는 꼴이 된다. 그게 아까워 1박씩만 하고 돌아오기로 한 건데 결과적으로는 근시안적이고 미련한 판단이었다.


소탐대실이라고나 할까, 오가는 길에서 시간을 다 버리고 교통비는 그대로 두 배로 든 셈이라 숙박비 절약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겨울철은 이탈리아 여행 비수기이므로 다른 계절에 비해 숙소 구하기도 쉽고, 숙박비도 상대적으로 저렴했으니 어쨌든 적어도 2박씩은 머물러야 했다.


처음 방문지였던 시에나와 루카, 피사는 그래도 나았다.

첫날 도착한 시에나는 부슬비 속에서도 여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한때 피렌체를 제치고 토스카나의 강국으로 부상했던 시에나는 피렌체와의 경쟁에서 밀리는 바람에 오히려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산을 깎아 만든 도시인 시에나는 큰길과 골목이 교차하는 곳에서 만나는 가파른 경사로가 마을에 입체감을 부여하고, 그런 입체감이 처음 온 여행객에게 긴장감을 준다.


시에나 구시가의 중심지, 피아차 캄포는 유럽에서 본 많은 광장 중 가장 독특했다. 드넓은 광장은 평면이 아니고 아래를 향해 흘러내리듯 경사를 이룬다.


광장 한가운데 소실점처럼 자리한 커다란 물구멍을 향해 그 넓은 광장 전체에 벽돌 바닥이 매끄럽게 깔려 있다. 큰 비가 와서 광장의 모든 물이 물구멍으로 흘러드는 모습은 얼마나 장관일까. 촉촉이 광장을 적시는 비를 맞으며 상상에 잠겨봤다.



다음 날은 두 개의 도시를 돌기로 했다. 피렌체에서 기차로 루카(Lucca)에 갔다가 피사를 거쳐 돌아오는 코스다. 피사만 보기에는 시간이 남을 것 같아 루카라는 낯선 도시를 추가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루카가 더 좋았다.


토스카나의 도시들을 다녀보니 도시의 색깔은 각자 개성이 확연히 드러나는 반면에 성당의 모습에는 공통점이 있다. 토스카나 성당들은 하얀 대리석에 줄무늬를 넣어 포인트를 주면서 토스카나만의 차별화된 디자인을 보여주는 것 같다.


성벽 도시 루카는 고대 로마에서 중세까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다.


보존 상태가 뛰어난 역사 지구는 대성당뿐만 아니라 시계탑과 운치 있고 활기찬 거리까지 모든 걸 갖춘 도시이다. 역사 지구 한편에는 꼭대기에 커다란 나무가 자라는 독특한 탑이 하나 있다. 14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귀니지 타워에 오르면 루카 역사 지구 전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루카 공국의 일부였다가 중세에는 이탈리아 4대 해양공화국의 하나로 바다를 주름잡게 된 피사는 그 유명한 사탑 하나만으로도 모든 걸 압도한다.

현재 보수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사탑 옆 피사 대성당 벽면의 하얀 대리석이 빛나던 피사의 과거를 말해주는 듯했다.


피사의 사탑에서는 기울어진 탑을 배경으로 열심히 기념사진을 찍는 (아니, 사진을 만드는) 관광객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제일 흔한 건 기울어진 탑을 밀어내는 포즈, 더해서 손바닥 위에 탑을 올리거나, 아이스크림 콘 위에 탑 올리기 등 저마다 정성을 다해 자세를 잡고 인생 사진을 건지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나는 커피잔 위에 탑을 얹어 봤다.


이렇게 첫 여행 코스는 비교적 무난했다.

그러나 다시 피렌체를 거쳐 두 번째로 갔던 서해안 여행은 1박으로만 가기엔 턱없이 모자란 코스였다.


서쪽 바닷가에 자리 잡은 친퀘테레, '다섯 마을'이라는 뜻의 이 마을들은 이탈리아 북부 제노바에 오히려 가깝고 피렌체에서는 꽤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다. 친퀘테레에 방문하려면 피렌체에서 열차에 탑승, 피사에서 다른 기차로 환승하면서 거의 세 시간가량을 달린 다음, 서해안의 항구이자 친퀘테레 입구의 전초 도시인 라 스페치아에 먼저 도착해야 한다.


우리는 라 스페치아에서 하루를 자고 다음날 오전에 친퀘테레의 다섯 마을 중 두 세 곳만 들르기로 했다. 마을과 마을을 연결해 주는 기차를 타고 이동하며 구경한 후 피사를 거쳐 피렌체로 나오고, 계속하여 그날 저녁 로마에 도착, 마지막 버스를 타고 피우지까지 돌아오려면 친퀘테레 다섯 마을을 모두 돌아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마을 사이의 거리가 꽤 가깝기 때문에 열차를 타면 5분 만에 옆 마을에 도착하긴 한다. 하지만 열차 운행 시각이 한 시간 간격이라서 베르나차 마을과 마나롤라 마을 밖에 볼 시간이 없었다.


