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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발트해 크루즈 기항지 (1)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수도들

by Bora

발트해 크루즈는 대부분 코펜하겐, 스톡홀름, 헬싱키, 탈린 등 북유럽 국가의 수도에 기항한다. 일주일 정도의 짧은 코스는 수도만 들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코스가 길어지면 노르웨이의 피오르나 발트해의 다른 항구 도시들이 추가된다.


우리가 보기엔 모두 잘 사는 북유럽 국가들로 보이지만 이 나라들도 과거에는 서로 침략과 지배 관계로 점철된 역사의 연속이었다.


현재 1인당 국민 소득 1위는 노르웨이, 그 뒤를 덴마크와 스웨덴, 핀란드가 이어간다.

그러나 스칸디나비아의 역사를 찾아보면 현재 가장 부유한 노르웨이와 핀란드는 피지배국이었고, 덴마크와 스웨덴이 지배국으로 오랜 세월을 지내왔다.

중세 이전부터 덴마크 왕국이 스웨덴과 노르웨이를, 이후에는 스웨덴이 노르웨이와 핀란드를 지배했다. 20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노르웨이와 핀란드는 독립을 되찾게 된다.


발트해 크루즈의 대표적 기항지인 북유럽의 수도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편의상 서쪽에서 동쪽 방향으로 나열해 봤다.


•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

•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

•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

•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


북유럽의 수도들은 1일권을 구입할 때 대부분 시니어 할인을 해준다. 물가 비싼 북유럽에서 일일권은 최고의 선택지다.




1) 노르웨이 오슬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노르웨이는 그만큼 물가도 가장 비싼 곳이다. 북유럽의 살인적인 물가를 감안하여 북유럽 도시에 기항할 때는 배에서 간단히 햄버거와 과일을 챙겼다.


북유럽의 도시들은 널찍한 공원들이 곳곳에 있어 걷다 보면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오슬로 시청과 노벨 평화 센터를 지나면 거대한 성벽이 피오르를 바라보며 오슬로를 지키고 있다. 아케르후스(Akershus) 요새다.

감옥과 화약탑 등 탄탄하게 지어진 벽돌 건물들이 요새 곳곳에 자리하고 그 안에 군사 박물관과 저항군 박물관도 있다.

오슬로 아케르후스 요새

성벽을 빠져나와 오페라하우스로 향한다.

바다 위에 하얀 카펫을 깔아 놓은 듯 눈부시게 빛나는 대리석길이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자 점으로 보이던 사람들이 오페라하우스 외부 공간을 한가롭게 오르내리고 있다. 이 건물 옥상은 오슬로 최고의 뷰포인트다.

오슬로 오페라하우스

안으로 들어가도 감탄을 자아내는 건 여전하다. 나무로 만든 원형 벽은 오페라 공연장을 감싸며 둥글게 돌아올라 간다. 그 안에서 공연을 본다면 감동은 두 배가 될 것이다.


오페라하우스를 나와 바로 옆 뭉크 미술관을 바라보며 편안한 벤치에 앉아 주변 사람들처럼 햄버거를 먹었다.

뭉크 미술관

오슬로의 중심지는 오슬로 대성당에서 왕궁까지 이어지는 보행로, 칼 요한 게이트(Karl Johan Gate)다. 운치 있는 호텔과 식당, 고급 상점뿐만 아니라 공원과 곳곳에 조각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1.2km의 거리가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슬로 대성당

칼 요한 게이트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시며 노르웨이의 한낮을 즐겨본다. 맥주 한 잔에 이만 원 가까이 지불했지만 비싼 물가 체험도 한 번쯤은 해볼 만하지 않는가.

칼 요한 게이트


2) 덴마크 코펜하겐

‘상인의 항구’라는 뜻의 코펜하겐은 발트해 크루즈의 주요 출발지이다.


코펜하겐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은 뉘하운(Nyhavn)이다.

뉘하운행 매트로를 탈 때는 첫 칸에 타기를 추천한다. 24시간 무인으로 운영되는 매트로의 맨 앞에 앉으면 청룡열차처럼 스펙터클 하진 않아도 멋진 전망을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 지하철처럼 암흑 속을 달리는 게 아니라 조명으로 유명한 덴마크 답게 색색의 조명을 밝혀놓아 빛 속을 뚫고 달리는 은하철도 999에 탄 듯하다.


뉘하운은 New Port, 즉 새로운 항구라는 뜻이다. 중심가인 콩엔스 뉘토르브 광장과 바다를 연결하는 관문 역할을 하며 수많은 어선과 화물선들이 오고 간다. 과거에는 선원들이 휴식을 즐기던 술집 거리였으나 지금은 세련된 레스토랑이 즐비한 대표적 관광지가 되었다.

