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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서지중해 크루즈 기항지

by Bora

동지중해 크루즈가 에게해 문명을 중심으로 한 그리스와 터키의 매력을 보여준다면, 서지중해 크루즈는 이탈리아 서부, 남프랑스, 그리고 지중해 최대 섬인 시칠리아 일대를 둘러보며 또 다른 풍경과 역사를 체험할 수 있다.


이번에는 서지중해 크루즈의 주요 기항지들을 하나씩 살펴본다.


• 남이탈리아의 중심도시 나폴리

• 프랑스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마르세유

• 해상 무역의 중심지였던 이탈리아 제노바

• 성 요한 기사단이 세운 몰타의 수도 발레타

• 지중해 최대의 섬 시칠리아의 관문 메시나


서지중해의 도시들은 각각 저마다의 색깔과 매력을 지니고 있다.




1) 이탈리아 나폴리

나폴리에는 두 가지 행복한 선택지가 있다. 기차로 약 한 시간 거리의 폼페이 유적지를 방문하거나, 고대 그리스 식민도시에서 시작해 로마 시대와 함께 번성했던 나폴리 구시가의 역사 지구를 탐방할 수 있다.

폼페이 유적지

두 곳 모두 매력적이지만, 살아 숨 쉬는 로마 시대 주거지인 ‘도무스’와 나폴리 서민들의 생생한 삶을 엿볼 수 있는 나폴리 역사 지구를 추천하고 싶다.

나폴리 역사 지구

나폴리 역사지구는 그 유명한 나폴리 피자가 탄생한 곳이다. 백 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피자 맛집이 여러 곳 있다. 그런 맛집에 줄을 서서 들어가 대표 메뉴인 마르게리따 피자를 한 입 베어 물면 나폴리 피자가 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지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나폴리 피자

나폴리 구도심에서 거의 한 블록마다 보이는 듯한 거대한 성당과 좁고 활기찬 스파카 나폴리 (Spacca Napoli) 길을 걷다 보면 길 끝 언덕 위에 엘모어 성이 보인다. 스파카는 자른다는 뜻으로 가르마를 타듯 시가를 둘로 나눈다는 뜻을 갖고 있다.

스파카 나폴리

그러나 나폴리의 아름다움은 지상에만 있는 게 아니다. 나폴리 역사지구에는 지하로 내려갈 수 있는 통로가 있다. 지하 도시, 나폴리 소테라네아(Napoli Sotterranea)다.

나폴리 소테라네아

고대 그리스 시대에 나폴리는 네아폴리스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도시가 처음 만들어질 때 신전과 성벽 건설에 필요한 융회암을 캐냈던 구덩이가 생겨났고, 이후에 물길의 중요성을 알았던 로마 제국 사람들은 구덩이를 이용해서 방대한 지하 수로와 지하 도시를 만들었다.


도시에 필요한 분수와 주택용 상수도를 공급하기 위해 거미줄처럼 넓게 뻗어나간 수로 터널은 깊은 땅속에 좁은 터널, 수많은 방과 지하 광장 등으로 확장됐다. 곳곳에 수정같이 맑은 물이 흐르면서 도시의 샘물이 되었던 이곳은 세계 2차 대전 당시에는 최고의 피난처가 되었다.


어둠 속에 어른 한 명이 간신히 통과할 수 있는 좁디좁은 미로를 따라가자니 혼자라면 길을 잃기 십상이겠다. 좁은 통로를 빠져나오면 수십 명은 너끈히 모일 수 있는 지하 광장이 나오고, 한 바가지 떠서 마셔보고 싶은 깨끗한 물이 흐른다. 하늘로 뚫린 공기구멍을 통해 들어온, 지하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신선한 공기를 마시니 햇빛만 못 본다 뿐이지 이렇게 쾌적한 환경이 어디에 있을까 싶다.


지금도 지하도시에는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보관하는 장소나 식료품, 와인 저장고도 있다. 로마시대 돌길을 걷다 땅밑의 지하 도시로 내려가 만나는 풍경은 나폴리에서 절대 놓쳐서는 안 될 특별한 경험이다.


2) 프랑스 마르세유

마르세유는 프랑스 제2의 도시이자 지중해 최대의 항구도시이다.


버스를 타고 시내 중심에 있는 마르세유 언덕에 오르면 마르세유의 상징, 노트르담 성당을 만날 수 있다. 푸른 수평선 아래 아름다운 마르세유 시가지와 항구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노트르담 성당은 성당 자체의 아름다움과 함께 뷰맛집으로 소문난 곳이다.

