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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북유럽에서 오로라를 만나는 법

by Bora

우리가 트롬소를 떠난 바로 그날 밤, 엄청나게 강렬한 오로라가 고위도 지방의 하늘을 뒤덮었다. 북위 42도의 시카고에서도 관측될 만큼 강력한 태양 폭풍이었다.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전역이 오로라의 빛으로 물들었다고 한다. 위도가 낮아 평소에는 오로라를 보기 힘든 오슬로, 스톡홀름, 헬싱키 하늘에도 오로라가 떴고, 알타와 로바니에미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붉은 오로라가 화려하게 춤췄다고 한다.

오랫동안 오로라를 좇아다녀 보니, 오로라만큼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도 없다.


핀란드의 하얀 숲길을 걸으며 문득 물었다.

“만약 거대한 태양풍이 터져 급히 오로라를 보러 간다면 어디로 가야 할까? 트롬소?”

“트롬소는 아니야. 날씨가 너무 불안정해. 오슬로를 거쳐 알타로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알타는 노르웨이 북쪽 해안에 있지만 피오르 깊숙이 들어와 있어 멕시코 만류의 영향을 덜 받는다. 가까이에 건조한 고원지대가 있어 날씨가 나쁘면 바로 그쪽으로 이동하기도 좋다. 나도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북유럽 오로라 여행을 다니면서 스칸디나비아 북극권의 이름난 오로라 관측지는 거의 다 섭렵한 것 같다. 그동안 오로라 만날 확률이 가장 높다는 캐나다 옐로나이프와 알래스카의 페어뱅크스까지 다 다녀보았다. 모두 제각각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한 군데를 고르라면 나는 주저 없이 북유럽을 택하겠다. 오로라만 보는 게 아니라 오로라도 함께 보는 곳, 설산과 피오르, 한 폭의 풍경화와도 같은 마을까지 그저 마냥 머물러 있기만 해도 좋은 스칸디나비아 북부는 자연이 빚은 예술 작품이었다.


이번 경험을 토대로 일생에 한 번이라도 오로라를 보고 싶은 분들을 위한 스칸디나비아 오로라 정보를 정리해 본다.

이 모든 것의 전제는 오로라가 활발할 때여야 하니 가까이는 이번 극대기인 2026년까지, 그다음은 11년 뒤인 2035년 무렵이 될 것이다. 물론 그 사이에도 오로라를 만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운'만 좋다면.




먼저 언제 가야 할까. 오로라 여행의 시기와 기간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우리는 한겨울에 오로라를 보러 다닌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오로라는 오히려 춘분과 추분 무렵, 봄과 가을에 가장 활발하다. 오로라 애호가들 사이에 가장 인기가 높은 시기는 북극권에서 가을의 절정기인 추분 무렵이다. ‘인디언 서머 오로라’라고 불리는 이 시기에는 기온이 그다지 춥지 않으면서 충분한 밤 시간이 이어지므로 오로라를 편하게 볼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아직 호수가 얼기 전이므로 오로라가 제대로 터지면 하늘의 오로라와 함께 수면에 반사된 오로라까지 두 배로 밝은 오로라를 만날 수 있다.


우리는 이번에 3주 동안 스칸디나비아를 여행했지만 모두에게 그 정도로 시간이 넉넉하지는 않을 터, 제대로 오로라를 보려면 2주 정도가 적당하고 적어도 일주일은 필요할 것 같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기간이 길수록 오로라를 볼 확률은 높아진다.


오로라를 보러 다니는 방법, 어떻게 찾을 것인가.