코펜하겐의 명소 뉘하운

뉘하운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나무와 벽돌, 석회로 만든 형형색색의 건축물들이다. 대부분 식당으로 변신한 아담한 건물들과 함께 길지 않은 운하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소박한 배들과 박공지붕을 머리에 인 파스텔톤 집들이 한 몸이 된 듯 조화롭다.


뉘하운에서는 운하 투어를 추천한다. 한 시간 동안 보트를 타고 운하를 지나 해협을 돌아가며 주변의 건물, 풍경을 둘러보는 투어다.

페리에 앉아 오페라하우스 등 독특한 덴마크 건물들도 보고, 쓰레기 처리장 하나를 잔디스키장으로 만들었다는 새로운 덴마크 명소도 구경했다.

뉘하운 운하 투어

코펜하겐에서 가장 좋았던 곳은 별모양 요새 카스텔렛(Kastellet)이었다. 북유럽에서 가장 잘 보존된 요새 중 하나로 코펜하겐의 상징 인어공주 옆에 있다. 소문난 인어공주는 사실 사람만 북적일 뿐(그래서 소매치기 천국이다. 나도 여기서 지갑을 소매치기당했었다.) 막상 가 보면 생각보다 소박한 동상 하나만 달랑 서 있다.

코펜하겐의 상징 인어공주상

시타델에는 고풍스러운 남문과 북문이 있고 그 사이에 중세의 성 안 마을 하나가 들어선 것처럼 병사들의 막사 건물과 다양한 집들, 교회가 있다.

카스텔렛 내부

정말 대단한 건 언덕 위에 있다. 거대한 풍차와 남쪽을 향한 대포들도 인상 깊었지만 약 20m 높이의 언덕 위에 오각형의 별모양 해자로 둘러싸인 너른 둑방길이 얼마나 멋진지.

해자에 반사되는 언덕의 모습은 어디에서 보아도 절경이다.

카스텔렛 둑방 위 풍경


3) 스웨덴 스톡홀름

스톡홀름은 스칸디나비아 반도 최대의 도시로 수없이 많은 아름다운 섬들로 이루어져 북방의 베네치아라 불린다.


헬싱키에서 스톡홀름으로 들고나는 편도 네 시간의 항해길은 발틱 크루즈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스톡홀름을 드나드는 시간은 해 뜰 녘, 해 질 녘에 걸쳐있어 수천 개의 섬 사이를 빠져나가는 동안 더욱 아름다운 광선으로 빛난다.

스톡홀름을 드나들 때 보이는 풍경

창 밖으로 펼쳐지는 자작나무숲, 서너 채 별장만 있는 미니 섬들, 북유럽풍 나무집, 마주치는 크루즈선, 핀란드를 오가는 실자라인 배에 섬 사이를 가로지르는 요트들까지 발트해의 한려수도가 여기에 있다. 북유럽 크루즈의 바다풍경 중 나에게 최고로 다가오는 이유다. 실제로 헬싱키에서 스톡홀름을 오가는 코스는 유럽에서 손꼽히는 관광 코스라 한다.


배를 타고 들어오는 스톡홀름은 섬이 모인 도시다.

서울로 치면 구시가 감라스탄은 경복궁, 창덕궁이 모여있는 종로구와 같고 스톡홀름 시청이 있는 쿵스홀멘은 중구, 감각적인 카페나 식당이 많다는 쇠데르말름은 강남구, 놀이공원과 민속촌, 박물관이 모여있는 유르고르덴은 과천이나 용인 같다. 그리고 이 모든 곳은 각각의 섬이다.

감라스탄에 있는 스톡홀름 왕궁 근위병 교대식

이렇게 얘기하면 뭔가 대단해 보이지만 워낙 작은 섬들이 다닥다닥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실제로는 버스로도 금방 도착하는 옆 동네일 뿐이다.


스톡홀름의 구시가인 감라스탄은 종로구 크기가 아니라 삼청동 크기 정도로 동에서 서까지, 남에서 북까지 그 폭이 500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너무나 작아서 조금 걷다 보면 이미 구시가를 벗어나있다.

왕궁의 근위병 교대식도 보고 스토르토르겟 - 스웨덴 귀족들의 피의 학살 지역이자 독립의 단초가 된 곳 등을 다 둘러봐도 시간은 넉넉하다.

감라스탄의 스토르토르겟

스톡홀름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곳은 지하철역이었다. 스톡홀름 지하철은 각 역마다 독특한 예술성을 보여주어 '세계에서 제일 긴 화랑'으로 불린다.


스톡홀름 중앙역과 연결되어 있는 T 센트랄렌역 (T - Centralen)에 가면 1975년에 개통될 당시의 노출된 암석 벽면을 캔버스처럼 활용한 멋진 예술작품을 만나 볼 수 있다.