깎아지른 절벽과 바위 투성이의 가파른 지형에 공간을 만들어 집을 짓고 마을을 형성한 이곳의 풍광을 보면 인간의 능력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베르나차 마을의 좁은 계단으로 이어지는 미로 같은 길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다닐 때까지는 그저 즐거웠다. 계단식 밭과 알록달록 색깔로 붙어있는 집들도 정겨웠다.


악몽은 마나롤라에서 시작됐다.


마나롤라의 아름다운 전망을 보고 나서 우리는 욕심을 내어 마을 하나를 더 보기로 하고 다음 마을인 리오마조레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전에 친퀘테레를 조사하다 두 마을 사이에 900미터 거리의 아름다운 해안 산책로인 비아 델 라모레(사랑의 길이란 뜻)가 지난 7월에 개통됐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그러나 엄청난 예산을 들여 개통한 이 바닷가 길은 불과 3개월 만에 산사태로 다시 끊어졌고 산을 넘는 옛 길만 통행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옛날 길로 가지 뭐, 까짓 900미터쯤이야.'


우리는 라스페치아에서 피사로 나가는 열차 출발 시각을 한 시간 반 남기고 마나롤라 마을에서 리오마조레 마을을 향해 출발했다. 피렌체까지 돌아가는 기차 시간을 계산하면 12시 반까지는 리오마조레 마을 역에 도착해야 했다.


구글맵에서는 역까지 걸어서 38분 걸린다고 했다. 그 정도면 리오마조레까지 가서 그 마을도 잠깐 구경하고 스페치아행 기차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글맵은 거리만 계산할 뿐 오르막은 생각하지 않았다. 38분이 아니라 1시간 38분에도 무리일 정도로 험한 산을 넘는 경로였다.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비를 맞으며 가는 길은 끝없는 오르막의 연속이었다. 처음에는 마나롤라 마을 아래에서 위쪽 끝까지 계단을 밟으며 올라갔다. 끝없는 계단을 올라 마을 꼭대기쯤 갔을 때 이미 20분이 지났다. 거기서부터는 산길로 넘어가게 된다. 다시 계속되는 급경사의 오르막이 험난한 산 위로 끝없이 이어진다. 북한산의 깔딱 고개는 여기에 비하면 새발의 피, 이제 다 올라왔나 싶으면 한 구비 돌아 다시 가파른 돌계단 길이 나타난다.


결국 비를 맞아 온몸이 흠뻑 젖은 채 한 시간을 계속 올라가다 포기하고 오던 길로 되짚어 내려왔다.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며 간신히 기차역에 도착하고 나니 온몸이 비에 젖어 물에 빠진 생쥐 꼴에 기운이 다 빠져버렸다. 나는 내 한 몸만으로도 힘들었는데 J는 배낭에 카메라 가방 두 개까지 메고 그 힘든 길을 다녀왔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기차를 놓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 생각하며 녹초가 되어 로마로 돌아왔다.


친퀘테레에서 집까지 돌아오는데만 총 8시간 정도가 걸렸다. 그걸 하루에 다 보려고 했으니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다.


1박 2일로 여행 일정을 잡았다가 길에서 시간을 다 버린 건 나폴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첫날은 그래도 나폴리 경유 폼페이만 보기로 해서 괜찮았다.


나는 20년 전에 폼페이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의 기억과 지금의 폼페이는 많이 달랐다. 그 당시에는 유적보다는 돌길 사이의 집들과 집안에 놓여있던, 화석으로 굳어버린 폼페이 시민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지속적인 발굴 조사로 다양한 주택의 원형이 복원되면서 2천 년 전 고대 로마 문명의 흔적이 살아 숨 쉬는 집들을 찾아보는 유적 탐방으로 콘셉트가 바뀌었다.


폼페이 마을 집들의 벽화나 모자이크 타일들이 어찌나 생생하고 아름다운지 유명한 복원 주택들을 찾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유적지 폐장 시간까지 정신없이 다녔다.


