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동맹 도시들 - 독일 킬과 로스토크, 에스토니아 탈린
북유럽 크루즈는 주로 발트해 주변 도시들을 운항하기 때문에 발트해 크루즈라고도 불린다. 이 크루즈의 기항지들은 대부분 과거 한자동맹의 주요 도시들이다.
13세기부터 17세기까지 번성했던 한자동맹은 중세 독일 북부 도시들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상인 조합 '한자(Hansa)'에서 유래한 무역공동체다. 함대와 요새까지 갖춘 한자동맹 도시들은 영국 옆바다 북해에서 발트해에 이르는 북유럽 무역권을 지배하며 세력을 떨치다 15세기 이후 신항로가 개척되면서 쇠퇴하기 시작하여 17세기에 이르러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발트해 크루즈 기항지 중 한자 동맹의 중심 도시였던 킬과 로스토크의 주변 도시, 그리고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을 살펴보려고 한다.
• 독일(구 서독의) 킬(Kiel)과 뤼벡(Lübeck)
• 독일(구 동독의) 로스토크(Rostock)와
비스마르(Wismar)
• 에스토니아 탈린
강성했던 한자동맹의 중심 도시 뤼벡과 함께 발트해에 면한 비스마르와 로스토크 역시 중요한 한자 도시였다.
발트해 킬 만의 안쪽에 있는 항구도시 킬은 과거 무시무시한 악명을 떨치던 곳이다. 바로 나치 독일제국의 해군 기지와 잠수함 조선소가 있던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건조된 유보트가 얼마나 많은 연합국 함선을 침몰시켰는지 하마터면 전쟁의 향방을 바꿀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배에서 내려다본 이 도시는 과거의 흔적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집중 폭격으로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킬에서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시간이 많지 않다면 버스로 50분 거리인 만 건너편 라보에(Laboe) 마을로 향해 유보트와 독일 해군박물관을 관람한 뒤, 킬 시내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
라보에 해변에 전시된 유보트는 약 80년 전 만들어졌다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단단하고 위풍당당한 자태를 자랑한다. 지금 당장에라도 바닷속을 휘젓고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내부에 들어가 전쟁 당시 좁은 잠수함 속에서 치열하게 움직였을 군인들을 상상해 본다. 그저 애국심 하나로 국가의 지시에 따라 목숨을 아끼지 않고 상대편을 죽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청년들을.
해군박물관은 전쟁을 일으켰다 패배한 국가로서 담담하게 독일 해군의 역사를 풀어내며 전장에서 스러져간 군인들에 대한 경의를 차분히 전하고 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킬에서 남동쪽으로 80km 떨어진 한자 동맹의 중심 도시 뤼벡에 먼저 방문해 보길 추천한다. 킬 중앙역에서 기차로 1시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다.
뤼벡은 12세기에 건설된 이후 상업 중심지로 번성했다. 한자동맹이 쇠퇴한 뒤에도 한동안 자유도시로서 위상을 유지했지만, 히틀러에 의해 그 지위를 박탈당했고, 2차 세계대전 중 영국 공군의 폭격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2차 대전 패배 후 독일이 분단되었을 당시, 뤼벡 시가지 옆을 따라 동서독의 국경이 형성되며 이곳은 서독의 북쪽 끝 장벽의 시작점이 되었다. 영국군 점령지였던 뤼벡이 서독에 속하게 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할까.
전장의 포화를 견디고 살아남은 뤼벡 구시가는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중앙역에서 불과 몇백 미터만 걸으면 나타나는 구도심의 서문 홀스텐 게이트로부터 북문 부르그토르까지는 1.4km의 거리로, 천천히 걷다 보면 벽돌로 쌓아 올린 중세 고딕 요새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
두 개의 원추형 지붕을 머리에 얹은 원형 탑과 중앙 건물이 하나로 이어져있는 홀스텐 게이트는 철거 위험에 처했다가 간신히 살아남게 되었다. 지반 침하로 인해 묘하게 기울어져 있는 모습이 불안정의 미학을 보여주는 듯하다.
100년에 걸쳐 완성된 마리엔 교회는 높이 125m, 폭이 100m에 이르는 웅장한 고딕 벽돌 건축물로 시선을 압도한다.
북문을 나서니 운하가 흘러간다. 도시를 에워싸듯 돌아가는 트라베강은 발트해까지 흘러들어 갈 것이다. 옛 상인들의 긴 여정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순간이다.
로스토크에 도착하면 기차를 타고 50km 거리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도시 비스마르를 먼저 들른 후, 로스토크 시내를 천천히 돌아보는 코스가 좋다.
비스마르의 구도심에서는 성 마리엔 교회와 성 게오르겐 교회를 둘러볼 수 있다.