렌터카를 빌려 직접 이동하는 방법과 현지의 오로라 투어에 참여하는 방법, 그리고 오로라를 볼 수 있는 숙소에서 머물면서 기다리는 방법이 있다. 세 가지 방법을 적절히 조합하면 더 알차게 오로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렌터카의 가장 큰 장점은 이동의 자유다. 도시의 빛공해에서 벗어나 한적한 곳에 숙소를 정하고, 낮에는 마음껏 북유럽의 풍경을 즐길 수 있다. 다만 북유럽 도시에서는 주차 공간을 찾기가 어렵고 가벼운 법규 위반도 조심해야 한다. 보험은 가능한 한 최대로 보장을 받게 들어두는 게 좋다. 길이 워낙 미끄럽고 험악하여 어디서든 사고가 날 여지가 많은 데다 북유럽에서 사고가 나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오로라 예보 앱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하늘 상황을 확인하는 것도 필수다. 오로라 앱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번에 가장 유용했던 건 <My Aurora Forecast> 앱이었다. 현재 Kp지수, 오로라 지도, 실시간 웹캠을 많이 이용했다. 특히 오로라 지도는 오로라를 볼 확률이 색깔별로 표시되는데다 실시간 구름의 양도 함께 볼 수 있어 매우 유용했다.


날씨는 변화무쌍하고 눈길 운전을 피할 수 없으니 운전할 자신이 없으면 대도시에서 오로라 투어를 하는 것도 좋은 선택지다. 현지 투어는 전문가가 날씨와 위치를 분석해 안내하므로 초행자에게 편리하다. 하지만 1인당 투어비가 적지 않으며 하루 만에 오로라를 본다는 보장이 없으니 여러 번 투어를 하면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빛공해가 없는 숙소를 찾아 머물면서 오로라를 기다리는 방법은 소극적으로 보이지만 가장 여유로운 방법이 될 수 있다. 불빛이 없는 곳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오로라를 기다리는 것, 낭만적이지 않은가.

버스 이용도 가능할 것 같다. 스칸디나비아에는 아무리 외딴 마을이라도 버스 정류장이 있다. 사람이 적어도 주민을 배려하여 대중교통이 가능한 곳이 선진국 아닐까? 택시도 좋지만 시간을 잘 맞춰 버스로 이동한 후 한 곳에 진득하니 머무는 방법도 괜찮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장소, 어디로 갈 것인가.

우리가 오로라를 제대로 만났던 곳은 로포텐 제도 초입, 산타 마을 로바니에미 근처, 이나리 마을 북쪽, 그리고 유럽 최북단의 도시 알타였다. 장소야 얼마든지 변할 수 있지만 중요한 건 Kp 지수가 높고 하늘이 맑을 때는 끈기를 가지고 하늘을 관찰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번에 우리는 욕심이 지나쳐 3주간 많은 곳을 다녔지만 이렇게 여러 장소를 순례하는 것은 그다지 추천하고 싶은 방법이 아니다. 기간에 따라 두세 곳을 정해서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교통편과 숙박비까지 고려하여 정리해 봤다.


1) 노르웨이 알타 (북위 69.96도)

노르웨이 북쪽 해안에 위치한 알타는 피오르 깊숙한 곳에 있어 날씨가 비교적 안정적이다. 가까운 고원지대로 쉽게 이동할 수 있어 관측 확률이 높다. 알타 주변에는 아름다운 피오르와 오로라를 함께 볼 수 있는 해안의 사이트가 다양하고 숙박비도 비교적 합리적이다.

2) 노르웨이 로포텐 제도 (북위 68도)

북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들이 모여 있는 로포텐 제도는 사계절 언제 가도 환상적인 피오르와 암벽, 바위섬과 아름다운 어촌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피오르와 오로라가 어우러진 장관을 볼 수 있지만 기후 변화가 심한 데다 도로가 좁아 운전이 까다로우며 접근이 어려운 편이다.


3) 노르웨이 트롬소 (북위 69.67도)

‘오로라의 수도’라 불릴 만큼 오로라 관광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 교통이 편리하고 다양한 투어와 볼거리가 있지만, 날씨 변화가 심하고 숙박비가 높은 편이다. 시내에서는 빛공해로 인해 오로라 관측이 어렵다.