아폴로 신전을 지나 포럼의 대리석 기둥 앞에서 멀리 구름에 덮인 베수비오 화산을 바라보며 이천 년 전 '폼페이 최후의 날'을 상상하다가 뒤늦게 '그런데 인간 화석은 어디 있지?'하고 알아보니 지금은 두 군데만 모아서 따로 전시하고 있었다.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경기장까지 갖추었던 엄청난 면적의 폼페이 유적을 반나절만에 돌아보려면 상당히 기민하게 움직여야 한다. 네 시간 동안 바지런히 울퉁불퉁한 돌길을 걸었더니 나중에는 다리도 천근이다. 그나마 겨울이라 선선해서 다닐 수 있었지 여름에 그런 방식으로 다니는 건 어려울 것 같다. 남이탈리아는 역시 겨울이 최고다.


여행 둘째 날은 나폴리 - 아말피 - 포지타노 - 소렌토 - 나폴리 - 로마 - 피우지 코스다.

보기만 해도 숨 막히는 일정. 이럴 때는 시간표를 꼼꼼히 챙겨뒀어야 했는데 내가 방심했다. 처음 목적지인 아말피에서 여유를 부리다 그 뒤의 일정이 모두 밀린 것이다.


그나마 아말피는 느긋하게 본 것 같다. 레몬의 고장답게 조금이라도 공간이 있으면 급경사 계단밭에 레몬 나무 과수원을 만들었다. 귀여운 성문을 지나 성앤드류 분수에서 이어지는 메인스트리트에는 예쁜 가게들이 많아 발길을 멈추게 한다. 짐 걱정만 없다면 사고 싶은 물건들이 무척이나 많은 마을이다.


성안드레아 대성당의 규모도 대단했다. 10세기에 지중해의 해양 강국이었던 아말피 공국의 위용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아말피로 이어지는 깎아지른 해안도로는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스펙터클 했다. 친퀘테레도 해안선 모습은 비슷하지만 거기는 터널을 뚫고 기차로 달리니 바다가 언뜻언뜻 보일 뿐이었다. 그런데 아말피 해안도로를 오가는 버스는 계속 바다를 옆에 끼고 달린다.


절벽 위에 위태롭게 만들어진 해안도로는 너비가 아주 좁아서 우리가 탄 버스가 작은 승용차만 만나도 교행이 힘들 정도였고, 당최 속도를 낼 수가 없다. 버스는 안전을 위해 커브길을 돌 때마다 빠앙빵 클랙션을 울려댔다. 클랙션 소리는 아말피에서 포지타노 마을을 거쳐 내륙으로 들어서는 지점까지 쉴 새 없이 울려댔다.


포지타노 마을을 지나던 중 마을의 예쁜 풍경에 반해서 잠시 내려 시간을 좀 보내고 천천히 소렌토로 들어가기로 욕심을 부렸는데 그 때문에 그만 시간이 꼬여버렸다. 미리 체크를 하지 않지 않은 채 내리고나서야 소렌토에서 나폴리로 돌아가는 열차 시간표를 확인해 봤더니 로마행 고속철을 갈아타는 여유 시간이 불과 4분뿐이다. 이후 일정을 다 포기하고 바로 뒤에 오는 버스를 기다리느라 절벽 길 위에서 아래 해안으로 내려가보지도 못한 채 그저 도로를 따라 조금 걷다가 돌아와야 했다.


소렌토 역에서 기차에 올라 그때부터 걱정이 시작됐다. 나폴리 역에서 로마행 고속철을 놓치면 열차표를 새로 사야 할 뿐만 아니라 이후 일정이 전부 꼬이게 된다. 우리가 나폴리 가리발디역에 도착하는 시각은 5시 16분, 바로 앞에 위치한 나폴리 중앙역의 로마행 고속철 출발 시각은 5시 20분이다. 4분 안에 전력질주를 하여 플랫폼 번호를 확인한 후 올라타야 한다. 서울역이라면 4분 안에 지하철에서 내려 KTX를 탈 수 있을까?


일단 시도는 해봐야지. J가 나폴리행 기차의 맨 앞으로 가자고 한다. 거기가 플랫폼에 가장 가까울 거라며. 결론적으로는 그 덕에 고속철을 놓치지 않았다. 승무원들이 열차 출발 준비를 마치고 모두 올라탈 때 헉헉대며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세이프!


한참을 빈자리에 앉아 숨을 고른 후 둘이 하이파이브를 했다. 휴우.


결국은 큰 문제없이 장거리 여행은 마무리됐지만 시간적으로도, 금전적으로도 마이너스였고, 무엇보다 다시 가기 어려운 곳에서 여유롭게 즐기지 못한 게 가장 아쉬웠다.

"여기를 1박 2일로 오다니, 이건 아니지."를 계속 중얼거렸던 J에게 대꾸는 안 했지만 맞는 소리다. 통렬하게 자아비판을 한다.

다시는 이런 미련한 여행은 하지 않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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