마르세유 노트르담 성당

버스를 타고 구항구에 가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항구의 생동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나폴리 구항구

구항구의 길거리 식당에서 마르세유의 대표적인 생선 스튜 요리, 부야베스를 맛봤다. 한국의 매운탕과 살짝 비슷한 면이 있지만 비릿한 맛이 명성과는 달리 기대에 미치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었다. 돌아온 후 에이모 토울스의 [모스크바의 신사]를 읽고 나서 무척이나 후회가 됐다. 제대로 만든 부야베스를 꼭 다시 맛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폴리의 대표 요리 부야베스

[모스크바의 신사]에서 주인공 로스토프 백작은 러시아 혁명 이후 모스크바 메트로폴 호텔에 평생 감금당하게 된다. 그곳에서 타고난 기품과 유머를 잃지 않고 살아가던 백작은 호텔 주방장과 3년간의 치밀한 계획 끝에 최상의 재료를 조달하여 부야베스 파티를 실행한다. 내가 제대로 된 부야베스를 꼭 먹어보고 싶어진 이유다. 책 속의 부야베스 맛을 보시라.

처음에는 프로방스 지방의 따사로움이 넉넉하게 느껴지는, 생선 뼈와 회향과 토마토를 끓이고 달인 수프를 맛본다. 그다음, 부두의 어부에게서 구입한 얇게 저민 해덕의 부드러운 살과 홍합의 짭짤한 탄력을 맛본다.... 이 모든 다양한 인상은 사프란에 의해서 형성되고 활기를 준다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첫 스푼을 떠서 이 요리를 맛보는 순간, 우리는 뱃사람과 좀도둑과 아름다운 여인들로 북적거리고, 햇살과 여름, 각종 언어와 삶의 활기로 넘실거리는 마르세유 항구에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 모스크바의 신사에서


마르세유에 가면 거대한 현대 건축물, 유럽 지중해 문명 박물관 뮤셈(MUCEM)에서 지중해 연안의 풍경도 즐기고, 부야베스도 꼭 맛보기 바란다.

유럽 지중해 문명 박물관


3) 이탈리아 제노바

이탈리아 제1의 항구 도시 제노바는 중세에 베네치아와 함께 지중해 무역을 주도했던 해양강국이었다.

해양강국 제노바

르네상스 시대 제노바 귀족들이 건설하여 14세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가리발디 거리에는 흰 궁전, 붉은 궁전, 투르시 궁전 등 19개의 궁궐이 늘어서있다.

가리발디 거리

경사진 지형이 많은 이 도시에서는 아센소레(케이블카 겸 엘리베이터) 1일권을 구매하면 더욱 다양한 전망을 즐길 수 있다.

곳곳에 아센소레가 있다


4) 몰타 발레타

유럽과 아프리카 사이에 위치하여 오래전부터 군사적 요충지였던 몰타는 16세기 성요한기사단의 지배하에 요새 국가로 거듭나게 된다.

발레타 항구

기사단장의 이름을 딴 수도 발레타에는 요한 대성당을 비롯해 철벽과도 같은 성벽까지 볼거리가 풍부하여 하루로는 시간이 부족한 곳이다.

발레타 요새

시간이 허락한다면 버스를 타고 인근의 중세 성채 도시 음디나(Mdina)를 방문할 수도 있다.

몰타섬 중앙의 언덕에 자리 잡은 음디나는 로마와 아랍 지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몰타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중세 성채 도시 음디나

사실 몰타와 시칠리아는 단 하루의 방문으로 마치기에는 아쉬움이 큰 곳들이니 기항지 방문은 맛보기 정도로만 생각하는 게 좋다.


5) 시칠리아 메시나

시칠리아 섬 북동부, 이탈리아 본토와 가장 가까이에 위치한 메시나에 도착하면 50km 거리에 있는 절벽 위의 마을 타오르미나(Taormina)를 향해 이동해 보자.


택시, 렌터카 또는 버스 투어를 통해 접근할 수 있는데 렌터카를 이용할 경우 마을 입구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후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코르소 움베르토 거리

로마의 향기가 남아있는 코르소 움베르토 거리를 지나 고대 그리스의 원형극장에 오르면 유럽에서 가장 높은 활화산 에트나 화산의 봉우리가 한눈에 보이는 장대한 전경을 마주하게 된다.

타오르미나 그리스 원형극장

타오르미나로 가는 길에 영화 <대부> 촬영지로 유명한 중세 마을 사보카(Savoca)에 들러 마이클 콜레오네가 결혼식을 올렸던 그 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영화 대부 촬영지 사보카 마을


다음 편에서는 지중해 크루즈와는 또 다른 얼굴을 갖고 있는 발트해 크루즈 기항지를 알아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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