4) 스웨덴 아비스코와 키루나 (북위 67~68도)

스웨덴 북부 내륙에 위치하여 맑은 날이 많고 도로 사정이 좋아 렌터카 여행에 적합하다. 아비스코는 국립공원 마을로, 숙소 주변에서도 오로라를 볼 수 있다. 키루나는 도시 기반이 있어 편의성이 강점이다.


5) 핀란드 이나리, 이발로, 사리셀카 (북위 68도대)

핀란드 북부의 사미족 문화권 지역으로, 침엽수림 속 산장에서 편안히 머물며 오로라를 기다리기 좋다. 이발로 공항과 가까워 접근성도 좋다.


6) 핀란드 로바니에미 (북위 66.30도)

산타클로스 마을로 유명한 도시. 위도는 낮은 편이지만 Kp 지수가 높을 때 북쪽 하늘에서 오로라를 관찰할 수 있다. 헬싱키에서 접근이 쉬워 오로라 관광이 활성화되어 있다.


이번에 숙소를 정하면서 비용 때문에 고심도 많이 했었다. 평점과 후기, 이동 시간을 꼼꼼히 살펴 숙소를 정했는데 대부분 만족스러웠다. 북유럽의 숙소는 대부분 따뜻하고 청결했다. 포근한 침구와 좋은 매트리스 덕분에 어디서나 숙면을 취할 수 있었고, 주방이 딸린 곳이 많아 직접 식사를 해결하기에도 편했다. 물가가 비싸서인지 숙소마다 가까운 마트 위치를 안내해 주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이름난 도시들은 숙박비가 너무 높아 주로 외곽의 한적한 숙소를 찾았는데, 오히려 오로라를 보기에 더 나은 곳들이었다.


문제는 오로라가 터져야 한다는 건데 극대기가 아니면 확률이 너무 낮아진다. 2019년에 트롬소에 한 달을 머무르며 결국 보지 못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2020년 겨울에 아이슬란드에 2주 다니며 카메라로만 확인 가능한 희미한 오로라를 단 한 번 보았다는 지인의 이야기도 들었다. 상상만 해도 허무한 일이다.


이번 북유럽 여행에서는 오로라를 원없이 봤다. 다양한 오로라를 새로운 풍경 속에서 만나며 눈이 천상의 호사를 누렸다. 나중에는 게으름을 피울 정도로 여유까지 생겼다. 돌아간 후에는 다시 그리워지게 될 환상적인 장면들. 거대한 녹색의 장막이 나를 향해 사정없이 쏟아내려오던 그 순간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그러나 오로라만 가지고 이번 여행을 한정지을 수는 없다. 로포텐의 깎아지른 설산,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세찬 바람, 핀란드 숲길의 고요함, 알타 피오르의 장엄한 전경. 오로라를 핑계 삼아 겨울의 스칸디나비아 북쪽을 섭렵했던 행복한 여정이었다.


태양의 극대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가끔 서울에서 오로라 앱을 켜 볼 때마다 큼직한 오로라가 터진다는 소식이 자꾸 들려온다. 추분 즈음에 움직여볼까 다시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다음의 극대기는 2035년 무렵이 된다. 그때 우리는 오로라를 보기 위해 다시 떠날 수 있을까? 만약 그 바람이 이루어진다면 이번처럼 오로라를 쫓아다니지 말고 한 곳에 머물며 느긋하게 기다려보자고, 그렇게 얘기해 본다.


긴 여행을 끝내고 돌아온 후 여기저기 나이가 주는 몸의 신호로 병원을 찾게 된다. 다음 극대기가 되면 나이를 먹은 만큼 오로라를 맞는 우리의 마음자세도 달라지겠지? 세월의 흐름이 두렵다기보다 기대되는 마음을 갖게 된 것도 오로라가 준 기운 덕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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