스톡홀름 지하철 T 센트랄렌역

중앙역 말고도 멋진 역이 열 곳 정도 더 있다는데 하루 밖에 시간이 없는 나로서는 다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저 감사하고 행복한 경험이었다.


스톡홀름의 관광은 배에 돌아와서도 계속된다. 배가 출항한 후 위층에 있는 뷔페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감상하는 피오르의 풍경은 노을이 물들고 사위가 어두워질 때까지 놓칠 수 없다.



4) 핀란드 헬싱키

헬싱키는 일단 화폐가 유로라 편했다. 노르웨이도 덴마크도 스웨덴도 제각기 자기네 화폐가 있는데 핀란드만 유로를 사용한다.


나는 헬싱키가 좋다. 유럽의 여느 도시와는 다른 개성이 뿜어져 나오는 헬싱키의 건축물을 나는 사랑한다. 핀란드 사람들은 디자인에 진심이다.

깜삐 예배당

헬싱키의 중앙역 가까이에 있는 만네르헤임 광장 주변을 둘러보면 이 도시의 디자인 감성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사방 일이백 미터 사이에 깜삐 예배당, 아모스 렉스 미술관, 키아스마 현대미술관 그리고 헬싱키 중앙도서관이 있다. 대단한 디자인 들이다.

아모스 렉스 미술관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헬싱키 중앙도서관 (Oodi).

헬싱키 중앙도서관에서 나는 북유럽 - 핀란드의 저력을 보았다. 처음에는 바깥에서 보이는 모습만 보고 감탄했지만 안은 더욱 놀라웠다.

헬싱키 중앙 도서관

헬싱키 중앙도서관은 옆에서 보는 모습과 앞에서, 뒤에서 보는 모습이 다 다르다. 밖에서 보자니 배의 돛대처럼 보이는 꼭대기 부분에 사람이 보인다.

'저기까지 올라갈 수 있나?' 들어가 보기로 했다.

가방 보관? 출입증? 이런 건 없다. 아무나 들어갈 수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제일 위 3층을 눌렀다. 3층에 내리자마자 펼쳐지는 책들의 향연. 아무나 어디서나 책을 꺼내들 수 있다.

장서를 대단하게 많이 쌓아둔 건 아니다. 가장 많은 사람이 볼만한 책들만 한가득 펼쳐놓았다.


책만큼 넉넉한 건 편안히 읽을 수 있는 공간.

그 비싼, 너무나 편안한 북유럽 의자들이 사방에 놓여 있다.


사람들은 가장 편한 자세로 책을 읽는다. 한켠엔 경사로를 따라 건물 꼭짓점까지 올라가 바다를 바라볼 수 있고, 실외 테라스에도 의자와 테이블이 넉넉하다.


도서관의 반대편 끝까지 가봤다. 도서관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아기를 안은 엄마들이 강사의 지도에 따라 아기 체조를 하고, 가족만 앉을 수 있는 어린이 코너의 카펫 위에서도, 바로 옆 놀이터에서도, 아이들이 누웠다가 떼를 부리기도 하면서 자유스럽게 놀고 있다.


살아있는 도서관

시민과 함께 하는 도서관

시민에게 필요한 것이 무언지 정확히 알고 제공하는 도서관이 여기에 있다.

이런 곳에서 자란 아이들이 책을 사랑하게 될 것이고 디자인 감각을 본능적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마지막 목적지, 구도심 마켓광장에서 페리를 타고 15분이면 도착하는 수오멘린나 요새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소풍 가기 최적의 장소다.


수오멘린나 요새는 18세기 핀란드를 지배하던 스웨덴이 러시아의 팽창주의를 경계하기 위해 지은 요새다. 1918년 핀란드가 독립한 후 '핀란드의 요새'란 뜻을 가진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핀란드의 요새 수오멘린나

여섯 개의 섬이 이어진 수오린멘나 요새는 한두 시간만 할애하기에는 아쉬운 곳이다.

헬싱키를 지키기 위해 설치된 대포 옆에 서서 앞바다를 바라본다. 주변의 탄탄한 참호와 돌벽들은 이곳이 천혜의 요새임을 보여준다.

섬 안에는 2차 세계대전 때 잠수함도 있고, 작은 비치에서 물놀이도 할 수 있다.


마무리는 노천 재래시장인 마켓광장과 한 공간에 모여있는 우스펜스키 대성당, 원로원 광장과 헬싱키 대성당을 둘러보면서 충만한 헬싱키 나들이를 마쳐본다.

헬싱키 대성당


다음 편에서는 발트해 주변의 다른 중소 도시들을 찾아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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