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경험한 것을 보기만 해서 불안한 그룹이 실제로 가장 아팠다
인생이 꼬이는 것은 우리에게 오히려 새로운 능력치를 열어준다. 내가 부딪혀서 생각보다 안 아플 수 있고 새로운 걸 배울 수도 있다. 그러나 불안해하기만 하고 도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 뇌에도 안 좋지만 새로운 배움의 기회를 앗아가기 때문에 가장 나쁘다. 다른 사람의 삶은 탄탄대로처럼 보이지만 우리 모두의 삶은 꼬여있는 것이고 이 꼬여있는 삶의 연속을 풀어나가는 것이 우리가 뇌를 가진 이유이다. 모든 새로운 시도는 옳다. 그리고 꼬인 것은 풀리기 위해서 꼬인 것이다.
- 장동선, <내 인생이 꼬였을 때 오히려 좋은 이유>, 세바시 -
오래간만에 내 과거를 반추해 보고 놀랐다. 나에게는 거의 5년마다 인생의 위기가 있었구나. 처음에 슬럼프를 극복했을 때는 이제 다시는 이렇게 꼬꾸라지는 일은 없으리라는 자만과 자신감이 충만했던 것 같다. 그래서 두 번째 좌절을 겪었을 때는 더욱 힘들고 이생망의 기분을 빠져나오는데 더 많은 힘이 들었다. 되돌이켜보면 나는 그럼에도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이었고 불안에 떨면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얼마 전에 내가 쓰촨 성 청두(성도)를 여행 가기로 해놓고 비행기를 놓치자 대신 기차를 타고 편도를 여행했던 불굴의 에피소드가 생각나서 정확히 몇 시간 기차였는지 찾아보니 자그마치 40시간이었다. 입석표로 기차를 타서 어느 시점에야 앉았고 얼마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어떻게 그 시간들을 견뎠는지 자세한 내용은 이제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한동안 그런 경험을 해냈다는 내가 무척 자랑스러웠던 것 같다(자소서의 단골 에피소드였다). 그 외에도 스페인에서 2주 워크캠프 후 2주 혼자 여행을 하면서 부딪혔던 크고 작은 난관들을 해결했던 기억, 내가 원하는 주제의 논문을 쓰기 위해 멘땅에 헤딩했던 기억 등 인생이 꼬이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혼자 해결해 보고자 애썼던 기억은 한 때 도전정신 가득한 청년이었던 나를 일깨워 준다.
최근 시도하지 않고 불안해 하는 것이 뇌과학적으로 얼마나 좋지 않은지에 대해 설파한 장동선 교수의 세바시 영상을 보고 시도하고 아픈 것이 하지 않는 것보다 덜 괴로울 수 있다는 것이 과학적으로도 입증되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두려움이란 내가 고통을 경험해서 아프면 다음에 또 아플까 봐 두려운 것이다. 반면 옆에 사람이 아픈 것을 보고 나는 고통을 경험하지 않았는데 그 고통이 오는 게 보이고 오는 것을 상상하는 것이 불안이다. 고통을 경험해 두려움을 가진 그룹, 고통을 경험한 것을 보기만 해서 불안한 그룹, 아무것도 겪지 않은 그룹 중 실제로 고통을 경험했을 때 그 고통을 가장 약하게 느낀 쪽은 고통을 이미 겪은 두려움 만을 느낀 그룹이었다. 반면 불안했던 쪽은 고통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져 있어서 실제로 가장 아팠다. 인생이 꼬일 때 뭔가 불안하고 안될까 봐 두려울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모든 인생은 원래 꼬이는 거니까 일단 질러보자 부딪혀 보자라고 해서 아프더라도 그 꼬이는 인생에 대해서 당당하게 부딪혀 보는 사람은 잠깐동안 아프지만 잠깐 아프고 끝난다. 부딪혀서 도전해서 너무 힘들었지만 잠깐동안 빡 스트레스를 받고서 들어가는 것은 긍정적인 스트레스였다. 반면에 아픔을 경험한 게 아니라 불안해하기만 했던 만성불안의 스트레스를 경험했던 쪽에서는 새로 생겨나는 뇌세포가 오히려 줄었고 건강이 악화되었다.
불안해도 도전하는 것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건강에도 좋고 배움의 기회도 열어준다니. 나이가 들어갈수록 겁이 많아지고 관성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꼬였다고 포기하지 않고 작은 종종걸음이지만 계속 나아가는 내가 되고 싶다. 아직 실행하기 전이어서 어쩌면 더 불안하고 더 고통스러울 나를 너무 보채지 말고 조금씩 도전해 보자. 사실 나는 일상 속에서도 작은 도전을 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고 도전의 순간에 더욱 힘을 실어주자.