거대한 교회 건물 대부분이 무너진 채 탑신만 겨우 남아있는 성 마리엔 교회는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세계 2차 대전이 끝나가던 1945년 연합군의 폭격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부서지고 이후 동독의 지배하에 들어가 그대로 버려졌던 곳이다. 독일 통일 후 부서진 교회터를 정비하고 남아있는 교회 벽의 선명한 총탄 자국은 그대로 남겨두어 처절했던 독일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존하였다.
로스토크는 원래 슬라브족의 요새였으나, 13세기에 도시로 발전하며 한자동맹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 이 도시 역시 2차 세계대전 때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가 전후 동독의 주요 항구로 재건되었다.
로스토크는 구도심 전체라 해봐야 반경 1km 안에 볼거리가 다 모여있는 아담한 곳이다.
중심가인 크뢰펠리네 거리의 대학 광장에는 분수가 시원하게 물줄기를 뿜어내며 쇼핑가의 시작을 알린다.
1419년에 설립된 로스토크 대학은 북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로, 르네상스 양식의 고풍스러운 건물이 구시가지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비스마르와 로스토크는 모두 한자 동맹 도시이자 과거 동독의 영토라는 역사적 배경을 공유하지만 도시의 활기나 규모 면에서는 로스토크가 좀 더 크고 생동감이 있다.
에스토니아는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와 함께 발트해 동쪽에 위치한 발트 3국 중 하나로, 과거 덴마크, 스웨덴, 러시아의 지배를 받다가 1920년 소련과의 협정 끝에 독립을 이뤘다.
수도 탈린의 구시가지는 유럽에서 가장 잘 보존된 중세 도시 중 하나로, 수많은 침략 속에서도 그 원형을 유지해 왔다. 탈린은 13세기, 덴마크 왕 발데마르 2세가 에스토니아인이 세운 성채 자리에 새로 성을 세우고, 이후 한자동맹 중심 도시로 성장하면서 무역항으로 번성했다.
탈린 구시가는 도보로 돌아보기에 적당한 규모다. 구시가에서는 지도를 일일이 찾아보며 다닐 필요가 없다. 발길 닿는 대로 교회의 첨탑을 찾아, 또는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레 주요 명소와 마주친다.
탈린의 성벽과 주황빛 방어탑들은 구시가를 둘러싸고 있다. 구시가 초입에 있는 북쪽 마가렛 성문(Paks Margareeta)은 탑의 폭이 넓어 '뚱뚱이 마가렛'이란 애칭으로 불린다. 동쪽의 비루 게이트(Viru Gate) 앞은 즐비한 상점가로 이어지고 남쪽 끝 톰페아 성 옆에는 높다란 키다리 헤르만 탑(Tall Hermann)이 우뚝 솟아 있다.
유럽 도시 어디나 그렇듯이 시내 광장은 따사로운 햇살을 즐기는 사람들과 분위기 좋은 카페, 식당으로 가득 차 있다. 커다란 돔에 화려한 러시아풍 장식을 뽐내고 있는 러시아 정교회 사원 알렉산더 네프스키 성당은 러시아 지배의 흔적이다.
러시아 정교회 사원은 동화 속 그림처럼 평화롭고 눈부시게 빛나고 있지만 불과 500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러시아 대사관 앞 상황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규탄하는 구호로 뒤덮여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Stop the War!
Don't be silent!
Stop Putin!
Russians against war!
러시아 대사관 인근에 위치한 옛 KGB 건물은 지금은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하 감방을 돌아보며 과거 러시아 지배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모진 고문을 당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해진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바라보는 에스토니아인들의 시선은 우리와 사뭇 달랐다. 과거 소련의 속국이었던, 지금도 러시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이 나라에서 보는 전쟁은 '두려움'이었다.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인지, 히틀러나 스탈린에 이어 푸틴 같은 미친 독재자가 나타나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 속에 몰아놓고 있으니 아픈 현실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래도 일상은 흘러가고 여행자의 발걸음은 이어진다. 나는 탈린의 뒷골목이 좋았다. 터널처럼 보이는 좁은 통로를 빠져나오면 구불구불 골목이 이어지고 맛집과 카페, 상점들이 하나씩 둘씩 나타났다. 여유롭게 거닐면서 이탈리아 식당에서 맛있는 파스타도 먹고, 다시 돌아다니다 광장에서 커피까지 마셔도 시간은 충분했다. 교통비가 전혀 들지 않으니 가볍게 옆 동네 한 바퀴 마실 다녀온 느낌이다.
발트해 크루즈 중 독일과 에스토니아의 기항지에서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끊이지 않는 전쟁의 참상을 되새기게 되는 흔적들을 만나게 된다. 더불어 사악한 물가 때문에 다른 북유럽 도시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쇼핑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이제는 유로화까지 환율이 치솟아 그것마저 여의치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